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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Jan 30. 2018

거실의 사자, 거리의 타자

고양이와 인간의 공존

근래 미오와 많이 친밀해졌음을 느낀다. 내 옆에 누워서 자기도 하고 늦게까지 누워있으면 머리맡에서 야옹댄다. 어디 구석에 웅크려 보이지도 않던 녀석이 옥상에서 노래 듣다가 뒤를 돌아보면 베란다 문 앞에 앉아있다. 귀가하면 발소리를 들었는지 입구에서 서성인다. 무심한척 내 일거수일투족에 신경 쓰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1년 반이란 시간이 만든 습관들이다.

내 시야를 가리는 당신의 궁둥이

그러다 보니 우리 일상에 몇 가지 패턴이 생겼다. 간식을 주려고 내밀면 바로 먹지 않는다. 킁킁 한번 냄새를 맡아보곤 잘 먹겠다는 인사인지, 맛있겠다는 만족의 표시인지 내 다리에 몸을 꼭 한번 부비고 시식하신다. 사료가 떨어지면 보통보다 앙칼지게 운다. 실수로 꼬리나 발을 밟으면 하악질 하고 어디 숨어버리는데 사과의 표시로 간식을 주려고 간식 봉지 소리를 내면 언제 삐졌냐는 둥 눈앞에 나타나서 다리에 몸을 부빈다. 나 역시 녀석에게 길들여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물을 갈아주고 말린 고기를 주면서 일과를 시작한다. 빈 물병을 무서워해서 물병을 버릴 때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으려 애쓴다. 귀가하고 미오를 한번 안아야 비로소 집에 온 기분이 든다. 인간과 고양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언어를 교환할 수 없지만 우리는 누적된 경험과 맥락으로 대화를 나눈다.

우리집 거실의 사자

최근 거실의 사자라는 책이 발간됐다. 고양이와 인간의 관계를 역사, 과학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나도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리뷰를 보니 ‘고양이로부터 위안을 받는다’류의 말랑말랑한 에세이는 아니고 인간의 고양이 판타지에 일격을 가하는 정보로 가득한 책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고양이가 몸을 부비는 게 만족의 표시도 아니고 골골송이 좋다는 의미가 아닐 수도 있다는, 기존 통념을 깨는 이야기들 말이다. 리뷰를 읽고 나니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럼 내가 미오 얼굴에 이마를 댔을 때 미오가 그르렁 댔던 순간에 느꼈던 ‘무엇’의 정체는 뭐였을까, 혼자만의 착각이었을까. 미오는 생존을 위해 서비스로 감사표현을 하고 나는 미오에게 헌신하며 느낀 보람으로 살아가는 동상이몽의 상황인걸까. 골똘히 생각하다가 다 부질없다고 결론 내렸다. 목적이 무엇이든 서로 부대끼며 우리만 이해할 수 있는 상황과 맥락을 만드는데 성공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라 생각했다.

맞짱뜨러 갈 기세

얼마 전 길고양이를 다룬 기사가 화제였다. 기사에 제시된 길고양이로 인한 피해 사례와 인간과 고양이는 공존하기 어렵다는 요지의 전문가 멘트가 문제였다. 해당 기사로 전국의 캣맘들은 격노했고 기사는 패치워크 마냥 여러 번 뜯어고쳐지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아마 이들도 내가 미오와의 관계에서 느낀 ‘무엇’을 경험했기에 부아가 치밀었을거다. 무엇보다 나는 기사 속 공존하기 어려운 이유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른 길고양이와 계속 영역 다툼을 벌이고, 수시로 찾아오는 발정기가 되면 호전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뭐야. 영역다툼을 벌이고 발정기가 되면 호전성이 높아지는 건 인간도 마찬가진데. ‘밤거리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고양이를 보고 놀랐다?’ 미오는 빈 물통 떨어지는 소리만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마 예전 주인 중 하나가 빈 물통으로 호통 쳤겠지. 기사 속 사례와 논거들이 인간중심적이고 단편적인 분석에서 나왔다고 생각했다.

아 나의 지독한 짝사랑이여....

결국은 발화 가능성과 권력이 비례하는 것 같다. 지난 1년 6개월간 미오의 언어는 내 해석 대상이기라도 했지만 매일 이방인을 마주하는 거리의 아이들은 영원히 말 못할 타자일 테니까. 자기 언어에 귀기울여주는 존재의 유무에 따라 거실의 사자가 되고 거리의 타자가 되기도 하는 고양이의 신세가 처연하게 느껴졌다. ‘생존’이라는 목적 없이 인간과 어울릴 수 있어야 비로소 공생 관계가 성립하는 걸까. 선의와 진심만이 공존의 필요충분조건일까. 그렇게 따지면 대부분의 인간관계도 ‘공존’이라고 말할 수 없지 않나. 문득 내 발언권을 빼앗거나 나를 피로하게 만든 얼굴들이 스친다. 고양이와 인간의 관계에서 출발한 나의 고민은 결국 인간관계로 귀결되고 말았다. 아 머리 아프다. 미오와 매일 반복하는 관성적 행동들이, 무언의 대화가 새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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