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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Jan 28. 2018

잡았다! 멸치도둑

네가 멸치를 좋아하는 줄 몰랐어

3일 전에 도둑이 들었다. 사건당일 아침에 눈 뜨자마자 물 마시러 부엌에 갔더니 부엌 매트에 검은 찌꺼기가 흩어져있는게 아닌가. 멸치 똥이다. 멸치 대가리와 비늘도 군데군데 떨어져있다. 바로 싱크대에 올려둔 작은 접시를 살펴봤다. 떡국용 육수를 내고 건져낸 멸치를 담은 그릇이다. 일곱 여덟 마리였던 멸치가 딱 한 마리 남았다. 범인은 멸치 똥과 대가리의 쓴맛을 싫어하는 취향 확실한 놈이다. 게다가 한 마리 남겨두는 주도면밀함까지. 예사 녀석이 아니다. 지능범이다.

유능한 탐정은 흔적과 대화를 나눈다고 했던가, 주변을 살피다 스모킹건을 발견했다. 멸치 접시 근처에 냄비 하나가 있었는데 뚜껑에 한 오라기 털이 붙어있는 것이다. ‘노랗고 윤기 나는 저 터래끼의 주인은...’ 유력 용의자를 찾으려 고개를 돌렸더니 이미 녀석이 내 뒤에서 태연히 야옹거린다. 기상 후 물을 마시고 습관적으로 미오에게 말린 소고기를 주는데 아마 그걸 달라고 운 것 같다. 나는 남은 멸치 한 마리로 바로 현장검증에 들어갔다. 미오는 신나게 멸치를 씹다가 대가리랑 멸치 똥만 뱉어낸다. 잡았다 이 멸치도둑!  

내가 깨어있을 땐 관심 없는 척 하다가 새벽에 먹어치웠다는 점, 굳이 한 마리를 남겼다는 사실이 너무 웃기고 귀여워서 미오를 그 자리에서 꽉 안았다. 미오는 사람 음식에 1도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멸치를 저렇게 잘 먹는걸 보니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나 싶기도 했다.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오는 소고기 달라고 야옹 야옹댄다. 이 맛에 반려동물이랑 지내나보다.

사진은 괘씸죄로 찍은 머그샷. 널 내 품에 구금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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