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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Aug 10. 2018

싸가지 없을 권리

SNS에서 나를 지키는 법


나는 전반적으로 친절하지만 상대방이 도를 넘었다 싶으면 가차 없이 항의한다. 충돌은 간헐적으로 발생하지만 우발적으로 성내진 않는다. 나름 심사숙고 하고 화낸다. 가장 많이 고려하는 게 상대와 나의 ‘관계’다. 같은 말도 상대와의 친분, 공통분모 등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까닭이다.

비서로 일할 때 페친 신청이 엄청 들어왔다. 초반엔 신분만 확실하면 그냥 받았다. (타임라인이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도배되는 게 싫어서 상당수는 언팔로우 했다) 특정 게시글을 보고 친구 신청을 해오는 사람도 적잖았는데 그 경우엔 반가운 마음으로 수락했다. 공통분모가 확실히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고 나 역시 그들의 포스팅을 즐거운 마음으로 보고 있으니까.

헌데 몇몇이 문제였다. 딱히 공통분모나 교류도 없었던 남자가 다짜고짜 페메로 ‘친해지고 싶다’고 띡 메시지를 보내서 무대응했더니 계속해서 페메를 보냈다. 혹자는 친구 수락하자마자 거의 모든 내 사진에 좋아요를 눌렀다. 이런 사람이 몇 명 있었다. 무서워서 친구 끊기를 눌렀다. 3~4년 전쯤에도 어떤 글쓰기 커뮤니티를 계기로 몇 몇과 교류하게 됐는데 그때와는 다른 양상이다. 당시 알게 된 이들은 친구신청을 하면서도 경계심을 풀고자 어떤 경위로 나를 알게 됐고 어떤 점 때문에 친분을 맺고 싶다고 명확히 밝혀왔다. 내가 무슨 폭풍 셀렙도 아니고,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흔쾌히 수락한 덕에 지금까지 그 분들의 재미난 글과 포스팅을 보고 있다. 근데 그때가 마지막 성수기였나 보다. 지금은 호기심보단 공포와 경계심이 앞선다.

얼마 전엔 무척 불쾌한 일을 겪었다. 페친이 마구 들어올 때 별 생각 없이 수락한 어떤 중년 남성이 거의 테러 수준으로 댓글을 달았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친한 척 하는 게 어색하고 불편해서 그냥 방치했다. ‘언젠가 제 풀에 지쳐 떨어져 나가겠지’ 안일하게 생각했다. 헌데 그게 아니었다. 한번은 그 사람이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나 한 법한 농담을 댓글로 말했다. 임계치를 넘어선 그 사람에게 말했다. 악의 없는 건 알지만 이런 말을 주고받을 관계가 아닌데 불편하다고. 나는 당연히 조심하겠단 말이 돌아올 줄 알았다. 근데 답변이 가관이었다. 그 사람이 ‘내가 느낀 대로 말했을 뿐’이라고 응수(?)해오는 게 아닌가. 아니 그러니까 ‘느낀 대로 말할 관계’가 아닌데 그걸 자꾸 다니까 불쾌하단 거잖아. 앞의 말을 최대한 친절하게 전했더니 그 사람은 친구 끊기로 응답했다. 아싸 가오리. 반성까지 할 위인인진 모르겠지만 자신의 언행이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으니 그것만으로도 반쪽짜리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객관화와 자기반성 단계를 거쳐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친구에게 이 상황을 공유했다. 나의 항의가 정당한 것 같냐고. 친구는 이 답정너 같은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며 덧붙였다. ‘처자식까지 있는 중년 남자가 젊은 여자한테 한 소리 들어서 자존심 상했을 거야. 자기가 느낀 대로 말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패기도 이런 상황이 생소해서 나올 수 있던 거야’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지만 내가 겪은 일련의 소동들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교차하는 SNS의 특성과 젠더 권력이 뒤얽힌 결과물인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SNS라는 공간은 관계 형성 과정을 압축시켜 그것을 재고할 기회를 박탈했다. 사진과 글이 가득한 내 페이스북 계정은 누군가의 인식 체계를 경유해 나를 ‘젊고, 말 걸어도 되는 여자’로 각인시키는데 한 몫 했을 테고. 이해할 아량까진 없지만 그들로써는 나의 회피와 반격이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겨우 이런 일을 겪었다고 해서 타고난 SNS DNA(+관종력)가 소멸될 리 없다. 다만 귀찮은걸 무척 싫어하는 성격임에도 앞으론 친구는 좀 가려 받아야겠다. 예의 없는 사람들한텐 달려 들거다. 싸가지 좀 없으면 어때. 친절한 인내보단 불친절한 안온함이 내 정신건강에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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