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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Mar 27. 2018

나쁜 선배, 좋은 후배

낭만과 억압이 공존하는 공간, 캠퍼스


학창시절의 나는 위계질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면식이 있는 후배가 인사를 하지 않으면 흉봤고 후배의 농담에 분개했다. 정작 나는 1, 2년 선배란 이유로 후배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막말을 던지기 일쑤였는데. 당시 번호를 물어보는 후배들에게 번호와 술을 교환하는 방식을 술자리 규범처럼 받들인 나였다. 반대로 내 인사를 시큰둥하게 받는 선배의 모습에 쫀 적도 적잖다. 옹졸한 이유로 후배들을 못살게 구는 선배들의 모습에도 눈감았다. 강약약강의 극치다.

학교란 울타리를 벗어나고 나서야 그것들이 말도 안 되는 행태였음을 깨달았다. 학교 몇 년 더 먼저 다닌 게 벼슬도 아닌데 말이다. 한번은 대학 동기 녀석과 학교 내 위계질서를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친구는 말했다. 그때 술자리에서 후배들을 못살게 굴던 선배에게 죽빵 날리지 못한 게 후회 된다고. 나 역시 그랬다. 자기 맘에 안 든다고, 성에 안 찬다고 나나 후배들에게 항복을 권하던 선배에게 대들지 않은 게 아직도 아쉽다. 내게 캠퍼스는 낭만과 추억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억압과 폭력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선배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들이었다. 운이 좋았다. 그들은 위계 대신 조직의 규범을 내게 알렸고 일과 관련한 부분에서만 혼을 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도 있었다. 이유를 수긍할 수 있든 없든 깨지거나 혼나는 건 견딜 수 있는데 내 가치를 재단당하는 일은 참기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되뇌었다. 나도 학교에서 자의적인 판단으로 누군가를 재단하지 않았나. 인사성이 없다고, 이성에게 더 상냥하다고 그 사람을 별로인 애로 낙인찍지 않았나. 나를 달래기 위해 발동한 생각 체계가 도리어 자괴감을 낳은 꼴이다.

졸업하고 후배란 프레임을 빼고 보니 참 멋진 아이들이 많다. 그 아이들이 제 갈 길을 찾아 역량을 펼치는걸 보면 샘도 나고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싶다. 반면 초라한 선배도 적잖게 보인다. 커리어의 성패를 떠나 아직 선배병에서 못 벗어난 이들을 보면 우습고도 애잔하다. 대학 시절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위계란 벽을 깨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했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 그리고 선배와 후배란 타이틀을 깨고 친구가 된 이들에겐 정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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