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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Mar 20. 2017

리비도

영화일기 - 25살의 뜨거운 성적 호기심

https://youtu.be/ZwLusGU9go0

Breakbot의 My toy 뮤직비디오를 보다 기시감이 들었다. 거대한 가슴 모양의 쇼파, 사랑의 과정을 통제하는 실험실. 우디앨런의 ‘그’ 영화와 비슷하다. 우연의 일치일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오마주일거란 생각이 스친다. 매직 인 더 문라이트나 미드나잇 인 파리냐고? 놉 그럴리가. 바로 ‘섹스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는 모든 것(1972)’이다.

두둥! 우디앨런의 숨겨진 명작(?)

2013년의 어느 초여름날 나는 이 영화와 연을 맺었다. 당시 볕 잘 드는 원룸에 살던 나는 친구들을 불러 영화보고 요리해 먹는걸 낙으로 살았다. 하루는 15년 지기랑 불똥이 튀었다. “우리 진짜 야한영화 연달아볼래?” 둘은 머리를 맞대고 영화 선정에 골몰했다. 하나는 분위기가 야한 거, 다른 하나는 독특하게 야한 거 보자. 고심 끝에 애드리안 라인의 ‘나인 하프 위크’와 우디앨런의 ‘섹알싶모’를 골랐다.

야한 영화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그렇게 리비도의 밤이 깊었다. 우리는 치킨과 마실 것을 대동하고 밤을 맞이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나하위’부터 봤다. 젊은 남녀가 9주일 반 동안 아주 제대로 불장난치는 내용이다.(물론 가슴앓이도 한다) 소문대로 화끈했다. 왕년 CF 감독다운 애드리안 라인의 감각적인 연출은 친구와 나의 횡격막에 연신 훅을 날렸다. 두 남녀가 얼음으로 장난(?)치는 장면에선 숨도 못 쉬었다. 침 삼키는 소리가 크단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전성기 미키 루크는 어찌나 잘생겼는지 비견할 이가 없을 정도. 상대역인 킴 베이싱어의 트렌치코트라도 되고 싶었다. 결국 우리는 치킨을 거의 다 남겼다.

전성기때 미키루크가 이 정돕니다 여러분

심쿵모드를 겨우 진전 시키고 ‘섹알싶모’를 재생했다. 성(性)에 관한 상상을 담은 여러 단편으로 구성된 영화다. 한편 한편이 기발한건지 기괴한건지 분간할 수 없는 수준이다. 친구와 나는 그중에서도 거대한 유방이 인류를 공격하는 에피소드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텔레토비가 뛰 놀 법한 동산을 누비는 초대형 가슴이라니. 그쯤 되자 남은 치킨을 먹을 엄두가 안 났다. 25살의 시네마틱 리비도는 치킨 잔류라는 사상 초유의 결말을 낳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그...

식은 치킨보다 더 비극적인 이야기가 남아있다. 리비도의 밤이 있고 며칠 뒤 노트북이 장맛비에 젖고 말았다. 노트북은 공식 수리 센터에서 사망판정을 받았다. 전자 반려북의 갑작스런 부재를 감당할 수 없던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외대 근처에서 수리 기사를 수소문했다. 아저씨는 용산에 용자가 있다며 고칠 수 있다고 날 달랬다. 그는 모든 파일을 복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예.

열대야의 아스팔트 마냥 후끈했던 리비도의 열기는 장맛비에 차갑게 식고 말았다.


노트북이 퇴원하던 날 나는 수리점에서 녀석과 재회했다. 아저씨는 그 자리에서 전원을 켜서 누락된 건 없는지 한번 확인해보라고 했다. 전원을 켰다. 아뿔싸 내가 그 영화들을 바탕화면에 뒀었구나. 야시꾸리한 제목과 헐벗은 썸네일이 나를 반긴다. 네 이상 없네요. "수리비는 18만원이에요." 네 감사합니다. 이런 열여덟, 열대야의 아스팔트 마냥 후끈했던 리비도의 열기는 장맛비에 차갑게 식고 말았다.


우디 앨런 아찌. 큰 추억 주셔서 감사함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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