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친구를 떠나(?)보내며
어릴 땐 지은이가 (쪼금) 미웠다. 뭔 놈의 상장을 뭐 그리도 많이 받아오는지. 명장 도서관의 책을 왜 그리도 빨리 읽어대는지. 고1 짜리가 고3들 나가는 토론대회에서 왜 상패를 거머쥐고 왔는지. 지은이의 포트폴리오가 차곡차곡 쌓일수록 엄마의 잔소리도 누적됐다. 미안 엄마. 그때의 내겐 아구찜, 음악과 만화책이 세상의 전부였어.
입시 지옥에서 벗어나 성인이 되었을 때 비로소 인간 송지은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 내게 연대 도서관을 몰래 탐방하게 해준 첫 사람, 지금은 사라진 신촌 닥터 빈스로 인도해준 첫 사람, 안국역 인근의 수제버거집을 알려준 첫 사람, (지금은 MIT에 진학한) 서울대 공대생을 소개팅 시켜준 첫 사람, 연이은 탈락에 기가 죽은 내게 앞으로 펼쳐질 30대가 기대되지 않냐며 청사진을 보여준 첫 사람 송지은.
예전에 지은이가 소개팅을 시켜주겠다고 하길래 나를 어떻게 묘사했냐고 물었다. 지은이는 '지적 허영이 약간 있는 자유인'이라고 답했다. 정곡을 찔린 것 같아 깔깔 웃었다. 당분간 안국이나 명동에서 지은이와 도가니탕을 노나먹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무지 섭섭하지만 잘 살았으면 좋겠다. 미국 꼭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