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안소니 홉킨스와 나의 30대
https://m.youtube.com/watch?feature=youtu.be&v=1LGVGekPSzo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박사는 사실 작곡가였다. 영화배우 안소니 홉킨스는 젊은 시절 음악가였다. 그는 20대 때 작곡한 자신의 곡을 완벽하게 연주해줄 이를 기다려왔다. 네덜란드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앙드레 류가 이 아름다운 왈츠 악보를 건네받았다. 무려 50년 후의 일이다.
곡의 제목은 그리고 왈츠는 계속된다(and the waltz goes on)이다. 이름처럼 곡을 들어보면 삶의 기승전결, 희로애락을 곡에 담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곡의 중후반부쯤(영상으론 7분 50초쯤) 오르골소리가 나오다가 갑자기 웅장해지는데, 난 이 부분을 들을 때마다 유아기에서 청년기를 거쳐 황혼기로 갑자기 접어드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른바 주마등 효과다.
그저 듣는 것도 좋지만 나는 자신의 음악이 연주되는 것을 지켜보는 안소니 홉킨스의 모습과 함께 감상하는 게 더 좋다. 연주될 당시 70대였던 그가(현재는 80대다) 20대의 꿈을 관망하고 있다. 그와 그의 아내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었는데 입가엔 미소를 띠고 있다.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이미 부와 명예를 거머쥔 세계적인 배우가 젊은 시절의 꿈을 재현하고자 앉아있는 모습만으로도 뭉클하다.
4년 전 이 노래를 처음 알았을 때, 제목과 곡의 흐름과 비하인드 스토리에 경도돼 하루 종일 재생했었다. 나도 안소니 홉킨스처럼 살고 싶었다. 불가피하게 놓아야 할 꿈이 있더라도 잠깐 유예할 뿐 언젠가 이루고 마는 끈질긴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었다. 한니발 렉터가 되고 러드로우 대령이 되고 디에고 데라 베라가 되고 오딘이 되고 포드박사가 되더라도 언젠가는 안소니 홉킨스로 돌아오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이 치솟았다. 사춘기 소녀같은 발상이지만 진심이다. 노화와 시간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만, 작디 작은 꿈의 조각조차 모으며 내 퍼즐을 완성하고 싶다.
어울려 지내던 89년생 90년 친구들의 앞자리가 죄다 3으로 바뀌었다. 유유상종이라고 어느 하나 겁내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앞으로의 10년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된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30이라, 아직 무한정 젊지만 책임의 무게는 분명 20대와는 다른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겁먹지 않고 도전하고, 자신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 놓친 조각이 있다면 친히 그것을 주워주는 아량도 베풀었으면 좋겠다. 함께 성장하면서도 타인의 한결같은 부분을 발견할 수 있는 게 관계맺음의 묘미인 것 같다.
그리고 왈츠는 계속된다니 제목하나 기똥차게 잘 지었다.
+첨부한 영상에서 곡은 4분부터 시작된다. 전반부는 앙드레류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