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코피에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나는 클알못이다. 음악을 그렇게 좋아하고 학창시철 음악만큼은 100점을 놓친 적이 없는데 그때 공부한걸 싹 다 잊었다.
감독의 삶이나 페르소나를 이해하고 보는 영화가 괜히 더 재미있듯, 올해는 클래식 공부를 좀 해볼까한다. 오로지 듣는 재미를 위해서다. 관심가는 작곡가 중심으로 쬐끔 공부해봤는데 아직은 미약한 수준이다. 책이라도 찾아봐야겠다.
특히 음악 자체 보단 영상과 음악의 결합을 좋아한다. 영화 삽입곡에 환장한다. 감독 인터뷰를 읽을 땐 감독이 ‘왜 이 씬에 이 음악을 넣었는지’ 설명하는 대목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 <밀정>도 그랬다. 사실 영화 자체는 감흥이 없었지만 볼레로나 슬라브 무곡이 흘러나왔을 땐 좀 소름끼쳤다. 밀정에서 한국 발라드가 흘러나왔으면 이 영화는 그냥 스쳐가는 영화 중 하나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최근에 접했던 영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 속 클래식은 프로코피에프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클래식 좋아하는 친구의 추천으로 가끔 듣던 곡인데, 술에 깨서 애매하게 잠이 오지 않던 어느 여름 밤 봤던 레오 까락스의 <나쁜 피>에서 이 노래를 다시 만났다.
사실 주인공 알렉스(드니 라방)이 데이빗 보위의 모던 러브에 맞춰 질주하는 장면 그 하나가 보고 싶어 나쁜 피를 재생했다. 근데 뜻밖의 순간에 귀크러시 당했다. 알렉스의 전화 연결음이 로미오와 줄리엣 서곡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연결음으로 저런 곡을 설정할 수가 있지. 고딩 때 허밍 어반 스테레오의 바나나 쉐이크 따위를 컬러링으로 설정했던 내 비루한 취향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하 역시 불란서 것들이란.
나쁜 피는 중심 서사를 향해 치밀하게 전개되는 스토리 중심의 영화는 절대 아니다.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관계와 그 관계 속에서 우러나오는 시적인 대사에 더 집중해야 하는 그런 (전형적인 프랑스 예술) 영화다. 표면적으로 재밌는 영화는 절대 아니지만 메타포나 영화 장치를 분석하는 재미가 쏠쏠한 그런 영화다.
영화가 끝난 후 종일 로미오와 줄리엣 서곡이 귀를 맴돈 바람에 나는 결국 새벽 5시나 되어서야 잠들 수 있었다. 왜 하필 로미오와 줄리엣이었을까. 서로 사랑하지만 사랑해선 안 될 안나(줄리엣 비노쉬)와 알렉스의 운명의 메타포였을까. 답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정답이 없어서 재밌다. 이런 고민을 안겨줄 콘텐츠를 더 자주 접하고 싶다. 앞으로 좀 더 양질의 고민을 할 수 있게 클래식 공부를더 열심히 해야겠다. 이상 클알못의 소박한 다짐 끝.
+나쁜 피에서 앳된 줄리 델피를 만날 수 있다. 사랑스러움의 극치다. 하 역시 불란서 것들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