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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Aug 23. 2019

Arturo Marquez - Danzón No. 2

스페인어 포기자의 아쉬움

https://youtu.be/PgcrLj2DAkM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굴러 들어온 복을 걷어찼던 것 같다. 학부시절 전공인 스페인어에 흥미가 없었다. 지방 고등학교 출신에 정시로 대학을 입학한 나는 내가 언어에 소질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대학에 들어오니 언어 천재가 너무 많았다. 영미권 국가나 중남미에서 성장해 스무살에 이미 영어, 스페인어 따위 씹어 먹는 애들 천지였다. 동사 변형 시험을 100점 받아도 말하기 수업에서 입하나 뻥긋 못하는 코리안 합죽이가 나였다.

그래서 이중전공인 경제가 재밌었다. 밀도는 높았지만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왔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스페인어’를 멀리했다. 문법, 독해, 말하기 수업보단 스페인/중남미 문화, 문학, 정치사 수업만 골라 수강하는 꼼수를 부렸다. 후자도 무척 유익했지만 당시의 나는 배움보다는 노력대비 아웃풋을 기준으로 수업을 골랐다. 자연스레 그때 공부했던 내용들은 시험 후 휘발되고 말았다.

하지만 잔재된 전공의 흔적이 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아쉬움을 느낀다. 라틴계 감독의 영화나 음악을 접할 때 특히 그렇다. 태평양 건너편 세계를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는 무기를 쥐고 있었는데, 너무 쉽게 포기한 건가 싶다. Maria Elena가 흘러나오면 지가 장국영이라도 된 마냥 맘보춤을 추면서. 몸은 기억하지만 이성은 거부하는 그런 이상한 상태로 몇 년을 살았다.

2019년 플레이 리스트 추가 작업을 야금야금하다가 멕시코 현대 클래식 작곡가 Arturo Marquez의 Danzón No. 2를 발굴했다. 익숙한 멜로디와 라틴 리듬에 매료 돼 금방 최애곡으로 급부상했다. 주로 유튜브로 감상하는데, 무조건 두다멜이나 알론드라 데 라 파라 같은 라틴계 피가 흐르는 지휘자가 이끈 것만 본다.

특히 두다멜이 베네수엘라 학생들을 지휘하는(aka 엘 시스테마) 영상은 에너지 넘치고 뭉클하다. 해당 영상의 댓글은 ‘마르케스와 두다멜은 두말할 것도 없이 라틴 아메리카 예술의 대표격이다(Márquez y Dudamel, indiscutibles representantes artísticos de Latinoamérica)’라는 둥 찬양 일색이다. 거대한 땅덩어리가 어떤 정신으로 연결돼 있고 그게 긍지로 작용하는 메커니즘이 부럽다. 그리고 이를 충분히 느끼지 못했던 과거가 못내 아쉽다.

알론드라 데 라 파라: https://youtu.be/daGlmea5QkI
엘 시스테마: https://youtu.be/EkeIcuSC4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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