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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Aug 23. 2019

적당히 불편하고 적당히 편리했던

CD로 음악을 듣던 시절을 추억하며

https://m.youtube.com/watch?v=_2iPHB6JE_c&feature=youtu.be


“가끔은 CD로 전곡을 통째로 재생했던 시절이 그리워” 오늘 만난 친구의 한마디에 잊고 지내던 기억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스트리밍으로 음악 듣는 게 일상화되기 전, ‘신보 전곡 재생’은 최애 곡을 찾기 위한 필수 코스였다. 청소나 수행평가를 하면서 CD를 돌리다 귀에 꽂히는 곡이 있으면 오디오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 트랙 넘버를 꼭 확인해야했다. 열과 성을 다하지 않으면 보물찾기는 불가능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레코드 가게를 제집처럼 드나들던 아이였다. 좋아하는 가수의 신보 발매 일만을 손꼽아 기다리다 D-day가 되면 승자의 심정으로 한정판 포스터와 신보를 쥐고 레코드점을 나왔다. 명절이 되면 아빠와 새 음반을 사러 서면의 대형 레코드점을 방문했다. 아빠는 이 아티스트가 왜 위대한지, 음악계에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 들뜬 목소리로 설명했고 나는 아빠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게 좋았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싶었던 앨범을 아빠 손에 슬쩍 얹었다.)

CD는 친구 사이에서도 각별한 매개체였다. 주머니 사정은 곤궁한데 예술적 허영은 최고조였던 중고등학교 시절, 먼저 신보를 구매한 이가 CD 공급처가 됐다. 다만 대출이 무분별하게 이뤄지진 않았다. 망가지기 쉬운 CD만큼이나 관계가 견고해야 주고받기가 가능했다.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남자애가 어셔 CD를 빌려준 적이 있었다. 먼저 전곡재생을 몇 번 해본 친구가 메신저로 몇 번 트랙이 좋다며 추천해왔다. 나와 그 친구는 메신저로 밤새 재잘댔다. 거의 다 잊어버린 중학생 시절의 기억 중 선명하게 떠오르는 몇 안 되는 예쁜 추억이다.

오늘 날 CD는 음악 감상이라는 행위가 아니라 소유 수단으로서 존재하는 것 같다. 시대의 필연이라지만 문득 그 특유의 물질감을 느껴보고 싶다. 그럼에도 스트리밍을 고집하는 건 가격 경쟁력이 워낙 떨어진다는 현실적 판단 때문이리라. 부연하자면 레코드점 앞에서 디데이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설렘과 CD 주고받기 놀이가 자리할 공간이 더 이상 없기에 CD를 추억만 할 뿐 찾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적당히 불편하고 적당히 편리했던 시절이 그립다.

+ 첨부한 곡은 어셔 CD를 빌려준 친구와 내가 가장 좋아했던 어셔의 Follow m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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