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영과의 만남
금요일은 모델하우스가 개관하는 날이다. 내가 모델하우스 취재 가는 날이면 비가 온다. 비가 오면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 기사에 집중하다가도 창밖을 보며 괜히 감상에 젖고 만다. 이런 여유가 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적당한 채찍질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7월 26일은 채찍질이 절실한 날이었다.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작가를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날은 고구마로 점심을 때워가며 기사에 집중했다. 땀에 찌든 모습이 첫인상이 되고 싶지 않았다. 조상님 영혼까지 끌어모아 기사를 마감하고 강남에서 연남동으로 향했다. 비에 젖은 연남동 골목길의 냄새에 괜히 마음이 두근거렸다.
출판사에서 주최한 행사가 아니라서 북토크라기보다는 문학 살롱같은 느낌이었다. 행사 제목도 ‘박상영 작가가 알려주는 틴더 매치 필승법’이다. 연남동 편집실이 주관했다. 키치한게 딱 내 취향이다. 저자와 참가자들은 편안하게 질문을 주고받았다. 섹스 취향을 가감 없이 드러낸 외국인과 틴더에서 매칭돼 틴더를 지우고 말았다는 귀여운(?) 고충부터, 연애할 때마다 헌신하다가 헌신짝이 되고 만다는 비운의 사연까지 내밀하지만 보편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토크가 끝나고 작가와 포토타임을 가졌다. 우와 영광의 순간. 들뜬 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따봉! 소수성, 세대 갈등, 청년 문제 등 묵직한 이야기를 경쾌하게 풀어낸 재능에 경의를 표하며 당시 오갔던 대화 내용과 책에 대한 감상을 정리해본다. (시간이 꽤 오래 지나서 복기한 워딩이 정확하지 않다는 점 양해 바람)
1. 아니 카일리 미노그 팬을 책으로 만나다니
“왜 카일리 미노그에요?”
행사 전 사전 질문을 취합했다. 나는 왜 카일리 미노그냐고 물었다. 책에 수록된 4개의 에피소드 중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가수 카일리 미노그의 이름은 중요한 문학적 장치이자 메타포로 사용된다. 카일리 미노그의 팬으로서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함의하는 바는 가볍지 않다. 카일리라는 명칭이 hiv 바이러스를 대체하는 용어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질환을 디바의 이름으로 치환해버리는 엉뚱함. 이 책의 매력이다.
박상영 작가는 “제가 좋아하는 가수라서요”라고 답했다. 단지 좋아하는 작가와 취향이 겹친다는 이유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가장 좋아하는 남자 배우인 최다니엘이 내 최애인 교촌치킨을 선호한다고 해도 이렇게 기쁠 것 같지는 않다.
2. 가장 특별하고도 가장 보편적인 사건, 연애
책을 관통하는 단어는 단연 ‘연애’다. 불안한 현실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빠져들고 마는 치명적인 연애사(우럭 한점 우주의 맛)부터 우정과 애정의 밸런스가 조화로운, 그만큼 가슴 저릿한 상실감을 남긴 연애사(대도시의 사랑법, 늦은 우기의 바캉스)까지. 다양한 연애 패턴이 책에 등장한다. ‘정조 관념이 희박’한 재희와 화자의 똥꼬발랄하지만 멜랑꼴리한 에피소드 ‘재희’를 읽을 땐 내 옆의 재희와 책 속 재희를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각 에피소드를 마무리할 때마다 지난 사람들이 떠올랐다. 축복하고 싶은 이름, 저주하고 싶은 이름들이 교차했다. 영과 그의 연인들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자기로 시작해 개새끼로 끝난 연애, 이름을 입에 담는 것조차 마음 아픈 연애 등 여러사건들이 나의 20대와 30대를 채웠구나. 나 꽤 부지런히 살았네. 문득 각 연애의 끝에 선 내 모습을 떠올리다 이불킥을 하고 말았다.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새벽길을 “모든 게 다 망한 디스토피아에 오직 두 사람만 남은 것 같은 기분”이라고 묘사한 대목(늦은 우기의 바캉스)이다. 이 새벽길의 배경인 이화사거리 근처에 사는 바람에 그만 과몰입하고 말았다.(이놈의 자의식 과잉) 한낱 우주 먼지가 나의 우주가 되는 기적, 회색 도시가 ‘나의 서울 시티’가 돼 버리는 마법. 연애의 묘미가 아니었던가. 찰나의 특별함이 흔한 연애 사건으로 풍화돼버림을 수없이 체화했음에도 사랑에 빠지고 마는 건 우주 먼지 속에서 우주를 찾고야 마는 중독성 때문이리라.
3. ‘쓰기’가 해방구 일 줄 알았는데, ‘읽힘’이 되레 날 가둬버렸다
이날 박상영 작가는 작가로서의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책이 유명해지면서 딜레마적 상황에 처했다고 전했다. 책이 ‘자전적’ 소설 형식을 차용한 바람에 책 속 화자의 말과 행동을 인간 박상영의 것으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소통하고, 널리 공감하고 싶어서 글을 썼는데, 출판물 속 활자가 자유인 박상영을 옥죄버린 모양새다. 책은 창작물이지, 박상영의 전기가 아닌데 전기로 받아들이는 독자들이 있어 억울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너무 공감돼서 무릎을 탁치고 말았다.
완전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상황에 처한 적이 많다. SNS에 올린 글이나 기사로 나를 재단 당하는 일 말이다. 온라인에 주로 에세이를 올리다 보니 나를 ‘감성소녀’, ‘문학소녀’라고 칭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표현과 거리가 먼 인간이다. 오히려 사회과학 서적을 즐겨 읽는다. 기자를 준비할 땐 주 2회꼴로 논술을 토해냈다. 내놓기 부끄러우니까 공개하지 않은 거지.
물론 나의 관심사와 성향이 창작물에 묻어날 수밖에 없지만 ‘표출한’ 것들이 내 전부는 아니다. 그것들은 나를 구성하는 일부이며, 내가 정리할 수 있었기에 의도적으로 세상에 내놓은 것일 뿐이다. 표현물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님을, 그에겐 우리가 영원히 알지 못할 세상이 존재함을 알아줬으면 한다. 창작도 일종의 전략이니까.
- 마지막으로 일과 병간호로 피로했던 나의 7월을 웃음꽃으로 장식해준 박상영 작가에게 감사 인사와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다. 혜화에서 마주치면 발랄하게 인사하겠슴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