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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Oct 06. 2020

당신은 불안을 사랑할 수 있나요?

불안을 감싸안는 용기, 그 담대함에 관하여

“요즘 좋아보여”

올해 들어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기쁘면서도 한편 씁쓸하다. 이제 겨우 본전 찾으며 살아가는데, 20대 중후반의 내 삶이 얼마나 처연했으면 ‘보통의 삶’을 영위하는 게 좋아 보이는 걸까.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 건 사실이다. 지옥 같던 전직장에서 탈출해 일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에 자리잡았고 다정하고 사려 깊은 연인과 따뜻한 관계를 이어가는 중이다. 큰 수술을 거친 엄마는 기력을 회복했고 조카는 나날이 예쁘게 성장한다.

배부른 소리지만 불안이라는 안개가 시야를 가렸던 과거가 때때로 그립다. 그때의 나는 불확실성에 허덕이며 환희와 절망의 망상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나라는 인간의 가치를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 치열하게 탐구했고 세상 일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때만큼 역동적으로 사고하고 나의 내면에 천착했던 시절은 없었던 것 같다. 남들에게 처연해 보였던 그 시절이 나에겐 가장 치열한 시기였다. 물질적, 심적 안정을 찾은 지금으로선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내적 황금기다.

불안을 갈망하는 피학적인 마음은 불청객 마냥 불쑥 찾아왔다. “포기하는 것도 용기다. 진다는 건 적어도 도전해봤다는 거니까.” 늦은 저녁 침대에서 뒹굴대며 봤던 웹툰 <아홉수 우리들>에 나온 대사에 눈물을 흘리고 만 것. 웬만한 일로는 울지 않는데, 눈물샘이 마른 줄 알았는데 휴대폰 화면 속 한 컷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말았다.

‘메이저 언론사 입사’라는 꿈을 접은 건 작년 늦가을의 일이다. 보름달처럼 나이는 가득 찼고 도전할 용기도 소진됐다. 현실적인 문제도 발목 잡았다. 나와 고양이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1인가구로서 푼돈으로 생활비를 버는 삶에 이골이 났다. 멋진 남자와 어른스러운 연애도 하고 작은 사치를 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경제력을 갖고 싶었다. 언론인이 되고 싶다는 목표 하나로 3곳의 언론사에서 인턴을 하고 프리랜서 에디터로 자아실현을 했던 시절을 뒤로한 채 나는 큰 꿈 하나를 접었다.

언론고시를 포기할 때는 그렇게 슬프지 않았다. 좋은 언론사에 입사한 친구들의 고충을 들으며 환상은 무너졌고 꿈보단 경제력에 대한 열망이 더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엔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나 보다. 웹툰 대사 하나로 꽁꽁 숨겨둔 미련이 와르르 무너져버렸으니까.

무엇보다 그리운 건 목표달성의 문턱을 앞두고 설렘과 절망을 오가던 과거의 나다. 진심을 담아 자기소개서를 쓰고 떨리는 마음으로 필기고사장에 들어갔던 그 마음. ‘내 출입처는 어디가 될까’ 설레발 치며 들어섰던 면접장의 풍경. 탈락통보 문자에 구멍 뚫린 가슴을 스치던 가을바람. 붉어진 눈시울로 다음 채용 자기소개서를 채워 나가던 독기. 그 모든 열정의 순간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다행히 현재 직장은 만족스럽다. 기자일과 동떨어지지 않은 에디터로 활동하며 피땀 섞인 결과물을 독자들과 공유한다. 최근엔 SNS운영과 디지털콘텐츠 제작이라는 중책(?)을 부여받아 새로운 영역을 개척 중이다. 새로운 세상에서 낯선 규칙을 배우는 건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즐거움과 생산적 부담감을 동시에 안으며 일에 임하고 있다.

지난 추석 때 친척을 만나고 온 연인이 취업준비생 사촌동생이 안쓰럽다는 말을 했다. 은행권 입사가 목표인 사촌동생은 코로나19 타격으로 불거진 취업 혹한기에 힘들어하고 있다고 한다. 남일 같지 많아 마음 아팠다. 목표가 뚜렷할수록 간절함은 커진다는 것을, 그 문 하나를 넘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덕이다. 내 사촌동생이었다면 “여건이 되는 한 꼭 목표를 달성해라, 설령 꿈을 접더라도 ‘좋아보인다’는 말을 들을 날이 온다”고 말해줬을 텐데.

불안이라는 감정은 참 양가적이다. 당장의 불안은 내면을 갉아먹는 독이지만 불안으로부터 탈피하려는 활력과 에너지 역시 불안에서 파생된다. 예상치 못한 감염병의 장기화로 불안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구직 기간이 길어질까 우려하는 취업준비생, 이직준비생도 많을 테다. 이들에게 불안해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불안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지나치게 불안에 천착하지 않는 한 삶은 언젠가 복구된다. 물론, 어떻게든 삶을 꾸려 나가겠다는 책임감이 동반될 때에 한해서다.

현재 불안하다면 그 미운 마음을 감싸 안아주자. 불안은 더 나은 삶을 갈망한다는 의지의 방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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