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면서 "사람들은 처음 보는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 하는 것을 언뜻 보면 다 깜짝 놀라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겨서 구하게 된다"는 예를 들었다.
아이를 구하는 이유는 나의 손해가 매우 적고, 아이를 구하는 게 '선한 일'이라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그럼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선한 일'에 우리는 어느 정도 수고와 희생까지 감수할 수 있을까? 흔히 생명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고귀한 가치라고 이야기 하지만, 현실에서는 돈이 생명보다 우선시 된다고 느끼는 많은 상황을 만나게 된다.
아이들은 마스크도 없이 노동에 시달리지만, 하루 일당은 400원 정도. 위험한 노동 종사 12세 미만 아동의 비율은 1900만 명. 매년 약 22000명의 어린이가 일터에서 사망한다. 나는 그저 일반인이고, 지구 반대편에서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일을 다 도울 수는 없고 나의 잘못은 아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특별한 능력이 있다면 어떨지 상상해보자. 산을 박살 낼 정도의 '염동력'과 지구 반대편으로 제한 없이 '순간이동' 할 수 있다면,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인생 전체를 바칠 수 있을까? 그것은 영웅의 의무인가?
네이버 웹툰 '이런 영웅은 싫어' 175화
이 장면은 인류 전체의 도움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 전체를 희생한 영웅과, 세계 최강의 능력을 가졌고 남을 돕고 싶은 착한 마음을 가졌지만 자신의 행복과 인생도 소중하다는 고등학생 초능력자의 논쟁을 보여준다.
빈민국의 아이들이 하루 400원, 시급 50원을 받고 착취당한다면 내가 400원 정도 대신 내주고 하루 정도 푹 쉬게 해주고 싶다. 한 달에 만원으로 푹 쉬게 해주고 싶다. 논의를 확장시키면, 가끔은 1000원 넘는 비싼 음식도 먹여주고, 구멍 안 난 옷도 입을 수 있게 해 주면 좋겠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는 것을 내 맘대로 정의해보면, 어린아이가 노동착취에서 벗어나 10년 정도 의식주 보장해주고 교육받을 수 있게 해 준다면,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논의의 편리성을 위해 내가 알지 못하는 먼 곳에 있는 5세 아이의 생명은 나에게 얼마의 가치가 있는가? 생각해보자.
개인적으로 후원하는 '한국컴패션'의 계산으로 한 달 45000원, 1년 54만 원, 10년이면 약 540만원 정도 금액이 소모된다. 한 사람을 10년 동안 전인적으로 케어하고 교육시키는데 비용은 약 500만원이고, 아직도 굉장히 많은 아이들이 후원을 대기하고 있다. 당신은 마음먹으면 언제든 500만원으로 한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 이론에 따라 생각해보면, 안 팔리는 아이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타인의 생명의 시장가치는 500만원보다작아 보인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의 생명은 500만원 이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몇 명의 아이를 후원하고 있다. 사실 몇 명을 더 후원한다고 해서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상황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약간 더 맛있는 음식, 좋은 옷, 즐거운 취미생활 등 나의 만족감을 위해서 수많은 아이들의 '어려움'은 다 알지만 애써 무시하고 나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 눈앞의 죽어가는 사람을 죽게 내버려 두는 행위와, 눈앞에 보이지 않지만 멀리서 죽어간다는 것을 알고 방치하는 행위는 큰 차이가 있는 걸까?
'신'이 내게 "너는 죽어가는 생명을 알고, 도울 수 있었는데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느냐?" 라고 묻는다면 대답이 궁하다.
과거에는 몰라서 도울 수 없었다는 마음 편한 핑계가 '정보의 발달'과 손만 까딱하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핑계를 대기가 조금 곤란해졌다.
맹자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양자(楊子)'는 '위아설(爲我說)'을 주장하여
拔一毛而利天下 不爲也 발일모이리천하 불위야
자기 몸의 털 하나를 뽑아서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않았고
'묵자(墨子)'는 '겸애 교리설(兼愛交利說)'을 주장하여
摩頂放踵 利天下 爲之 마정방종 이천하 위지
자신의 정수리·머리 꼭대기부터 발뒤꿈치까지 다 닳아 없어지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면 실행하였다.
맹자는 이 두 사람 모두 극단적이라고 비판하였다.
"어느 한 가지만 고집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그것이 도(道)를 해치기 때문이며 한 가지 일로 백 가지 일을 막아 버리게 되는 까닭이다."
우리는 슈바이처, 마더 테레사, 이태석 신부 등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쳐 헌신한 위대한 위인들을 알고 존경하지만 '나는 그렇게는 못살게다'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 자신이 소중하고, 가까이 있는 가족, 친구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으며 지구 반대편에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은 멀게만 느껴진다. 나의 능력이 되면 어느 정도는 돕고 싶지만, 크게 손해보고 싶지는 않다. 내가 맛있게 먹는 삼겹살 1인분이 아이가 한 달 내내 노동해서 받는 대가이며, 나의 2달 월급을 모으면 10년 동안 한 아이의 인생을 바꾸는 후원을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그 아이를 도울 능력과 정보가 있지만, 의무는 없다. 죽어가는 아이들에게서 눈을 돌리고 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게 즐기고, 우리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아껴주자. 그러다가 가끔 생각날 때, 내게 큰 손해가 안 되는선에서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해주는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