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급 실무자를 위한 제안서 작성 팁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제안서를 작성하는 초급 실무자들은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상황을 가정해보자. 제안서를 작성해야하는 시즌이 다가오고, 현장에서는 이런저런 통계자료가 온다. 두 유형의 실무자 모두 머릿속으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A는 단순히 데드라인이 다가오기 때문에 제안서의 빈칸을 채워나간다. 만약, A가 착한 선임을 두었다면, 그는 “작년에는 이렇게 제안서를 작성했는데 탈락의 고배를 마셨으니 참고하라.”며 유사한 제안서를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알아서 해’라는 식이다. 그렇다면, 나의 워라벨은 잠시 접어두고 마감 일자에 나의 시계를 고정한 채 묵묵히 순례자의 발걸음에 나의 모든 것을 의지해야한단 말인가? A는 생각할 것이다. ‘예산은 어떻게 짜야하는거지?’ 아니 어쩌면 이 지역을 도와야하는 이유조차 고민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설득력조차 마련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판의 완성된 스케치가 그려지지 않는다면, 제안서의 첫 장을 채우는 용기를 과감하게 만들어 내기는 쉽지 않다. 반면, B는 턱에 손을 괴고 즐겁게 고민을 시작한다. (흔히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괴짜라 부른다.) 검색창을 통해 자료를 스스로 서칭하고 누군가 도울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때론 상사에게 많은 질문을 쏟아내곤한다.
초급 실무자들은 발주처에서 제공하는 국문으로 된 양식을 현장에 전달하기 위해 영문으로 번역한다. 그러나 대부분 경험적인 이해가 다르니 동문서답으로 양식을 채워가기에 십상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수습하는 건 전적으로 중간관리자들에게 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까?
우선, 제안서의 첫 장 요약서는 마지막에 작성하고, 개요서를 하나 둘 작성해 가자. 양식을 채우기 쉬운 것부터 하나 둘 만들어 가다보면 흐름을 타게 되고 본인도 모르게 자신감을 얻게 된다. 사업의 필요성을 작성할 때 국가별 개발전략 등 지루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지만, 심사위원들의 눈에 띄는 어휘와 문장을 채워 넣는 게 중요하다. 결국, 왜 이 사업 제안서가 반드시 되어야하는지에 대해 논리적이고 간결하게 풀어내야한다.
성과관리 및 지속성, 출구전략도 (이 바닥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사업에 대한 출구전략이라니? 막연하지만, 기술적으로 냉정하게 작성을 해야 한다 (대부분의 제안서의 50%는 개발 분야의 교과서적인 내용이 있기 마련이다). 보통 이 경우 본인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쳐 작성하는 게 일반적이다. 현장에서 온 자료가 적다고 푸념하지 말고 스스로 온라인을 통해 자료를 찾고 더 필요한 자료는 미리 현장에 더 요청해서 제안서의 수준을 최대한 올려야 한다.
한 가지 팁을 공유하자면, 코이카 ODA도서관의 사업 형성조사 보고서를 열람해 보거나 자이카(JICA)의 PRELIMINARY NEEDS ASSESSMENT (FEASIBILITY STUDY) 자료들도 깊이가 있으니 눈여겨볼 만하다. (식수 위생의 경우, JMP 자료를 보면 한결 수월함이 있다.) 그리고 현지 정부의 서포트 레터를 첨부하면 심사 과정에 더욱 유리하다. 이러한 방법을 동원해서 작년에 떨어진 제안서라면 더 업그레이드를 시켜 올해는 더 나은 기회를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늘어난 사업의 수와 비례하게 늘어나는 것은 내 급여가 아닌 일의 양이다. 그러나 이 분야를 선택했다면 이런 기회를 더 소중히 여기고 달가워 해야 하는 사명과 미션 또한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예산 작성도 어렵다. 심사위원들도 예산의 적절성, 타당성, 활용 가능성을 보기에, 설득력 있는 예산 사용 계획은 사업의 선정 요인 가운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 산출단가가 현장에서 충분히 사전에 논의되었다는 설명도 중요하다. 특히 건축 및 물품 구매와 관련해 단가가 큰 것일수록 세부적인 산출내용과 대략적인 견적에 대한 사전 조사가 필요하다.
시작단계에서 교육과정을 작성해야 하고, 때론 인건비를 받을 (아직 섭외조차 되지 않은) 강사의 이력을 작성해야 한다. 현지 정부와는 협의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막연하고 짜증도 난다.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현지와 연락을 주고받는 것은 아직 선정되지도 않은 사업인데, 현지 측에 너무 긍정적인 신호를 주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기관의 연혁과 결산내용은 얼마나 중요할까? 답은 작은 단체일수록 더욱 중요하다. 유사한 사업의 실적도 중요한데, 간혹 교육 사업을 제안하고 있는데 연혁을 보건위생 등 다른 분야로 한다든가 베트남 사업을 제안하는데 다른 국가 위주의 연혁을 작성하는 건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리고 지난 사업에 대한 다양한 재원이 이루어졌음을 어필하는 것도 중소 단체에는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 결국 하나하나 생각을 하며 작성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제안서의 세계,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떤 지인은 제발 떨어져라 냉수를 떠 놓고 비는 심정으로 제안서를 어설프게 써서 제출했는데 덜컹 선정된 경우도 있고, 어떤 지인은 영혼을 갈아서 넣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작성했는데 서면조차 못 가고 탈락한 경우도 있다. 결국, 선정과정은 오직 그들만의 리그인 경우도 있나보다.
여러분이 제안서 작성의 미션을 부여받았다면, 집요하게 공부하고, 선임에게 무한 질문 공세를 퍼부어라. 그게 당연하다. 현장에서 자료가 오면 그것을 한 장 한 장 번역하는 데 시간을 허비 하지 말고, 수십장의 페이퍼일지라도 시간이 생명이니, 우선 신속하게 영문 내용을 국문 제안서에 넣은 뒤 추가적인 자료가 필요하면 현장에 즉시 (현장에서 자료를 받은 지 이틀 이내) 요구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현장에서 자료를 받고, 국문 번역을 한 경우 1주일이 소모되고, 그때서야 더 필요한 자료가 생겨 현장에 요청하면 마감기일을 맞추기 어렵다. 동시에 온라인 검색을 미친듯이 하면서 유사한 프로그램 내용들을 검색해보고 그 내용을 초안삼아 가늠할 수 있다. 선정 후 사업 실행단계에서는 현지에서 실행 가능한 범위 안에서의 정보가 오기 때문에 조정 가능한 여지는 충분하다. 그러니 힘을 조금 빼고 숲을 보며 나아가자. 내 이름이 들어간 제안서가 선정되고, 그 제안서가 실행계획서가 되고 나아가 사업이 집행되는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