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를 기억하며.

by 순순

제주에서 1년.

언제나처럼 아침 운동 중에 언니의 부재중 전화를 다시 걸어보니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언니는 사정이 있어 못 가니 엄마에게 전화 걸어주라는 얘기를 듣고 전화를 끊었다.


'아, 오늘 광복절인데. 비행기 표 없던데'


며칠 전 엄마가 여행 오신다고 알아봤을 때 연휴라 오늘 올라가는 표는 없었던 게 기었났다.

다시 검색을 해봐도 역시, 오늘 올라가는 표는 없다.


'어차피 못 가네'


얼른 송금을 한 다음 엄마에게는 뭐라 얘기를 꺼내야 하나 고민고민을 하다 전화를 걸었다.


"엄마- "

"응, 순이야?"

"응.."


"..."


".. 어, 지금 내려간다며?"

"이제 갈려고 집에서 나왔다"


"조심히 내려가고 잘 보내드리고 오세요-"

"그래야지"


".. 그래도 여기 안 내려와 있어서 다행이네"

"그러게. 어쩔 뻔 했어"


그렇게 전화를 끊고 조의금 얘기를 안 한 게 생각나서 다시 전화를 거니 안 받으신다.

에헤. 그럼 뭐. 이따-


그런데 사실은 비행기표가 없는게 조금은 다행이기도 했다.

연휴라 비싼 비행기표와 시골집까지 가기 위해 들이는 수 많은 시간들, 그리고 낯설고 무거운 분위기와 피로가 싫었으니까.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외할아버지를 얼마나 만났을까?

살면서 몇 마디나 나누었을까?

(더불어, 그럼 나는 결혼하면 사랑하는 우리 아빠를 그만큼 밖에 못 보는 건가?)


할아버지댁에 대해 기억나는 건 초등학교 명절날이나 외할머니 생신에 가끔 갔던 시골집의, 소가 있던 축사와 쏟아질 것 같은 별들.


가서도 외할아버지는 별 말씀이 없으시다.

가끔 말씀을 하셔도 걸걸한 목소리와 사투리에 한 번에 알아듣지는 못했었다.

종일 바깥일을 하시느라 집에 없으시거나 집에 있으시면 TV를 보면서 코를 골고 주무셨다.

마지막으로 뵌 것은 3년전 언니 결혼식이려나.. 먼 길을 혼자 오셔서 조용히 앉아 계시다 가셨다.


내 기억 속의 외할아버지는 그렇게 조용하고 근면하시다.


엄마에게 들은 외할아버지 이야기가 하나 있다.


엄마도 어릴 때는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농사를 짓고 밭일을 했었다.

너무너무 많은 일을 했었고 그게 지금은 부지런함이 되었지만 그 때는 참 싫었어서 나중에 외할아버지께 여쭤봤다고 한다.


"아부지, 그 때 우리한테 왜 그렇게 일을 많이 시키셨어요?"

"그러게. 그 땐 이렇게 자식 귀한 줄 모르고.. 미안하다"


얘기를 듣고 나니 알았다.

아,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항상 농사짓고 밭 일구는 시골집에 가서도 일을 해 본 적이 없구나.

그래서 그렇게 다 커서도 할머니께서 차려주시는 밥 얻어먹고만 다녔구나.


그래놓고 인간적인 삶을 살겠다고 제주도에 내려와서 유유자적하고 있으니 앞 뒤가 안 맞는데..

사람답게 살아보겠다고 끙끙대면서 정작 해야할 일에는 이런저런 핑계나 대고 말이야.


자꾸 화가 나서 이리저리 찾아보다 내일 대구가는 비행기를 검색하고

한참을 노려보다 결제를 했다.


이런다고 내 '인간다움'이 높아지지는 않겠지만

마음의 먼지는 조금 덜 낄 것 같아서.


외할아버지, 내일 오랜만에 뵙겠네요.


.. 엄마한테 송금한 건 용돈인 셈 칠까봐 -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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