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는 쉴 곳이 없다-울적할 적에/Suffer

나의 첫 작품

by 한이

제목을 보고 들어온 사람은 "뭐지?"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일단 제목이 너무 길다는 점이다. 길어도 너무 길다. 짧게 지어야 기억에 남는다고들 하지만, 이 작품의 제목은 길 수밖에 없다. 우선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은 나그네가 되어 본 적이 있는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지는 모르겠지만, '나그네'라는 단어는 지금 너무나도 생소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여기서 나그네는 '자기 고장을 떠나 다른 곳에 잠시 머물거나 떠도는 사람'이다.(네이버 국어사전) 사전적인 의미를 알게 되었다면, 예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국내든 해외든 여행하는 사람 중 특히 배낭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당돌하게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어떠한 지리적 고장에서 지리적 장소가 아니다.

당신이라고 물었지만, 당신 뒤에 괄호를 열어 '의 마음'을 넣어두고 싶다. 다시 말하자면, "당신의 마음은 나그네가 되어 본 적이 있는가?"이다. 마음대로 해, 마음이 가는 데로 등과 같이 마음도 어느 방향이나 장소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매우 추상적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마음이 나그네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마음의 위치가 어디론가 도주해버린 걸까. 어쩌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보통 직장에서나 친구들 사이에서 많이 느낄 수 있다. 직장 같은 경우에는 동료들 사이에서의 묘한 대립이 생길 수도 있고, 일 때문에 마음이 심란할 수도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파'가 나눠지면서 대립되기 마련이다. 여기도 저기도 마음이 맞지 않게 되면 방황하기는 일쑤고, 친구들 사이에서 의견만 맞지 않아도 혼란스러워진다. 그래서 마음이 방황하게 되면 대표적으로 느끼게 되는 감정은 '우울'이 아닐까 싶다. 삶에 장애물이 다가왔을 때, 그것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슬럼프에 빠지기 쉽고 그 슬럼프에 빠지게 되면 한층 더 우울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들 인생의 권태기 중 말하기를 "아, 살기 싫다."가 나올 수도 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하지 않는가.

삶에는 언제나 장애물이 생길 수 있다. 그 장애물이 거대한 산일 수도 있고, 비록 작은 돌멩이나 작은 흠일 수도 있다. 크고 작고 간에 상관없이 각자에게 있어서 마음에 파동이 생길 수도 있다. 즉, 마음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감기에 걸린 것만으로도 마음이 약해지는 사람도 있고, 성적이 생각보다 나오질 않아 방황을 할 수도 있고, 취업이 되질 않아 우울해질 수도 있고, 사업을 실패하게 되어 삶을 포기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렇게 삶에서의 나그네가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단 한 번의 삶에 마음을 추슬러 평탄하게 살아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



주광색으로 비친 작품. 나그네는 쉴 곳이 없다-울적할 적에/Suffer (1F, 22X16)(캔버스 위 아크릴)(2012)


나 또한 이 작품을 마음이 나그네가 되었을 때 완성하게 되었다. 6살부터 쭉 화가가 되고 싶었던 나는 부모님의 반대에 굴복당했다. 이유는 뻔했다.

"그거 가지고는 먹고살 수 없어."


"너에게는 천재성(재능)이 없어. 노력만으론 안돼."


나도 잘 알고 있다. 지금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림과 글 작업은 하고 있지만, 2012년은 대학교 1학년이었고 돈도 없었다. 부모님께서 용돈을 주셨지만, 용돈으로는 최대한 4,000원까지 5일 점심식사비용으로 사용했고, 최소한으로 2, 3천 원으로 살아갔다. 다행인 건 통학을 했기에 남은 돈으로는 저축을 하려고 애썼다. 많은 돈은 필요치 않다는 생각에, 돈에 대한 개념이 없어 그때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고, 대학교는 원하는 과에 진학한 것도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일은 부모님께서 계속적으로 반대하셨다.

대학교 1학년 가을이 다가올 때 나는 용기 있게 캔버스를 사게 되었다. 비록 돈이 넉넉하진 못했기에 1호를 골랐다. A4용지보다도 더 작은 사이즈. 여기에 나의 첫 작품을 만들어보자라고 다짐을 했다. 물감과 붓 그리고 미술 기초나 정보들은 스터디 모임을 같이 하던 친구 2명과 형님(학원 선생님)이 알려주기도 하고 추천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작은 캔버스 위에 차마 손을 쉽게 대지 못했다. 그렇게 캔버스 위에서도 나는 나그네가 되어있었다.

모태신앙에 개신교에 기독교교육과 출신인 나는 마음의 평안을 위해 성경 묵상을 하고 있었다. 시편을 읽고 있었다. 시편 초반에 다윗은 자신의 고난을 호소하고 있었다. 나도 친구들에게 나의 진로에 대해 상담하면, 하고프면 마음대로 하라고, 신은 무슨 상관이며 부모님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하라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마음에 못 박기는 싫어하는 티도 내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리 대범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그때는 참고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했었다. 언젠가는 알아주지 않으실까. 묵상을 계속하다가 어느 구절에서 멈추었다.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시편 146:9


구약성경에서 나그네, 고아, 과부는 그 시대의 사회 약자였다. 보호를 받지 못하고 나그네처럼 다녔고 가난했다. 그런 그들을 위해 추수를 다 하지 않고 일부를 조금 남겨둔다거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않게 하는 율법 등이 있었다. 나는 고아나 과부가 아니지만, 마음은 여기저기 떠도는 나그네 같았다. 언젠간 그도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나그네. 그 한 단어로 용기 있게 그려 나갔다. 푸른 파란색을 감추듯, 하늘색과 하얀색의 모호한 빛깔을 올리고 거침없이 붓으로 파내었다. 조금 더 그의 삶을 그려 보자. 그의 삶을 색으로, 강력한 붓질로 살려 보자. 수없이 되새기며 몇 시간을 앉아있었다. 그렇게 완성하게 된 작품이었다.





전구색으로 비친 작품.



그 당시 유일하게 작업할 수 있던 곳은 식탁 위였다. 부엌에 쓰이는 전구색 아래 그림을 그렸었다. 전등의 색에 따라 작품이 달라 보인다는 사실을 5년이 지난 지금 깨닫게 되었다. 대학교 과에서는 미술 전공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냐는 시선과 비아냥을 줄곧 받아왔기에 내가 내 작품을 다시 눈여겨보지 못했다.
그때 작품을 완성한 후, 형님에게 보여드리니 첫 작품인데 아깝다며 액자에 보관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 부모님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텐데 액자까지 할 필요가 있냐며 타박을 주었지만, 나중에 안 해줬다는 소리는 하지 말라며 지원해주셨다. 액자 하나 2만 원 대. 누구에게는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나에게 있어서는 감사할 일이었다.
현재는 부모님으로부터 회화에 관한 애매모호한 허락을 받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겨졌다. 인식이 바뀌면서 아크릴 물감, 붓, 색연필을 선물해주셨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벌은 돈으로 공모전을 시도해보며, 다양한 호의 캔버스, 물감색, 보조제 등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나그네였다. 부모로부터 허락을 얻었다 하더라도 사회에서는 아니었다. 미대에 나오질 않았으므로 그저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백수일뿐이었다.
어느 한 색으로 통일되지 못하고, 울퉁불퉁하고 규칙적이지도 못한 형태의 작품. 그림을 그릴 때 눈치를 보며 완성했던 그때 나 자신을, 그림에서 다시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나는 작가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아니, 자격이나 될까, 실력이 될까. 작가 아닌, 무명작가도 아닌 나는 차마 싸인을 남기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나그네다. 사회라는 바다 한가운데에 갈 곳 없이 있는 나그네다. 사는 날 동안에 "작가"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고 살지만, 그래도 나 자신에게는 초긍정적이게 되자고 늘 다짐하곤 한다.


나는 "나만 아는 작가"라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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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네이버 그라폴리오에 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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