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위의 첫 작품
<네이버 사전>
-여유. 물질적·공간적·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 또는 대범하고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는 마음의 상태.
-기다림. 어떤 사람이나 때가 오기를 바람.
- 흐트러짐. 여러 가닥으로 흩어져 이리저리 얽힘. 옷차림이나 자세 따위가 단정하지 못한 상태가 됨.
-생각.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 어떤 사람이나 일 따위에 대한 기억. 어떤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하여 상상해봄. 어떤 일에 대한 의견이나 느낌을 가짐. 어떤 사람이나 일에 대하여 성의를 보이거나 정성을 기울임. 사리를 분별함.
-나른한. 맥이 풀리거나 고단하여 기운이 없는. 힘이 없고 보드라운.
-오후. 정오부터 밤 열두 시까지의 시간. 정오부터 해가 질 때까지의 동안.
마음 혹은 시간에 여유가 생긴다면, 팽팽했던 긴장이 훅 풀릴 수가 있다. 그리고 긴장이 풀린다면, 노곤해질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학교/직장(로)으로 볼 수 있다. 학교/직장에 가기 전, 준비할 때에는 오늘 하루가 시작됨에서 긴장을 하게 된다. 덤으로 헛튼 상상력도 동원된다. 바로 학교/직장(가)이 무너지는 꿈을 말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기 싫어서 떼쓰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통할 리가 없다. 그래서 등교/출근을 하기 위해 걷거나 대중교통 등을 이용하러 간다. 늘 보던 풍경들을 봐오며 혹은 음악을 들으며 학교/직장에 도착하게 된다. 도착한 직후, 우리는 잠깐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일단 무사히 '도착했다'는 점과 하루를 '일탈 없이' 무사히 넘길 수 있음에 안심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교/출근(를)을 하자마자 바로 집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긴장이 무너진 탓에, 잠깐의 여유가 그것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분이 흘러, 본격적으로 수업/업무(이)가 시작이 된다. 시작과 동시에 긴장이 다시 돌기 시작한다. 아침에 일어나 처음으로 집중력을 발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잠을 잘 못 잔 사람들은 퀭한 얼굴로 다크서클과 함께 하기도 하지만, 이 상황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픈 마음에 눈에 불을 키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각자 다 다른 느낌의 3, 4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점심시간이 된다. 점심을 맞이한 이들은 눈 녹듯이 사르르 긴장이 풀린다.
점심을 먹고 난 후면, 햇살이 강하게 쬐인다. 그 햇살의 강하고 따스한 기운을 몸으로 받아, 긴장의 선이 뚝 끊겨버리게 한다. 끊겨버린 긴장 사이에 무언가가 찾아오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잠깐의 여유가 만들어낸 "졸음"이다. 졸음이 만들어낸 것은 결국, 집을 향한 마음이었다. 특히 여름을 제외한 계절들은 더더욱 절실하게 만든다. 그 덕분에 하교/퇴근 시간만이 기다려진다.
이제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끝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오전보다 더 많이 남아있다. 이 시간을 버텨야 한다. 꼭,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하지만 긴장의 선은 끊겨버렸고, 집을 향한 기다림 밖에 남질 않았다. 아침 시간의 다짐과 각은 사라져 버리고, 흐트러져 버렸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 잠옷으로 갈아입고 잠을 잔다던가, 피시방을 간다던가, 학원을 땡땡이치고 싶다거나, 책을 읽는다던가, 밀린 집안일은 한다던가, 못 본 드라마나 영화를 본다던가…. 이런저런 생각들로 햇살이 강한 오후 때 머리가 살짝 좌우로 위아래로 흔들려, 흔히들 말하는 헤드 뱅뱅이 현상이 일어난다. 눈을 강력하게 뜨고픈 마음은 굴뚝같지만, 햇살이 위에서 내려오는 만큼 눈꺼풀도 내려앉는다. 10~30분 정도의 낮잠 시간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꿀 같을까. 달달한 상상 속에서 머리는 무의식적으로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한다.
끝날 시간이다. 다들 눈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한다. 이제 다들 눈치게임이 시작되었다. 하교/퇴근 시간에 방해되는 무언가가 없길 바라면서 말이다. 헤드 뱅뱅이 시간에 떠오른 생각들은 이내 현실성의 여부를 알아보지만, 어떤 사람은 확실히 정해져 있지만, 어떤 사람은 너무나도 불확실하다. 아쉽게도 학생들은 학원으로 보통 곧장 가기에 땡땡이치고 싶은 마음만이 역력할 뿐이다. 저녁시간이 되자, 완전히 하루가 지나가버린다는 것을 느낀다. 몸으로 말이다. 눈 밑에는 검은 반달이 주렁주렁 매달렸고, 입가는 팔자주름이 푹 파이도록 내려갔고, 어깨는 수업/업무 때문에 굳어있어 축 내려가 있으며, 다리는 아침에 일어난 후부터 지구의 중력에 의해 퉁퉁 부어갈 뿐이었다. 정말로 나른한 오후였다. 얼른 주말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가득 차 있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월요일이 지났을 뿐이었다.
나른한 오후. 나른한 오후는 어떻게 보내야 될까. 몸이 지쳐 힘들거나 일이 몹시 피곤할 정도로 힘들어야 나른한 오후를 보낼 수 있을까. 아니면 침대나 소파에 누워 힘을 쭉 빼고 보내야 할까. 아니면 카페에서 여유롭게 보내다가 따뜻한 햇살에 포근해져 낮잠을 청하고 싶은 것일까.
작품 안에 보이는 그림 구조는 크게 색, 사람, 가면, 머릿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배경색'을 보면, 개나리색과 연두색인데, 치유적이고 안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만약 노란색을 햇살이라고 가장했을 때에, 햇살을 가장 느끼고 싶을 때는 언제인가라고 물어고 싶다(더 풀어서 해석하자면, 여행 가기에 언제가 가장 좋은 가이다). 개인의 취향도 물론 있겠지만, 꽃이 피어나는 '봄'과 더위가 가신 '가을'이 아닐까 싶다. 한껏 멋 부리기 좋은 계절이기 때문이다. 춘추복을 보면, 디자인이 세련되고 다양하며, 다른 두 계절에 비하면 사용하는 색감도 매우 뛰어나다. 하지만, 현실에서 봄과 가을은 가장 움직이기 힘든 계절이다. 학기가 시작되며, 업무가 과부하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꿈으로만 꿀 수 있는 여유로, 몽환적인 분위기와 환상을 나타낸 것이다.
그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가면'일 것이다. 가면은 어디에 쓰이는 물건일까. 가면은 주로 무도회서든지, 연극에서든지 등 얼굴을 감추는 것으로 많이 쓰인다. 예를 들자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친구를 찾아보자. 그 무리는 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고, 다들 가면을 쓰고 있다. 거기다 목에서부터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 코트에 검고 발목까지 올라오는 신발, 그리고 하얀 장갑을 끼고 있다고 치자. 그 무리 중 여러분의 친구를 찾아낼 수 있겠는가? 나는 아무리 친한 친구나 가족이 거기 있다 하더라도 찾을 수 없을 것이라 본다. 그 이유는 얼굴에 인식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면을 쓴다는 것은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얼굴만 감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도 숨길 수 있으며, 감정도 숨길 수 있다. 거기다 얼굴이 가려져 있기 때문에 외모 또한 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가면의 디자인은 왜 화려하지도 않고 무채색 중 하얀색일까. 흰색은 주로 순결, 단순함, 깨끗함, 순수함을 나타내지만, 그 흰색 위에는 어떠한 모든 색을 표현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캔버스 천을 보면 하얀색부터 시작한다. 온전한 하얀색은 아니지만, 그 위에 다양한 색들이 잘 표현되기 때문이다. 더 좋은 색을 표현하기 위해는 젯소를 칠하는데 이 젯소도 하얀색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면의 외부에 속눈썹이 길게 밑으로 내려가 있는데, 이는 눈을 감았음을 알 수 있다. 왜 눈을 감아버린 것일까. 앞서 배경색에서의 설명과 같이, 이상과 부딪히는 현실에 못 이겨 눈을 감은 것이다. 일종의 회피인 셈이다.
머리색은 왜 노란색일까. 물론 노란색으로만 보일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머리색이 금발로 보일 수도 있다. 두 색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서와 의미는 여러분에게 달려있다. 노란색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많기 때문이다. 노란색을 따라가다 보면, 수많은 머리카락들이 표현된 머릿결을 볼 수 있다. 이것의 시작점을 유심히 살펴본다면, 가면으로부터 시작된 것인지, 두피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애매모호하게 표현되어 있다. 만약 가면으로부터 나온 것은 수많은 감정들을 뜻한다. 두피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면, 수많은 생각들과 상상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머릿결 끝은 왜 동그랗게 말렸을까. 어린아이들이 보았을 때에는 파마를 해서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이 사람이 심란해서 분위기 전환을 위해 했을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머릿결이 끝으로 말린 것은 수많은 감정들과 생각들 그리고 상상들을 펼쳐왔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접고 있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기에 감정과 생각 그리고 상상을 감출 수 있어진 것이다. 좀 더 펼치고 싶지만, 이미 그 시간은 지나버린 듯하다.
마지막으로 왜 나체로 그려졌을까? 와 성별이 정해져 있을까?이다. 아름다움으로 표현되는 것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나체(누드)가 아닐까 싶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유는 알 것이다. 선을 통해 생명이 느껴지고, 미세하면서도 강력한 움직임과 감정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작품에 나오는 자세는 목에서부터 어깨까지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어깨는 경직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묘한 긴장선을 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완전히 편하지는 않다는 의미이다. 만약 두꺼운 코트나 반팔티나 셔츠 등 옷을 입고 있었다고 가장해보면, 어떠한 상태인지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나체를 표현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성별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여자라면 옆으로 가슴이 나와야 했으며, 남자라면 조금 더 큰 골격이 이루어져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오로지 부드러운 면만이 표현되어 있다. 어느 성별에 상관없이 휴식은 필요하며, 또한 부드러운 이면을 가졌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강요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한 외모로는 이 세상 모든 여자가 콜라병 몸매가 아니듯이, 남자 또한 보디빌더 같은 몸매는 아니다. 또 나이나 사고, 질병, 장애 등을 통해서 성별마다 신체 부위가 다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별을 드러내지 않고 애매모호하게 표현하게 되었다. 피부색 같은 경우에는 가장 음영이 잘 드러나는 황인종으로 택하게 되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 거의 운동장 방향의 창가 쪽 자리에 앉았었다. 점심을 먹고 난 후면, 따스한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것이 일수였다. 햇살이 황금빛처럼 들어와 교실을 밝게 비추어줬지만, 일부 학생들에게는 그 햇살이 그저 방해가 될 뿐이었다. 그 이유는 초록색 칠판에 햇빛이 비치면 빛 반사가 심한 탓에, 선생님의 필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따스한 햇살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햇살은 방해꾼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커튼을 쳐달라는 반 친구들의 말에, 선생님은 창가에 앉은 학생들은 협조를 부탁한다고 했다. 맨 뒤에 앉은 학생들은 중간까지만 커튼을 쳐도 될 거 같다며 항의했지만, 공부하는 학생들의 말이 우선이었던 선생님은 끝내 창문을 다 치라고만 하셨다. 창가 자리에 앉은 나는 커튼을 치고 있었다. 강한 햇살에 눈이 찌푸려질 정도였지만, 햇살이 황금빛 마냥 들어오는 것이다. 그때 갑자기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갔었다. 수업하는 선생님께는 죄송한 일이었지만, 눈을 감고 따스한 햇살에 고개를 얼짱 각도로 살짝 비튼 다음 나체로 있는 모습….
2년 뒤, 미대를 다니던 초등학교부터 같은 학교를 나오던 친구와, 중학교에서 만난 친구는 형님을 소개하여줬다. 그때 미술 스터디를 하면서 느낀 점도 많았었다. 집에서는 반대가 강했기에 그 당시에 작업장은 카페가 되었었다. 형님과 학교 친구들 그리고 게임에서 친해진 친구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게임 상으로 만난 친구 유 양(당시 17세) : 노란 머리가 파도 같이 보여 화려하다고 느꼈다.
-고등학교 친구 신 양(당시 18세) : 무언가 모르게 쓸쓸해 보인다고 했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형님(당시 ??세) : 가면을 쓴 게 아니라 가면화된 얼굴, 외롭고 타인에게 가면 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실을 보고 싶지 않아 눈운 감고, 머리에는 금발로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서 머리에 들어 있는 꿈 혹은 그 비슷한 것들이 많음을 나타내듯 하나 아래로 내려오면서 무겁게 표현된 것이 마치 자신에게 이제 미련이라는 족쇄가 되어버린 듯하다.
각자가 느끼는 점은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없다고 늘 느꼈었다. 어떠한 사람의 생각이 나에게 영감이 되어줄 수도 있고, 부족한 부분에 설명을 덧붙여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주저 없이 작품이 어떠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제목을 알려주지 않고서 말이다. 제목을 알려주지 않으면, 정답이 없는 문제집을 풀고 있는 기분을 주기에 서슴없이 대답해주기 마련이었다.
그림을 보면, 2010년작 외에 '왜 복사본일까'라는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똑같은 그림을 그려내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종이를 옆에 두고 따라 그리거나, 밑에 깔아서 그려보기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었다. 그러다가 흑백 컬러로만 복사가 되는 인쇄기가 마침 집에 있어서 시도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계속 쓰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비록 지금은 캔버스 위에 작품을 그리기 때문에 복사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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