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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닐 May 24. 2019

11월, 헤센에서

잠 들지 않는 밤


나는 밤중에 더위를 못 참고 창문을 연다

이층 침대를 올라오다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고 웃음이 났다

그러나 아직 엘피판을 작동시키지 못해 불만이었고

계획했던 것만큼 그림을 꾸준히 하지 못해서 불만이었고

털실 양말에서 자꾸만 실이 빠져나와 침대 커버를 더럽히는 것도

미약한 물줄기 때문에 가까운 욕실에서 샤워를 못한다는 것도

창문 언저리에 앉을 공간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도

아껴 피운 담배 한 갑이 동이 났지만 그에 쓸 여유는 없어 미루고 있는 것도

신경 쓸 것이 너무 많아 근래엔 통 새로운 만남을 못 가지는 것도

일일이 나열하자면 나는 우울할 이유가 너무나도 많은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어느 저녁엔 저들과 나 사이에 그 어떠한 것이 불안하여 더 내 방의 문을 받는다

나는, 속하고 싶지만 속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left out 된 기분인 것 같다고 느끼지만 곧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안다.


나는 밤중에 더위를 못 참고 창문을 연다

마음먹고 가보기로 한 이 황량한 길에 확신이 없어서 정작 이야기를 꺼내야 때는 하지 않는다.

나는, 그 무언가를 너무나도 원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부정하고 외면한다


나는 밤중에

나를 의심한다


내가 가져온 그 많은 충분하지 못함 때문에 나는 아직 이렇게 미련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만약 더 많은 행운을 가졌었더라면 나는 멋진 사람이 됐을까 내가 이상하는 나의 모습만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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