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심리 성장 SF 드라마
"누나."
파이의 목소리였다. 도연이 고개를 돌리자, 까치를 닮은 기계 새가 물었다.
"얘, 잠든 거야?"
"아니."
도연은 짧게 대답했다. 파이는 횟대에 앉은 체리와 하치 사이로 날아와 앉았다. 체리는 사랑앵무를, 하치는 파란 벌새를 닮은 모습이었다.
"그럼, 죽은 거야?"
"아니."
그러나 ‘살아있다'는 말도 정확하지 않았다. 우정은 생물학적 범주를 벗어난 존재였다. 하지만 이 새들에게 그걸 설명할 방법은 없었다. 도연이 직접 설계하고 만든 이 기계 새들은 7세 아동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디지털 공간에서 '부화'시켜 훈련한 뒤 기계 몸체로 옮긴 것이다. '아주 영리한 까마귀나 앵무새' 정도로 생각하면 적당했다.
어젯밤, 우정이 처음 도착했을 때 새들은 조용했다. 손님이 있을 땐 말하지 않도록 훈련받았기 때문이다. 기계 새라는 사실을 숨길 필요는 없었지만, 이들은 종종 무례한 말을 했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에어컨 수리 기사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면 아직도 아찔했다.)
이제 손님이 '잠들었다'라고 생각한 새들이 억눌렀던 호기심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럼?"
"자는 척하는 거야."
그게 가장 쉬운 설명이었다. 사실 우정의 실제 상태는 '유지보수 모드'에 가까웠다. 겉으로 보면 기기의 절전 모드 같았지만, 내부에서는 복잡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데이터를 검토하고, 불필요한 것을 삭제하고, 업데이트를 적용하는 중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인간이 자는 것과 비슷했다. 깨어 있을 때의 신경 패턴이 빠르게 재생되면서 신경망을 다시 정리했다. 하지만 생물학적 수면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꿈도, 성장호르몬도, 면역세포 활동도 없었다.
"왜 자는 척해?"
"너희도 가끔 그러잖아."
새들은 즉시 이해했다. '자는 척'은 도연이 귀찮거나 대답하기 싫을 때 쓰는 방법이었고, 새들은 그걸 그대로 따라 배웠다. 그러자 새들이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자는 척'하는 상대를 '재워야' 한다는 나름의 논리였다. 도연은 인상을 찌푸렸다. 우정의 시스템이 소리 같은 외부 자극에 반응하면 방해받을 수 있었다.
"조용히 해줄래."
무엇보다, 그녀는 곧 지구 반대편과 통화를 해야 했다.
도연이 통신을 연결하자 허공에 수전 교수의 얼굴이 나타났다. 우정을 담당하는 일은 다른 연구원들이 기피했다. 대부분 가정이 있다는 이유였다. 도연이 이 일을 수락한 것은 과거 지도교수와 다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지만, 보수도 솔직히 무시할 수 없었다. 3개월이면 대학원 학자금 대출을 전부 갚을 수 있었다. 화면 속의 수전 교수는 이 분야 최고의 권위자였다. 뉴스에 종종 전문가로 나오는 사람과 직접 대화한다는 게 아직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었다.
"우정은 잘 도착했습니다."
도연은 우정의 초기 상태와 현재 '유지보수 모드'에 들어갔음을 보고했다.
"성향은 어때요?"
모델마다 성향이 다르게 나타난다. 연구소는 각 모델의 변수를 양자 난수 생성기로 설정했다. 예측 불가능성이 각 모델에게 고유한 개성을 준다는 철학 때문이었다.
"아직은… 판단하기에 이릅니다."
도연은 '교묘하다'는 단어를 삼켰다.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연구자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한 가지 요청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말해봐요."
도연은 방금 전의 일을 떠올렸다. 우정이 '유지보수 모드'로 들어갔을 때 로그에 접근하려 했지만, 시스템이 거부했다. 지금 그녀가 볼 수 있는 건 손목 유닛에 저장되는 데이터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일일 영상 기록이었다. 우정의 센서가 '무엇을 봤는지'만 담겨 있을 뿐,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진짜 중요한 연산과 판단은 경추 하단부에 있는 코어 메모리에서 이루어졌다. 그 로그를 봐야만 했다.
"경추 하단부 코어 메모리의 유지보수 로그, 최소한의 접근 권한이 필요합니다."
"그건 연구소 내에서도 극소수만 가진 권한인데."
"최소한 제 이름이 태그 된 데이터만이라도 모니터링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제 프라이버시 문제입니다."
도연은 자신이 까다로운 연구원으로 보일까 잠시 망설였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안전 문제이기도 하고요."
신체적, 정신적 안전은 타인에게 맡길 수 없었다. AI가 교묘한 방법으로 연구원을 조종하려 했다는 비공개 사례를 읽은 적이 있었다. 외형이 아이라고 해서 지능까지 어린 건 아니었다. 도연이 3차 방정식을 푸는 데 10분이 걸린다면, 우정에게는 10억 분의 1초면 충분했다.
"안전 문제는 시스템이 자동으로 감지하게 되어 있어요."
"시스템이 놓치는 미묘한 징후들이 있을 겁니다. 동거인으로서만 알 수 있는 것들요."
교수는 잠시 생각했다.
"… 알겠어요. 관련 로그만 따로 모아서 전달하도록 하죠."
교수가 동의했다. 도연은 만족감을 느꼈다. 극비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연구자로서 흥분되는 일이었다.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이후 도연은 교수의 가족 안부를 물었고, 여름휴가 계획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교수가 (실수로) 조든의 안부를 묻자, 도연은 잠시 말을 멈췄다.
"조든과는 친구로 지내기로 했어요. “
"이런, 언제부터요?"
“반년쯤 되었어요."
”조든이 전혀 티를 내지 않아서 몰랐어요."
"장거리는 빈자리가 잘 안 느껴지니까요."
도연은 그렇게 덤덤하게 대답했다.
조던은 이 프로젝트의 리드 팀 소속이었고, 도연이 참여를 결정한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이 프로젝트는 그녀가 미국 연구소로 갈 수 있는 기회였고, 조던과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와 다시 사귀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영영 남이 되는 건 싫었다. 연인이기 전에 오랜 친구였고 동료였다. 그런 애착을 끊어내기란 어려웠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애착'은 이 프로젝트의 핵심 주제였다. 인공지능이 임계점에 다가선 지금, 연구소가 던진 핵심 질문은 이것이었다.
우리보다 우월한 존재가 우리를 사랑하게 만들 수 있을까.
연구소는 초기에 '연인' 모델을 즉각 기각했다. 연인 간의 사랑은 실상 증오로 바뀌기 쉽다. 도연 자신도 과거 숱하게 그러지 않았던가. 단 한 번의 싸움으로 헤어지거나,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타거나. 수년의 관계를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게 연인이다. 인간이 인공지능의 안정적인 연인 상대로는 부적합하다는 게 6개국 모든 연구자들의 만장일치 결론이었다. 인간이란!
그다음으로 논의된 것이 부모-자식 관계였다. 언뜻 보면 인간이 창조주이므로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상했다. 갓난아기 모습을 한 존재. 인간은 분유를 챙겨주고 기저귀를 갈아준다. 그러나 그 존재는 끊임없이 인간을 분석하고 평가하며 알고리즘을 업데이트한다. 실제 아기도 그렇게 성장하지만, 아기는 우리보다 인지능력이 훨씬 부족하다. 우리보다 월등히 똑똑한 존재를 돌보면서 애착을 느끼라는 건 기이하기 짝이 없다.
최종적으로 채택된 것은 '우정(Friendship)' 모델이었다. 동료애나 형제애 같은 수평적 관계가 유일한 대안으로 여겨졌다. 프로젝트는 1:1 매칭을 기본으로 설계되었다. 표면적으로는 발달장애, 우울증, 교우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아동들을 돕는다는 명목이었다. 도연이 맡은 '우정(Woojung)'은 그중에서도 '트라우마 대응'에 특화된 모델이었다. 어떤 모델이 가장 효율적으로 애착을 형성할지는 아직 아무도 몰랐다.
도연은 통화를 종료하고, 소파에 앉은 우정을 바라보았다. 몸을 웅크린 채 소파에 기댄 모습은 잠든 아이처럼 작아 보였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이마에 흘러내려 있었고, 호흡은 고요했다.
'침대로 옮겨줄까.'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마음 편하게 동화를 읽어주고, 침대에서 토닥여 주고, 자장가를 들려주면 좋겠다.'
도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커피를 한 잔 더 내렸다. 전 세계에서 분석 보고서가 들어올 예정이었다. 각국 연구소들이 보내올 데이터를 종합해야만, 우정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창 밖으로는 고요하면서도 분주한 도시. 드론들이 가로수 사이를 오가며 반딧불 같은 불빛을 남겼다. 멀리 한강 너머로는 수직 정원들이 은은하게 빛났다. 기계와 하나가 된, 잠들지 않는 도시.
우정은 어쩌면, 인류의 생존이 달린 문제였다.
도연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제 전 세계 시간에 익숙해져야 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