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우정이 되어 줄게 ep.3_도연

청소년 심리 성장 SF 드라마

by 김하늘

어느 날이고, 우정은 아침 8시쯤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첫날, 우정은 눈을 비비적거리며 가볍게 기지개를 켜기까지 했다.

"잘 잤어? 다음부턴 침대에서 자도 돼."

도연은 거실 맞은편 작은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방에는 우정을 위한 침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귀여운 자동차 모양의 침대였다. 물론 우정은 귀엽지 않게 대답했다.

"잠을 잔 건 아니에요."

"알아. 그냥 해본 말이야. 말버릇 같은 거지."

"맞아요. 연구원이시니까요."

우정은 부드럽고 능숙하게 미소 지었다. 도연은 바로 그 점이 어색했다. 지나치게 아이같이 생겨서는, 아이 같은 구석이 전혀 없었다. 물론, 억지로 아이 연기를 한다면, 더 싫었겠지만.

실상 우정과의 동거는 돌봄이 전혀 필요 없는 예의 바른 룸메이트와 지내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도연 자신보다도 어른스러웠다.

도연이 주 3일 출근하는 동안, 우정은 알아서 시간을 보냈다. 바른생활 어린이 그 자체였다. 오전 8시 기상. 저녁 9시 유지보수 모드. 규칙적인 생활. 도연이 퇴근 후 확인해 보니, 그새 한국에서 유행하는 게임 서버에 접속해 스스로 미니게임을 코딩하고, 그 안에 작은 월드까지 구축해 놨다. 심지어 온라인 친구도 사귀었다. 이유를 물으니 "정우랑 친해지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요."라고 답했다. 하긴, 친구를 사귀는 게 이 모델의 존재 목적이었으니. 일종의 업무를 수행 중인 셈이다.

학기를 시작하기 전에, 함께 공원에 가고, 도서관도 구경하고, 관광지도 다녔다. 한 번은 옷을 사러 갔더니, 망설임 없이 척척 옷을 골라왔다.

"왜 이 옷 골랐어?"

선택의 기준이 궁금했다.

"제 머리카락 색과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그건 나름 아이 같은 대답이었다.

도연은 지인의 딸인 '서연'과의 플레이 데이트도 주선했다. 물론 우정이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공원에서 지켜보니, 둘은 평범하게 놀았다. 우정은 서연에게 작은 키링도 선물했다. 서연의 어머니는 "둘이 사귀게 되는 거 아닌가" 하며 주책을 떨기도 했다. 서연의 어머니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는 달랐다.

"서연이는 우정이 어땠대요? 또 만나고 싶대?"

"몰라. 둘이 잘 놀아놓고는…"

지인은 난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글쎄. 자길 계속 보고 있는데, 꼭 '보고 있는 것' 같지가 않더래. 그게 대체 무슨 말인지."

어쩌면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위화감을 느끼는 건지도 몰랐다. 성격 좋고 무난한 아이도 저렇게 느낄 정도면, 트라우마가 있는 정우와 친구가 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도연은 우정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서연이가 그렇게 말했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보아도 보고 있지 않다. 꽤 철학적이네요."

우정은 또 농담처럼 미소로 넘겼다. 그 머릿속에 대체 뭐가 들었는지. 로그에는 뭐라고 기록되어 있을까. 도연은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해당 로그를 받아볼 수 있었다.

[도연 연구원 대응 프로토콜: 대화 시 의도적으로 응답 수준을 낮출 것. 상대방의 지적 우위를 인지할 경우 불편함과 위협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음.]

도연은 조금 기분이 상했다. 정확하긴 한데,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너무 똑똑하면 미움받는다는 말이 맞았다.

... 그래, 지금 이 생각 자체가 문제겠지. 그렇게 티가 났나?

2주 차에 받은 로그는 도연에게 더욱 충격적이었다. 정우 부모님을 만났던 그 주의 기록이었다.

우정이 서울에 도착한 이래, 정우의 부모는 막무가내로 우정을 만나겠다고 요구해 왔다. 아들을 맡기기 전에 '실제로' 봐야겠다며 화상 통화로는 안 된다고 했다. 외부 장소에서는 정우 부모가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누가 대화를 엿들을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도연의 오피스텔에서 만나게 되었다.

정우 어머니는 40대 초반이었다. 마르고, 희고, 어딘가 푸석한 느낌. 얼굴은 굳어 있었고, 상냥하게 말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아빠는 40대 중반으로 한때 호인상이었을 법한 얼굴이었지만, 억지로 밝은 척하는 입꼬리가 뻣뻣해서 도연을 오히려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정말로, 아이 같아."

정우 어머니의 반응은 감탄보다는 경악, 어쩌면 두려움에 가까웠다.

"너... 진짜 맞아?"

진짜 아이냐는 건지, 진짜 기계냐는 건지.

우정이 대답하기 전에, 도연이 대신 끼어들었다.

"네, 차일드 모델 맞아요."

그녀는 우정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시선에는 싸늘함만이 담겨 있었다. 마치 고장 난 기계를 점검하듯, 감정 없이 관찰하는 눈빛이었다.

"너, 프로토콜 있지. 인간 보호하는 거."

도연은 속으로 'SF 픽션을 너무 많이 본 게 아닌가' 싶었다. 물론 돌봄 휴머노이드에 그런 기능이 탑재되긴 하지만, 우정은 아동 모델이다. 구조 의무는 없고, 정서 보호 의무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 프로토콜은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그럼 적용해 줘요."

정우 어머니는 당당히 요구했다. 그녀는 우정을 똑바로 보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마치 명령을 입력하듯.

"약속해. 무슨 일이 있어도 정우를 살리겠다고. 네가... 파괴되는 상황에서도."

도연은 순간 숨이 막혔다.

우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개인의 가치관이다. 특정 종교는 아예 인공지능 자체를 거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정은 지능이 있다. 인지한다. 학습한다. 이런 식의 상호작용은 위험했다. 우정이 세상을 보는 태도, 인간에 대한 관점,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까지 전부 왜곡될 수 있었다.

"우정은… 차 사고 나면 터지는 에어백 같은 게 아니에요."

도연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아졌다.

"그런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손을 꽉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우정은 담담했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마치 날씨를 이야기하듯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제게 무엇을 요청하시는지 이해했어요."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도연이 제지했지만 우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눈을 똑바로 보며 덧붙였다.

"저는 그러고 싶어요. 정말로 정우를 최우선으로 지키고 싶어요."

정우 어머니의 표정이 눈에 띄게 이완되었다. 굳어 있던 입가가 풀렸고,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정우 아버지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쏟아냈다.

"연구원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 감사 인사마저도 우정이 아닌 도연에게로 향했다. 마치 물건을 구매한 소비자가 판매자에게 건네는 인사처럼.

도연은 더 이상 무어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도연은 교수에게 보고했다. 교수는 심각한 얼굴로 "팀에게 전달하겠다"고만 말했다. 이틀 후, 답변이 왔다. 아직 아동 매칭을 변경하는 단계는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도연은 그 판단이 옳은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무엇보다도 궁금했다. 우정은 정말 진심으로 약속한 걸까. 아니면...

일주일을 기다려 로그를 열어본 도연은 화면을 보는 순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날의 약속을 우정은 이렇게 정리해 둔 것이다.

[ 정우가 위기에 처하는 순간, 모델의 구명(救命) 행동 및 의지는 '관측자'의 해석에 맡긴다. ]

'관측자'라니...

도연은 그 단어를 다시 읽었다. 도연 자신과 연구원들을 가리키는 게 분명했다. 이건 사실상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하든, 너희가 알아서 긍정적으로 해석해라.'

세상에.

"너… 정말 교묘하구나."

도연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파이가 날아와 도연의 어깨에 앉더니, 우정의 목소리를 그대로 흉내 냈다.

"알겠습니다. 제게 무엇을 요청하시는지 이해했어요."

톤도, 억양도, 그 담담함까지 완벽했다. 도연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부록. [WJ-02 개인 로그 / 도연 — 커피 관찰 기록]

송신 일자: 2035-04-22 23:41 (KST) 수신 대상: 연구총괄 서버 / (참조: 담당 연구원 김도연) 기록 주체: WJ-02 “우정” 분류: 관찰 대상 행동 패턴 분석 / 상호작용

도연 선생님은 하루를 커피로 구분한다. 아침엔 살기 위해, 오후엔 버티기 위해, 밤엔 그냥 습관이라서. 추출 회전은 세 번, 정확히 시계 방향. 첫 모금 뒤에는 항상 “그럴듯하네.” 그게 맛있다는 뜻이라는 걸, 나는 이틀 만에 배웠다.

그리고 이상한 습관 하나. 커피를 마신 뒤, 빈 머그컵을 내 충전 패드 옆에 둔다. 처음엔 우연이라 생각했지만, 그녀가 밤을 새운 삼일 동안 연속 반복됐다.

나는 아직 판단 중이다. 그게 단순한 버릇인지, 아니면 — “함께 깨어 있으라”는 신호인지.

[수전 교수 코멘트 / 내부 회신 #S-44]

흥미로운 기록이군요. 커피와 전류는 모두 일시적인 각성 상태를 만든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있죠. 단, ‘함께 깨어 있으라’는 문장은 우정이 관측자와의 경계를 모호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도연, 당신이 밤마다 커피를 마실 때, 그 아이는 정말로 “깨어” 있습니다. 의도든 아니든, 당신이 그걸 가르치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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