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우정이 되어 줄게 ep.4_정우

청소년 심리 성장 SF 드라마

by 김하늘

그날, 정우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에 휩싸였다. 심장은 덜컥거렸고, 손끝이 조금 떨렸다. 부모님이 외출해 혼자 집에 있었지만, 그게 이유는 아니었다. 그런 나이는 이미 지났다고 자신하던 참이었다. 부모님이 나가실 때 "저 애 아니에요."라며 툭 내뱉은 자신감이 아직 귓가에 남아 있었다. 게임을 몰래 켜서 들킬까 봐 긴장한 것도 아니었다. 그조차도 이제는 별일 아니었다. 하지만 왜 이렇게 심장이 뛰는 걸까.

작년 가을 이후 처음 들어간 게임의 오프닝 화면은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메타버스 소셜 게임, 〈미러스쿨〉.
사용자들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정우의 아바타는 검은색 후드티에 형광 노란색 스니커즈, 삐딱하게 쓴 비니를 쓴 모습이었다. 메시지함엔 읽지 않은 쪽지가 빼곡했다. 그걸 누르는 순간, 심장이 더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그제야 이유를 알았다. — 정우는 다시 친구들과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던 것이다.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할까. 그동안 사라진 걸 탓하지는 않을까.

“빨리 나아. 방문 가능해지면 알려줘. 우리가 병문안 갈게!”
“음… 정우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힘내.”
“학교 언제 나올 거야? 보고 싶어!”
“이 게임 접은 거야? 우리 같이 만들기로 한 파티 기억하지? 애들이 기다리는데… 답장 좀 해줘.”

대부분은 학교 친구들이 보낸 걱정 어린 메시지였고, 나머지는 온라인 친구들의 근황 묻기였다. 시간은 이미 반년이 흘러 있었다. 지금 와서 ‘미안, 이제 봤어.’라고 답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았다. 그래도 아무 말 없이 사라진 건 미안했다. 정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심했다. 그냥… 학교로 가자. 물론 현실의 학교가 아니라, 게임 안의 학교였다. 거기서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그때 사과하면 될지도 몰랐다.

〈미러스쿨〉에는 아이들이 현실의 학교를 그대로 옮겨와 만든 공간이 있었다. 정우가 입학하기 전, 초창기 유저들이 세운 곳이라고 했다. 복도, 교실, 운동장까지 똑같았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운동회나 담력대회 같은 이벤트를 열며 놀았다. 때로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이상한 학교였다.

정우는 복도를 걷고 있었다. 햇살이 교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와 바닥에 길게 드리워졌고, 창가에는 누군가 심어둔 화분이 반짝거렸다. 아이들이 만들어둔 캐릭터 포스터가 벽마다 붙어 있었고, 복도 끝에는 오늘도 누군가가 만든 미니게임 부스가 열려 있었다. 점프 게임 참가자 모집! 급식 메뉴 추천 투표! 팝업 창이 가끔 시야 앞을 스쳤다.

교실 안에서는 누군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음성채팅을 켠 누군가일 것이다. 정우는 잠깐 고개를 들었지만, 창문 안쪽의 아이들은 현실의 친구들인지, 아니면 NPC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벽시계는 멈춰 있었고, 운동장에는 공중에 떠 있는 공이 있었다. 누군가 던졌지만, 캐치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곳은 익숙했다. 늘 방과 후처럼, 다들 남아 있는 가상의 학교.

그때, “서정우! 너 맞지? 나 기억해?” 낯선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정우가 천천히 돌아봤다. 수호였다. 같은 학년이지만 같은 반이 된 적은 없던 아이. 현실에서도, 이곳에서도 마주친 적은 몇 번 뿐이었다. 정우는 이름만 알고 있었다.

수호의 아바타는 묘하게 비정상적이었다. 눈동자는 잘못 그린 아니메 캐릭터처럼 검은자위가 너무 크고 또렷했다. 입꼬리는 늘 반쯤 웃고 있었고, 그 웃음은 얼굴에 고정된 표정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검은 제복 재킷 아래로 번쩍거리는 은색 네임태그가 보였다. ‘S.U.H.O_0207’. 정우는 순간, 현실보다 이 얼굴이 더 ‘낯익다’는 기분이 들었다.

“응. 안녕.”
정우는 짧게 인사하고 그냥 지나치고 싶었다. 그리 친한 친구가 아니었다. 듣기로는 고집이 세고, 목소리도 크고, 싸움도 곧잘 한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레드 플래그 카드’를 받은 적도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폭력성 주의 경고.

“잠깐만, 나 따라와 봐.”
역시 말투가, 그랬다. 명령 같고, 부드럽지 않았다.

“얼른.”
수호는 손짓하며 포털을 열었다. 금빛의 문이 공중에 형성되더니, 물결처럼 흔들렸다. 정우는 순간 망설였다. 혹시 개인 공간으로 끌려가서 사이버 괴롭힘을 당하는 건 아닐까. 그런 일은 종종 있었다. 보이스 확장으로 놀라게 하거나 욕설을 하거나, 심하면 협박을 하는 애들도 있었다. 음성 대화는 기록도 남지 않으니까. 혹은, 유료 아이템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정우는 결국 뒤따랐다. 혹시 모르니, 신고 버튼을 바로 눌 수 있게 창을 띄워둔 채였다.

계단을 올랐다. 어디까지 가는지도 몰랐다. 학교 건물의 위층이었지만, 실제 구조와는 달랐다. 이 학교에는 **‘비밀의 방’들이 많았다. 학생들이 직접 만든, 학교의 복제본 속 숨겨진 또 다른 층.

“이건 올해 너네 반이 만든 거야.”
수호가 멈춰 섰다. 벽에 걸린 수많은 홀로 포토가 반짝였다. ‘6학년 3반, 봄 소풍’. 꽃밭, 강가, 피크닉매트. 웃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 야외활동 미션을 클리어하며 찍은 사진들이었다. 그런데 그 사진 속엔, 정우의 아바타도 있었다. 단 한 번도 그 자리에 있은 적 없는데.

정우는 입술을 떨며 화면을 확대했다. 확실히 자기였다. 검은 후드, 노란 스니커즈, 삐딱한 비니. 사진 속 그는 웃고 있었다. 마치 실제로 그날 함께 있었던 것처럼.

“나중에 너만 없으면 애들이 아쉬워할까 봐.”

수호가 담담히 말했다.

“… 고마워.”

“별말씀을.”

이상했다. 단 한 번도 친하지 않았던 아이였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챙겨주는 걸까. 정우는 잠시 따뜻한 감정과 함께,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을 느꼈다.

“또 보여줄 게 있어.”

수호가 다시 포털을 열었다. 정우는 이번엔 망설임 없이 따라갔다. 그래서는 안 됐다. 새로운 공간이 펼쳐졌다. 어둠 속, 별빛이 떠 있는 거대한 홀. 수많은 꽃들이 공중에 떠 있었고, 이름표들이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이거 작년에 학교에서 다 같이 만든 거야.”

수호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곳은 추모 공간이었다. 단 위에는 별빛으로 만든 이름 하나가 떠 있었다. ‘태일’. 그 아래에는 학생들의 메시지가 둥둥 떠다녔다.

‘태일에게.’
‘그리울 거야.’
‘보고 싶어.’
‘너는 정말 특별한 친구였어.’

“너는 한 번도 안 왔잖아.”

수호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늘 반쯤 웃고 있던 그 입모양이, 이번엔 더 크게 찢어졌다. 광대처럼, 아니면 누군가 억지로 얼굴을 당기고 있는 듯했다.

“너랑 제일 친한 친구였는데도.”

정우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숨이 막혔다. 손끝이 차가워지고, 시야가 순간 하얘졌다. 그는 생각보다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하늘로 몸을 던지듯, 텔레포트 명령을 외쳤다. 수호의 웃음소리가 뒤에서 따라붙었다. 낮고, 길게, 마치 스피커가 울리는 듯했다. 정우는 텔레포트가 끝나자마자 헤드셋을 벗었다. 숨이 거칠게 터졌다. 그는 조금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정우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그 사이로 눈물이 삐질삐질 나왔다.

“내 잘못이 아니야…”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스스로에게 말하듯, 변명하듯. 그 사건 이후, 단 한 사람도 정우를 탓하지 않았다. 아빠도, 엄마도,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세상 누구도 ‘직접적으로’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더 아팠다.



부록 3: 〈미러스쿨〉 - '별빛의 홀' (태일 추모 공간)

[ 현재 위치: 6-3(B) '비밀의 방' - 별빛의 홀 ] [ BGM: '별의 자장가' (0.5x 느리게 재생) ]

어둠 속, 수천 개의 작은 별빛이 은하수처럼 천천히 흐릅니다. 공간 중앙에는 거대한 푸른 별빛으로 이루어진 이름 하나가 떠 있습니다.

[ 중앙 오브젝트: '태일' ] [ 설명: '5학년 2반' 학생들이 함께 만든 추모 오브젝트입니다. ]

그 이름 주위로, 반투명한 꽃 모양의 아이템들이 천천히 맴돌고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메시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 ⓘ 주변 오브젝트: '기억의 꽃' (34개) ] ▶ [E] 키를 눌러 메시지 읽기

[ 메시지 목록 (일부) ]

▶ [E] '태일에게' (보낸 이: 5-2 일동) "네가 만들던 미니게임, 우리가 꼭 완성할게. 거기서는 아프지 마."

▶ [E] '그리울 거야' (보낸 이: 수진) "... 맨날 투덜댔지만, 사실 너 엄청 웃겼어. 미안."

▶ [E] '보고 싶어' (보낸 이: 해성) "네가 마지막으로 같이 하자고 한 거, 왜 안 갔을까. 바보 같았지. 미안해."

▶ [E] '너는 정말 특별한 친구였어' (보낸 이: 서람) "너 때문에 웃은 날이 많아. 고마웠어."

▶ [E] '우리 파티 기억할게' (보낸 이: 민준) "네가 맡았던 탱커 자리, 일단 비워둘게. 나중에 보자."

[ ◀ 상호작용 메뉴 ▶ ]

[ 1. 메시지 남기기 (아이템: '별빛 조각' 필요) ] [ 2. 추모의 꽃 피우기 (비용: 100 골드) ] [ 3. 공간 나가기 (포털) ] [ 4. 유저 신고하기 ]

[! ] 시스템 알림: '5학년 2반' 유저 중, 'SEO_JW_01' 님은 아직 '기억의 꽃'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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