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심리 성장 SF 드라마
부모님이 돌아왔을 때, 정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호를 신고할 생각도 없었다. 뭐라 말한들 믿겠는가. “친구가 나를 추모 장소에 데려갔어요.” 그건 신고 사유가 되지 않는다. 수호는 그저 “정우를 생각해서 그랬다”고 말할 것이었다. 게다가 조금 전 보여준 ‘소풍 사진’은 완벽한 알리바이가 될 것이다. 정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모른 척하기로 했다. 다음에 수호를 마주치면, 그냥 접속을 끊어버리면 된다. 그래, 피하면 된다. 그날따라 엄마와 아빠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내일이면 정우가 드디어 학교에 돌아간다며 들뜬 표정이었다.
“공부 집중 잘하라고, 친구들이랑 잘 지내라고 주는 거야.”
그 말과 함께 건네받은 건 반짝이는 새 뉴로밴드였다. 정우는 그 반짝임을 오래 바라봤다.
“학교로 돌아갈 준비가 안 됐어요.”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아빠가 짜파구리 요리사!”
아빠가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자, 엄마가 박수를 치며 웃었다. 그 순간만큼은 정우도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아침, 웃음은 다시 굳어버렸다.
“괜찮아요.” 부모님 앞에서만, 그렇게 말했다. 손목에 밴드를 채워주는 엄마의 손길이 단단했다.
“학교에서는 절대 벗으면 안 돼.”
“알아요.”
그리고 부모님이 정우의 ‘등교 짝꿍’을 억지로 정해주었다. 은솔. 예전에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어린이집도 함께 다녔던 아이. 기억은 흐릿했다. 고작 네 살 무렵의 일이라서. 지금은 복도에서 마주쳐도 서로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정우는 은솔의 툭툭 내뱉는 말투가 싫었다. 그리고 은솔도 자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우와 은솔의 부모님들은 그런 사정을 몰랐다.
은솔과 함께 다리를 건넜다. 은솔의 표정에는 그대로 써 있었다 — 귀찮음.
정우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나도 너랑 같이 가고 싶어서 가는 거 아니야.
“홈스쿨링… 어땠어?”
“그냥 그랬어.”
둘은 그저 대화의 모양만 흉내 냈다. 그마저도 금방 그만뒀다.말없이 횡단보도를 건넜을 때였다.
“어? 쟤는 멀쩡하네.”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그 말은 너무 낯익었고, 동시에 너무 멀었다. 정우는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자, 몇 명의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고 있었다.
“야, 너 왜 그래.”
은솔이 눈살을 찌푸렸다. 정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심장이 쿵, 쿵, 쿵 울리고 있었다.불이 바뀌었다. 빨간불.
경고음. 차량에서 어른의 음성이 울렸다.
“너네, 왜 거기 서있는 거야? 비켜야지!”
은솔이 정우의 팔을 당겼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고 은솔과 함께 헐레벌떡 뛰었다.
“너 때문에 나도 위험했잖아!”
은솔이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다. 정우는 묵묵히 걸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선생님한테는 말하지 마. 아니, 아무한테도.”
교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은솔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그럼… 말 안 하는 대신, 부모님한테 ‘따로 등교하겠다’고 하면 안 돼?”
잠시 망설이던 은솔이, 미안한 듯 작게 덧붙였다.
“나, 너네 집까지 오는 거… 은근히 돌아가야 한단 말이야.”
정우는 고개를 덤덤히 끄덕였다.
“알겠어.”
그 말을 끝으로 은솔은 재빨리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정은솔, 지각이야. 얼른 앉아.”
선생님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우는 숨을 고르고 천천히 교실 문을 밀었다. 이미 수업은 시작되어 있었다. 선생님은 그를 보며, 은솔과는 달리 한결 부드럽게 말했다.
“서정우, 앉고 싶은 곳에 앉으면 돼.”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정우는 그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들의 표정엔 호기심, 놀라움, 혹은 그냥 무언가 말하지 않은 감정이 섞여 있었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바라보는 그 눈빛이, 정우에겐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그는 맨 뒷자리, 창가 구석에 앉았다. 친구를 사귈 생각은 없다. 조용히 지내면 된다. 부모님이 불려오지 않을 정도로만. 그러면 모두가 만족할 것이다. 수업이 다시 이어졌다. 정우는 눈앞의 태블릿 화면에 집중하려 했다. 그러나 앞자리에서 은솔과 짝꿍의 속삭임이 들렸다.
“너, 왜 이렇게 늦었어?”
“서정우 때문에.”
정우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쿵, 쿵, 쿵— 뉴로밴드가 손목 위에서 미세하게 진동했다. 신경 반응 센서가 내장된 손목기기는 생체 데이터를 읽고 감정 상태까지 추적했다. 심박수가 비정상적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알림이 떴다. 정서 데이터가 부모님과 담당 선생님에게 전송되고 있었다. 정우는 손목을 움켜쥐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돌아가고 싶다. 그냥… 사라지고 싶다.
그때, 반 문이 열렸다.
“서우정, 이제 왔구나.”
선생님이 고개를 돌렸다. 우정은 조심스럽게 문을 닫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첫날인 얘들이 나란히 지각했네.”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벌점은 없어. 오늘만이야.”
우정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앉고 싶은 곳에 앉아.”
교실은 책상과 의자, 소파, 쿠션 의자, 원형 테이블이 섞여 있었다. 한 반에 열다섯 명 남짓, 모두가 자신이 편한 자리에서 수업을 들었다. 누군가는 창가의 소파에, 누군가는 바닥에 놓인 빈백 위에 앉아 있었다. 모니터 스크린이 교실 벽을 따라 길게 펼쳐져 있었고, 그 위로는 실시간 노트와 채팅창이 떠 있었다. 우정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정우의 오른쪽 옆자리를 골랐다. 아이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다. 그들은 잠깐 우정을 바라보다가, 다시 정우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묘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아주 작게 —
“안녕.”
우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우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우정의 얼굴은 햇빛에 반쯤 물들어 있었다. 그가 정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창가로 흘러든 오후의 빛이 그의 눈동자 위에 정확히 떨어졌다. 눈빛은 황동색을 띄는 옅은 갈색이었다. 빛이 스칠 때마다 옅은 갈색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반짝였다. 우정. 이상하게 낯설고, 동시에 익숙한 이름. 정우는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손목의 뉴로밴드가 고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