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우정이 되어 줄게 ep.6_정우

청소년 심리 성장 SF 드라마

by 김하늘

시간은 '정말로' 상대적인 거였다. 최소한 정우는 그렇게 느꼈다. 아인슈타인 아바타가 교실의 시공간 좌표계를 그려 보이던 수업 내용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정의 시선이 정우에게 머문 시간은 정말로 짧았다. 아마 길어야 3초, 어쩌면 1초.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우에겐 그 순간이 40분 수업 시간보다 길게 느껴졌다.

'안녕'

그 인사에 정우가 답하기도 전에, 우정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 뒤로 이 낯선 전학생은 수업에 집중하는 듯 보였다. 아바타는 빛의 직선을 그리고 있었고, 우정은 마치 그 선의 길이를 계산하는 사람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진지하게 생각하는 얼굴.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도 없는 얼굴.

불과 70cm 거리. 짝꿍처럼 나란히 앉아 있다는 게 정우는 이상했다. 오늘 처음 봤는데. 친한 것도 아닌데—왜?

정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손 안의 4차원 입방체를 괜히 빙빙 돌려봤다. 그리고 수업은 정말 순식간에 끝났다. 아인슈타인 아바타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사실, 이제 이해가 갈 거야!”

쉬는 종이 울리자마자, 열댓 명이 한꺼번에 우정 주변으로 모였다. 순식간에 원이 만들어지고 빼곡히 둘러섰다. 정우는 어쩌다 보니 그 안에 같이 갇혀 있었다. 느닷없이 취조 대상이 된 기분이었다.

수업 중간에 들어온 전학생, 우정을 위한 제대로 된 소개는 없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분명 수업 시간 내내, 우정에게 뭘 물어볼지 미리 정리해 둔 모양이었다. 대뜸 이상한 질문이 가장 먼저 튀어나왔으니까.

"... 둘이 혹시 친척이야?"

아이들의 시선이, 정우와 우정 사이를 열심히 오갔다. 닮은 구석이라도 찾으려는 건지.

"무슨 소리야."

정우는 놀라 퍼뜩 대꾸했다.

"둘이 성이 같잖아."

우정의 성이 하필 '서'. 정우도 '서'. 심지어 이름마저 비슷했다. 정우는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괜히 긴장한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그런 거 아니야."

정우는 짧게, 무뚝뚝하게 말했다. '내가 아는 한'은 삼켰다. 사실, 정우는 우정이 정말로 먼 친척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서'씨는 많지 않으니까.

아이들은 좋은 가십거리를 빼앗긴 게 아쉬운지, 잠시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금세 시선이 우정에게 옮겨갔다. 정우도 살짝 우정을 돌아보았지만, 우정은 담담해 보였다. 그리고 한마디.

"아니야."

친척 추정은 폐기 확정. 쳇,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다시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럼, 어디서 왔어?"

"한국 오기 전엔 캘리포니아에서 살았어."

"미국?"

"응."

"우와—!"

탄성이 터졌다.

"영어 잘하겠네!"

"혼혈이야?"

"그건 아니야."

그러고도 질문이 멈추지 않았다.

"부모님은 어디 계셔?"

"외동이야?"

"집은 어디야?"

"아예 이민 온 거야?"

"왜 한국 온 거야?"

답을 하기도 전에, 말들이 겹치고, 웃음소리가 뒤엉켰다. 누군가는 번호를 달라며 휴대폰을 꺼내고, 누군가는 자기를 보라며 의자를 툭툭 쳤다. 정우는 점점 답답해졌다. 우정의 얼굴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대답하기 전, 아주 잠깐의 뜸 들임. 정우는 그게 유일한 신호라고 생각했다. 불편하다는, 그 미세한 신호.

정우는 그걸 봤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보지 못했다. 다들 왜 그렇게 무신경할까. 대답할 시간 정도는 줘야 하는 거 아닐까. 하지만 아이들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우정은 그 수많은 질문들 중에서 아마도 가장 짧게 대답할 수 있는 것들만 골라, "아니야." "응." 위주로 대응했다.

"너희들 뭐 하는 거야. 앉아야지."

선생님이 들어왔는데도 자리로 돌아가지 않던 아이들이 약간 혼났다. 서둘러 자리로 돌아가고, 수업이 이어졌다.

짝을 지어 작문을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을 때, 우정이 먼저 말을 걸었다.

"무슨 주제로 쓸 거야?"

"아직 안 정했는데."

"나도. 같이 정할래?"

슬쩍 눈이 마주쳤다. 우정이 빙긋 웃어주었다. 친해지고 싶다는 뜻일까. '친구를 사귀고 싶지는 않은데.' 정우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뉴로밴드가 잠잠해진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은 몰려들었다. 이제는 친해지고 싶다는 뜻을 역력히 보이는 질문들이었다.

"너 미러스쿨 게임해?"

"응."

"아이디 뭐야?"

우정이 아이디를 알려주자, 아이들이 환호했다.

"추가했어!"

"나도!"

"나도!"

"특별 활동 선택해야 하는데, 너는 뭐 할 거야?"

정말 귀찮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우정은 부드러운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정우의 눈에는 그게 대단해 보였다.

아이들의 관심이 줄어들지 않는 건, 아마도 수업 중 우정의 모습 때문이었다. 선생님이 이것저것 물어보면—과학이든 국어든 사회든—너무나 잘 대답했다. 그게 멋져 보였다. 거기다 그 아이의 외모는 어쩐지 조금 이국적이었다. 살짝 옅은 갈색 눈과 머리칼 색. 혼혈이 아니라고 했지만, 여전히 그런 느낌을 줬다. 그러니까 아이들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면이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우정은 곧바로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혼자 가?"

"어디 살아?"

아니나 다를까, 몇몇이 질문을 던졌다. 우정은 슬쩍 창밖을 보더니, "오늘은 같이 가는 사람이 있어." 그렇게 대답하고는 "내일 보자." 했다.

이상하게도 그 인사는 대화하던 아이가 아니라 정우를 향한 것이었다. 우정은 고개를 돌려 정우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정우는 엉겁결에 "응"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우정은 순식간에 교실을 빠져나갔다.

정우는 느릿하게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은솔은 복도에서 한 번 슬쩍 정우를 돌아보더니, 짝꿍과 함께 빠른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복도 건너편 창밖을 바라보니, 정문 앞에 매끈한 차량 한 대가 보였다. 우정의 보호자로 보이는 여성이 서 있었다. 엄마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젊어 보였다. 이모 일까? 어쩌면 누나?

반 아이들의 호기심이 지나치다고 생각해 놓고, 정작 정우 자신도 호기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우정은 자기에 대해 많이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질문을 받아놓고도!) 그러니까 그런 화법만 해도. '같이 가는 사람'이라니. 보통은 엄마나 이모나 누나라고 정확하게 말해줄 텐데.

정우의 엄마와 아빠. 성훈과 윤진은 마치 이 시간을 기다리기만 한 것처럼, 일찍 들어와 있었다. 아마도 반차라도 쓴 모양이었다. 건축 회사에서 견고한 도면을 그렸을 성훈도, 온라인 쇼핑몰에서 실용적인 상품을 기획했을 윤진도, 정우가 귀가하자마자 거실에 앉아 있었다.

"어땠어?"

그 간절한 얼굴.

뉴로밴드 리포트가 갔을 텐데.

"그냥, 괜찮았어요."

"새로운 친구들은 어때?"

정우는 잠시 고민했다. 우정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하지만 그 아이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다.

"그냥, 다 착해요."

안도하는 얼굴.

또다시 간절한 희망.

"친해지고 싶은 친구는 없었어?"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그냥."

어깨를 으쓱. 그게 무슨 대답인지 정우 자신도 몰랐다. 부모님은 실망도 아니고 안도도 아닌 애매한 얼굴이었다. 저녁 식탁에는 정우가 좋아하는 것들이 잔뜩 차려져 있었다. 손이 많이 가는 잡채, 동그랑땡, 새우튀김. 거기에 청담동 유명 디저트 가게에서 사 온 마카롱과 초콜릿 케이크까지. 마치 생일인 것처럼 축하를 받는 것이 정우는 싫지는 않았다. 미안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특별 대우를 안 해주셔도 되는데.'

저녁에는 돌보미 봇을 따라 숙제를 하고, 방 정리를 하고, 상담사 선생님이 주었던 숙제—자기감정 일기 적기—를 했다. '학교 첫날인데 나쁘지 않았다.' 모든 걸 다 하고도 잠시 고민했다. 우정의 미러스쿨 아이디를 사실 기억해두고 있었다. 기억하기 어렵지 않았다. 'wj0228'. 2월 28일. 그 날짜가 정우 생일 다음 날인 것도 우연일까. 혹시 그날이 생일이었던 걸까. 미러스쿨에 접속해서 우정의 아이디를 검색했다. 정우의 아바타는 손을 뻗었다. 한참을 친구 추가 버튼 위를 서성였다.



부록 : 뉴로 밴드 H-7 '보호자 실시간 리포트'

[ '스마트 케어 솔루션 H-7' 보호자 알림 ]

전송 일자: 2035년 4월 30일 (월)

보호자님, 안녕하세요. 자녀(서정우)의 4월 30일(월) 오전 정서 상태 및 주요 이벤트 데이터를 전송합니다.

[ 오전 종합 그래프 ] [그래프 이미지: 8시 30분부터 10시까지의 심박수 및 스트레스 지수 그래프. 9시 10분과 9시 53분에 두 번의 급격한 피크(적색)가 있고, 피크 직후 급격히 '경계'(황색) 상태로 복귀하는 패턴을 보임.]

[ 주요 이벤트 상세 로그 ]

08:45 (등교 중)

상태: '경계' 진입 (황색 진동 발생)

데이터: 심박수 110 bpm. 피부 전도율 급상승.

환경 분석 (추정): 횡단보도 인근. 예상치 못한 외부 소음(타인의 발언)으로 인한 급성 스트레스 반응.

09:10 (1교시 / 교실)

상태: '위험' 근접 (적색 진동 발생)

데이터: 심박수 135 bpm.

환경 분석 (추정): 착석 직후. 주변 교우(은솔)와의 근거리 속삭임 감지. '

10:15 (!! 긴급 알림!! )

상태: '위험' (적색 진동 강하게 발생)

데이터: 심박수 142 bpm (패닉 임계점).

환경 분석 (추정): 교우와의 대립 상황 발생.

[ AI 종합 소견 (보호자용) ]

오늘은 복교 첫날로 전반적인 스트레스 지수가 높게 측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두 특정 교우의 등장 및 개입 직후 즉각적으로 안정화되는 이례적인 패턴을 보였습니다. 데이터 리포트를 계속 주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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