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우정이 되어 줄게 ep.8_정우

청소년 심리 성장 SF 드라마

by 김하늘

정우는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담임 선생님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시선은 책상 위에 놓인 유리병에 닿았다. 알록달록한 별 모양 사탕이 가득 담긴 병이었다. 그 맞은편에는 담임인 박현지 선생님이 있었다.
그녀는 ‘미술’이나 ‘실과’처럼 무언가를 만들고 꾸미는 걸 유난히 좋아했다. 그 성향은 외모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오늘은 하늘색 펠트지로 만든 커다란 리본 핀을 머리에 꽂고 있었다. 샛노란 스웨터 소매엔 지워지지 않은 초록 물감 자국이 묻어 있었다.

코끝까지 흘러내린 동그란 안경을 밀어올리며, 그녀는 정우를 향해 ‘다정한 담임 선생님’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 미소에는 어딘가 경직된 기색이 있었다. 상담 기록지를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 막 부화한 아기 새에게 말을 거는 사람처럼 부드럽게 물었다.
“학기 중간에 시작해서 정신이 없었을 것 같은데, 어때… 힘들진 않았어?”

그건 담임 선생님과의 1:1 상담 시간이었다. 정우는 선생님이 자신만큼이나 이 시간을 어색해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눈치챘다.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았어요.”
좋았다고 말하려다 말았다. 그 말 뒤에 ‘무엇이’ 좋았는지, ‘왜’ 좋았는지 묻는 귀찮은 질문이 따라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말 다행이야.”

선생님은 손에 쥔 스마트 펜을 의미 없이 딸깍거렸다. 안도의 한숨 같았지만, 사실은 다음 말을 고르기 위해 숨을 참는 사람에 가까웠다.

“선생님이 보기엔, 우정이랑 많이 친해진 것 같던데.”

정말 그랬다. 물리적인 거리는 언제나 가까웠다. 정신을 차려보면, 시끄러운 음악실이든 3D 프린터가 돌아가는 실과실이든, 미디어월 앞이든, 전학생인 우정은 늘 옆자리에 있었다.물론 우정이 정우를 따라다니는 건 아니었다. “같이 다니자!” 같은 선언도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 모든 것은 첫날 시작되었다.
“카페테리아는 어디야?”
그 질문이 자연스레 함께 점심을 먹는 일로 이어졌고, 그 이후에도 계속 같이 먹게 되었다.

“체육관 락커는 어떻게 배정받아?”,
“수업 모듈은 태블릿에 미리 로드해 놔야 해?”

우정의 질문에 정우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우정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나는 전학생은 아니고, 잠깐 학교를 쉬었었어.”
정우는 목소리를 낮췄다. “홈스쿨링… 했었거든.”

다행히 우정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대신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도서관은 어디에 있어?”

“4층에 있는데…”
정우가 말끝을 흐리자, 우정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명확했다. — 같이 가달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정우는 우정의 학교 투어 가이드가 되었다. 도서관 입구의 자동문 앞에서, 우정이 스치듯 속삭였다.
“고마워.”
정말 작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도 정우의 기분을 좋게 했다.

수업 중에는 나란히 앉았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토론 과제와 프로젝트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갔다.

친구라고 해야 할까. 정우는 잠시 망설이다, 사실만 말하기로 했다.
“우정이 전학 온 지 얼마 안 돼서, 물어보는 건 좀 알려줬어요.”

“그렇구나. 다행이야.”

선생님은 다시 “다행”이라 말했지만, 얼굴은 전혀 다행스럽지 않았다.

“그러면 말이야. 특별활동은 뭐 하고 싶어?”

그녀는 상담용 태블릿을 조작했다. 손가락이 화면 위를 스칠 때마다 목록이 정신없이 오르내렸다.
“음, 보자… 인기가 많은 건 ‘드론 레이싱팀’, 새로 생긴 ‘스마트팜 관리반’도 있네.”

정우는 화면 대신 우정을 떠올렸다.
우정이라면 뭘 고를까. 혼자 고르기 어려워하지는 않을까.

정우가 말없이 화면만 내려다보자, 선생님은 그의 침묵을 부담으로 느낀 듯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 강제는 아니야! 정말이야. 그런데… 뭐, 다른 아이들은 다 하나쯤은 하니까. 정우도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뭐, 안 해도 돼. 정말 괜찮아.”

그녀는 정우를 안심시키려는 듯 말했지만, 정작 본인은 전혀 안심되지 않은 얼굴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안 하는 거요.”

정우는 자기 입에서 나온 말에 잠시 놀랐다.

선생님은 안경 너머로 눈을 깜빡이며, 다시 태블릿을 뒤적였다.
“다른… 아이들은 안 하는 거라…”

그녀는 중얼거리며 화면을 스크롤했다.
“어… 잠깐만. 분명 그런 것도… 아, 찾았다! ‘고전 문학 필사반’이라든가, ‘아날로그 사진 현상반’ 같은… 이런 건 지원자가 거의 없긴 한데…”

상담실을 나서며, 정우는 마음이 잠시 무거웠다. ‘다른 아이들은 안 하는 것’이라니. 마치 외톨이가 되고 싶어 작정한 사람처럼 들렸다.

정우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우정을 제외한 반의 그 누구와도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다. 사실 그는 완벽한 외톨이였지만, 짝꿍인 우정이 그 사실을 교묘히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정우는 선생님들이 자신을, 그것도 아주 병적으로, 어려워한다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그들은 마치 정우가 언제 ‘펑!’ 하고 터질지 모르는, 교실 한복판의 불안정한 폭탄이라도 되는 듯 굴었다.

가끔 정우는 생각했다. ‘엄마나 아빠가 교장 선생님에게 무슨 협박이라도 한 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른들의 이 노골적인 조심스러움을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는 무슨 짓을 하든 용서받았다. 홈스쿨링 진도와 완전히 다른 내용을 적어 낸 수학 과제도, 코딩 퀴즈에서 끔찍한 점수를 받은 일도, 단 한 번도 혼나거나, 주의를 받거나, 벌점을 받은 적이 없었다.

심지어 지난주, 지독한 꽃가루 알레르기 약기운에 취해 수업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잠들었을 때조차 선생님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를 깨우지 않았다. 숨소리마저 줄이며, 그 주변을 비켜 갔다. 점심시간마다 교실 벽면 디스플레이에 번쩍이는 ‘오늘의 태도 점수’. 그날도 정우의 이름 옆에는 [태도: 100점]이라는 번뜩이는 녹색 숫자가 떠 있었다. 반 전체에서 유일한 100점이었다.

심지어 그 ‘완벽한’ 모범생 우정마저도 ‘수업 중 창밖을 멍하니 바라봄’이라는 이유로 5점이 깎인 판국에. 그리고 아이들은, 놀라울 만큼 재빠르게 그 ‘특권’을 알아챘다.

정우는 언젠가부터, 아이들의 시선이 묘하게 다르게 꽂힌다는 것을 눈치챘다. 점심 시간에 디스플레이를 보며, 아이들이 픽, 비웃는 소리를 낸다는 것도. (물론, 우정은 — 정우가 보기엔, 눈치라는 게 아예 탑재되지 않은 것 같았다 — 그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런 점수 따위엔 먼지 한 톨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얼굴이었다.

정우는 반으로 다시 들어서는 그 짧은 순간에도, 어김없이 불길한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손목의 뉴로밴드가 경고음을 울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진동은 언제나 ‘주의’ 단계를 아슬아슬하게 맴돌았다.

상담실에 다녀오는 사이, 우정의 곁에는 어느새 다른 아이들이 몰려와 있었다. 최근 ‘미러스쿨’ 가상 환경에서 우정이 만든 미니 게임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문은 사실인 듯했다. “우리 아예 대규모 파티 모드로 가자! 판을 더 크게 키우는 거야!” 소현이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그때, 우정이 고개를 돌렸다. 교실 문가에 멈춰 선 정우가 눈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우정은 곧장, 아이들 사이에 밀려 있던 정우의 의자를 꺼내 주었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흥분된 공기가, 잠깐 식었다.

“상담 어땠어?”

“그냥… 별 얘기 안 했어. 특별활동 정하라고.”

“어떤 걸로?”

우정은 언제나 이랬다. 순식간에 주의를 정우에게로 돌려버렸다. 그러니 다들, 우정이 정우의 ‘베프’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방금 전까지 신나게 떠들던 소현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샐쭉한 얼굴이 되었다. (아마 우정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정우는 생각했다.)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어.”

“봉사활동?”

“교내에서… 이것저것 돕는 건가 봐.”

정우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제발 아이들의 신경이 자신에게서 멀어지기만을 바랐다.바로 그때였다.소현이가 불쑥 던졌다.

“태도 점수 이미 백 점이잖아. 그게 부족했어?”

반 아이 몇몇이 낄낄거리며 정우를 흘깃 돌아봤다. 픽, 하고 터지는 비웃음이 교실 공기를 타고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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