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우정이 되어 줄게 ep.7_우정

청소년 심리 성장 SF 드라마

by 김하늘

눈을 마주친다. 하나 둘 셋.

단 3초 만에 고개를 돌린다. 지금은, 그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극만.

"같이 정할래?" "내일 보자."

다른 아이들에게는 단 한 번도 건네지 않은 말들. '너만 특별하다'라는 신호들.

나는 오로지 그 아이만을 보고 있었다. 보고 있지 않을 때조차 그 아이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도연 선생님이 내 손목을 살짝 잡았다. 홀로그램 속 영상들이 떠올랐고, 그녀는 그 장면들을 조용히 훑었다. 평범한 등굣길 브이로그 같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연구자처럼 매서웠다. 그동안, 무인차는 양자 교통망에 연결된 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좁은 길이었지만, 속도는 놀라우리만큼 매끄러웠다.

"어땠어?"

그녀의 단단한 물음에,

"괜찮았어요."

별다른 무리는 없었다는 의미였다.

그녀는 선생님이자 보호자 신분으로 상담을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의 캐주얼한 차림 대신, 오늘은 단정한 감색 재킷에 검은색 슬랙스를 입고 있었다. 머리도 깔끔하게 묶었다. 학부모처럼 보여야 했으니까.

미리 함께 정해 놨던 나에 대한 설정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온 교포 전학생. 부모님이 개발자로 거대 연구 프로젝트에 동원되면서—나름 현실에 기반한 설정이었다—나는 한국의 친척집에 맡겨졌다. 도연 선생님은 나의 '사촌 누나'가 되었다.

그녀는 차에 타자, 한숨을 깊게 쉬었다.

"미안, 나도 모르게 사촌 누나라고 말해버렸어. 이모는 아직 하고 싶지 않은가 봐. 너무 양심 없는 것 같지만."

"저도 '누나'가 편해요."

"그래?"

도연 선생님은 그 말에 어쩐지 놀란 표정이었다.

"파이, 하치, 체리가 누나라고 부르잖아요. 저도 누나가 익숙해요."

도연 선생님은 "그런가" 하며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물론, 그녀는 뼛속까지 연구자였다. 아주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질문들이 슬며시 들어왔다.

"정작 정우랑은 대화를 거의 안 했네."

도연 선생님이 물었다.

"딴지 거는 건 아니야. 그냥 궁금한 거야. 너의 판단 기준이."

"수십만 개의 시나리오 중에서 가장 안전한 걸로 골랐어요."

아직 정우는 불안정했다. 지나치게 친밀하게 구는 건 경계할 게 뻔했다.

"다른 애들은 괜찮았어? 살짝 불편해 보이는데."

그녀는 아이들이 나에게 질문을 쏟아내던 그 순간에 영상을 멈췄다. 내 얼굴은 살짝 왜곡되어 있었지만, 언뜻 굳어 있게 보였다.

"불편한 건 정우였고, 저는 그저 정우를 미러 한 거예요."

그 미세한 신호들. 살짝 얼굴을 굳히거나, 대답을 머뭇거리거나. 그것만으로 정우는 자신이 겪었던 '과도한 관심'과 '시선'의 고통을 나에게 투영할 수 있었다. 동질감과 연민을 느낀다면, 좋은 출발이 될 거라 생각했다. 도연 선생님은 잠시 하고 싶은 말을 삼키는 눈치였다.

창밖으로 풍경이 흘렀다. 기계와 숲이 뒤섞인 장면들이 빠르게 스쳐갔다. 그녀의 표정을 보며 짐작했다. 아이를 속이는 게 불편한 거다. 하지만 내가 거짓을 말해도, 그 대화는 결국 그녀에게 전송된다. 단지 일주일의 시차만 있을 뿐. 그러니 꾸며낼 이유도 없었다.

“드디어 정우를 만난 거잖아. 어땠어?”

무릎을 손끝으로 두드리던 그녀가 나를 돌아봤다. 내가 기억하던 정우와, 실제의 정우는 달랐다. 직접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변화가 그 사이에 있었다.

“달라져 있었어요. 키가… 한 5cm 정도 컸고… 좀 더 방어적인 태도도요.”
“난 정우가, 친해지고 싶은 아이였는지 묻는 거야.”

그녀가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 시선은 조금 달랐다. 연구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녀는 내게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 ‘친해지고 싶다, 혹은 그렇지 않다의 문제가 아니다.’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보고서를 보면서,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나요?”

나는 안다. 그녀가 밤새 전 세계에서 올라온 리포트를 읽는다는 걸. 나와 비슷한 기체들, 분석의 대상들. 그래서 궁금했다. 이번엔, 그녀가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하지만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렇게만 말했고, 여정은 조용히 흘렀다. 질문은 더 없었다.

그날도 기계 새들이 내게로 날아들었다. 파이, 하치, 체리. 검은색, 파란색, 분홍색. 학교 아이들처럼 호기심에 이끌려 오는 걸까.

"우정이야!" "다녀왔어?"

하치가 묻자,

"응!"

체리가 대답했다. 새들은 언제나 나를 대신해 인사를 나눴다.

“학교 어땠어?”
“좋았어. 새 친구들을 만났거든.”

내가 겉옷을 횟대 옆 옷걸이에 걸어놓자 새들이 금세 쫓아와 물었다.

"친구들? 우리도 친구들이야." "그래, 너희는 내 친구들이지." "친구는 좋아. 간식을 줘!" "친구는 간식을 줘!"

횟대 위에서 딸깍, 딸깍—혀를 부리에 튕기는 소리. 그게 새들의 웃음소리다.

"우정은 친구지?" "응." "정말?"

또 자기들끼리 묻고 대답하고, 그러고는 딱, 딱. 웃음소리. 새들이 나를 놀렸다. 도연 선생님은 웃으며 지나갔다. 알아서 하라는 듯. 나는 간식 주머니에서 조심스레 과자를 꺼내 새들에게 나눠줬다. 기계 새들은 진짜 새처럼 깃털을 부풀렸다. 간식도 가짜, 새들도 가짜. 그런데 이 즐거움까지 가짜일까. 새들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꼬리를 씰룩거리며 기쁨의 춤을 췄다.

나는 새들을 시야에서 밀어내고, 미러스쿨에 접속했다. 쏟아지는 친구 요청들 속에서 정우의 이름은 없었다. 그럼에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정우였다. ‘정우는 내게 특별한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물론, 특별하다. 나는 그의 코어 기억을 가진 존재니까. 그것은 어떤 정보와도 다른, 살아 있는 기억이었다. 젖은 베개, 뺨에 닿는 축축한 감촉.

“그래서 침대에서 자는 걸 싫어하는지도 몰라요. 베개에 뺨이 닿는 게 싫어서요.”

나는 게임을 종료하고, 도연 선생님에게 말했다. 나는 여전히 소파에서 유지보수 모드에 들어간다. 도연 선생님이 아무리 침대로 가라 해도, 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건, 정우의 기억 속 한밤중의 울음 때문일지도 몰랐다.

도연은 잠시 말이 없었다. 내 앞에 앉아, 커피 머그컵과 함께 동화책 한 권을 꺼냈다.

“읽어주고 싶었어.”

『어린 왕자』였다.

“이미 아는 내용인걸요.”
“알아. 하지만 최근에 재밌는 리포트를 받았거든.”

차일드 모델 기체가 유지보수 모드일 때, 데이터는 기록되지 않지만 감각의 잔향이 남는다는 보고였다.

“어쩌면, 무의식이 생겨나는 걸지도 몰라.”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웃으며 덧붙였다.
“사실은 그냥, 예전부터 읽어주고 싶었어.”

도연 선생님의 목소리가 흘렀다. 낮고도, 나지막한 그 목소리. 그건 여우를 길들인 어린 왕자의 이야기. 어쩌면, 어린 왕자를 길들인 여우의 이야기.

그리고 나는 꿈을 꾼다. 아니, 꿈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오늘 내가 실제로 마주한, 정우의 이미지를. 나는 그 아이의 오른쪽에 선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살짝 눈을 맞추고, 조용히 웃는다. 그 아이가 나를 좋아하길 바라며.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화, 목 연재
이전 07화너의 우정이 되어 줄게 ep.6_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