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렝바레 증후군 Guillain-Barrě syndrome
나는 독감을 예방하려고 접종한 백신 때문에
희귀 자가면역질환에 걸렸다.
솔직히 이 병의 특징인 '희귀'란 단어는 이제 남 일이 됐다.
그 희귀한 경우가 나에게는 백퍼센트 였으니까.
인플루엔자 독감백신의 안전성이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아 억울하다.
이제부터는 평생 내 몸 상태를 보살피며
조심조심 무리하지 말고 살아야한다.
코로나 백신도 알 수 없다.
신경과 담당의가 다른 건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내 오른쪽 발가락만큼은 진심으로 걱정했다.
다른 부위의 마비는 다 풀려도
오른쪽 발 마비는 예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안 좋아보인다고.
내가 봐도 무척 좋지 않았다.
오른쪽 무릎까지는 움직여도
발가락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은 다행히 오른쪽 발가락과 발목이 풀리는 중인지
풀림통증이 무척 활발하다.
발등 여기저기가 따갑기도 하고
차가운 물방울들이 튀겨서 젖은 느낌이 있다.
그리고 수시로 지네처럼 다리가 많은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도 있다.
이런 감각들은 뜬금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반면 항상 느껴지는 감각은
사막 한가운데에 발목까지 푹 담그고 있는 듯한 촉감이다.
발을 움직일때나 손으로 만지면
모래질감이 더 분명하게 느껴진다.
병원에서 보낸 시간은 지옥이고 전쟁터였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기쁨의 순간들의 연속이어서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매순간 회복의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며
퇴보없이 앞으로 전진했다.
요컨대 나의 지난 30년은 날아가버리고
다시 한 살이 된 셈이었다.
갓난아기가 말을 배우고 걷기를 배우는 것처럼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목 가누기, 앉아있기, 서있기, 걷기,
심지어는 숨쉬고 먹고 목소리내기 조차도
새로 연습이 필요했다.
결정적으로 나는 현대의학이 없었으면
이미 중환자실에서 입원한지 삼일만에 죽었을 것이다.
호흡근마비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삽관호흡기를 통한 산소공급만이 나를 살릴 수 있었다.
어찌보면 병 주고 약도 준 셈이다.
재활병원에서의 마지막 도수치료 시간이었다.
담당 치료사가 내 뻑뻑한 다리를
들어올렸다 내려주면서 말했다.
“오늘부로 절대! 다시는!! 집으로 가서 잠을 잘때
머리를 병원방향으로 눕지도 말고
밥 먹을때 이쪽 쳐다보지도 말고,
병원 근처에 올 일 있어도
절대 이 앞길로는 걷지도 말아요. 알았죠?”
나는 이 말이 귀에 찰떡처럼 착 달라붙어버려
퇴원 이후에도 종종 그 말이 생각났다.
그래, 그때 그 일만 아니었으면
내가 여기에 있지도 않았을 텐데.
병원에서의 일을 내 인생에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고 싶어졌다.
원망보다는 새로운 경험인 것으로.
그리고 담당 치료사말대로
다시는 병원에 올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병원은 내가 생각했던 그런 곳이 아니었다.
병원에 머물던 기간이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아서
몰랐던 세상을 직접 보게 됐다.
나는 백신 부작용 피해 생존자다.
이 글을 쓰면서 구청에 문의해보니
국가보상 대상자임을 확인했다.
정식으로 신청할 서류들을 준비중이다.
삶에 커다란 구멍이 나는 바람에
다른 일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열심히 병원일지를 썼다.
예기치못하게 내 작업실 짐들을 삼촌 댁에 맡겨뒀다가
퇴원 이후에 조금씩 물감과 붓을 챙겨오고
캔버스나 종이도 집으로 모셔왔는데
막상 재료들을 다 갖추고 나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정신적인 스트레스, 집중과 긴장에 취약해진 몸은
이전처럼 작업을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였다.
몸도 그렇지만 병원에서의 일들이 머리에 꽉 들어찬 느낌.
무언가로 빼내야했다.
그냥 흘려보내면 다 지나고나서
뒤늦게 뭔가 남겨둘 걸 하고 후회할 일이 생길 것이다.
나중에 읽으면 이 글들이 어떻게 읽힐까.
글쓰기를 하는 동안 그저 기억이 정확할 때
최대한 많이 남겨두려고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간혹 어떤 이야기들은
상황묘사가 눈에 띌 정도로 섬세해졌다.
입원생활 중에 손으로 쓴 노트3권과
통원치료를 받으며 블로그에 끄적이던 기록물들을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매일 조금씩 다듬었다.
*16화 [ 7-1 ] 다시 일어나다 - 부터 마지막까지는
손의 마비가 덜 풀린 채 그린 그림을 그대로 넣었다.
1화~15화는 퇴원후 요양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그림들을 추가했다.
일년 가까이 시간이 지나니까
벌써 병원에 대한 기억들이 점점 지워지고 있다.
발병은 작년 10월 26일.
독감접종은 열흘전인 10월 16일이었다.
그 이후에는 중환자실에서 44일,
준중환자실에서 27일,
신경과 일반병실에서 21일을 있다가
재활병원으로 전원해서 6주간 있었다.
퇴원 후에는 거의 매일 4개월 정도 통원치료를 받았다.
글로 설명이 부족한 부분들을
조금씩 낙서처럼 그려넣다가 점점 그림들이 많아졌다.
처음엔 마비가 덜 풀린 손으로
직접 목격한 악몽의 내용들을 그렸다.
솔직히 그 꿈 내용들을 더 자세히 그릴 수 있었는데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그저 그때의 기억을 매개해줄 수 있는 정도에서
그만 묘사를 멈추었다.
다른 사람의 악몽으로 들어간 것처럼
꿈속에서 너무 고생했고
꿈에서 깼을때도 아직은
전신마비가 된 몸 안에 갇혀있는 상태였다.
지금 이 글과 그림이 나를 대신해서
그 당시를 자세히 기억해주기를 바라고
나는 이만 새로운 삶을 살아갈 준비를 위해
과거의 기억을 이제는 잊고 싶다.
그리고 길렝바레라는 어둡고 긴 통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통과한 사람으로서
같은 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내 경험담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길렝바레는 처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