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발 지팡이도 이제 안녕
3/17수요일
어젯밤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연락을 준 사람은 내가 평소 관심을 가지던 작가였다. 언젠가 함께 전시를 열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만 하고는 아직 말을 먼저 걸어본 적은 없었는데. 내 SNS가 멈춘 것을 보고 그동안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했다. 속으로 이게 웬일이지? 근데 너무 반갑다! 싶어서 답장을 써내려갔다. 나의 근황을 최대한 압축하고 간추려서. 정신을 차리고보니 근황은 잘 축약해서 썼는데 고맙다는 말로 시작해서 고맙다는 말로 글을 맺고 말았다. 뭐... 서로의 작품활동을 SNS로 보던 사이니까 이 정도로 반가워하는 마음은 표현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연락을 먼저 받으니 무조건 고마운 마음 뿐이었고 그 뒤에 내 글을 본 작가도 위로와 회복을 응원하는 내용으로 답장을 했다.
3/18목요일
산책을 하다가 집 앞에 있는 전통문화 연구소를 발견했다. 나는 평소에도 전통문화에 관심이 있어서 유리창을 들여다보며 호기심을 보이니까 엄마가 손가락 재활에도 도움이 될 거 같다며 등을 떠밀었다.
엄마 덕분에 용기를 내서 전통자수 수업을 등록했다. 그리고 물리치료를 꾸준히 병행하기로.
오전에는 무조건 휴식. 오후 2시 자수수업, 5시에 병원으로 출발, 5시반부터 7시까지 물리치료와 도수치료. 그러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하루에 3가지를 잘 해내면 성공이다.
병원에서부터 내 머리에 흰 머리가 자주 보인다. 한 가닥을 뽑으면 그 주변에 또 흰 머리 한 두가닥이 보인다. 검은 머리카락들 사이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다. 몸이 힘들긴 했었나보다.
3/31수요일
나는 매일 아침 조금씩 나아진 몸 상태를 선명하게 느끼지는 못했지만 일상적인 몇 가지 사소한 동작들이 더 발전한 걸 하나씩 발견했다. 계단 내려가기는 아직 한 발씩 내려갔지만 올라올 때는 양발을 번갈아서 걸을 수 있었다.
오전은 산책. 오후는 병원.
재활치료를 하기전 먼저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을 만난다.
"미세전류 치료효과는 어때요?"
처음에 나는 정확하게 대답을 하려고 고민했지만 어느날 부터는 서로 기분좋아지는 답을 찾았다.
"아주 좋아요!" 또는
"네!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라고 대답했고
의사선생님은 아주 흐뭇한 표정으로
"이건 대학병원에도 없는 기계예요! ^^"
라고 했다. 이런식으로 서로에게 긍정 마인드를 주고받았다.
미세전류 치료 덕분인지 내 발에는 마구 요동치는 것처럼 어떤 반응이 나타났다. 마치 착륙하는 비행기에 탄 듯 비슷하지만 그보다 약한 세기의 진동이 발에 생겼다가 사라졌다. 음... 혈액순환이 격렬해지면 이런 느낌일까? 아무튼 어떤 진동같은 것이 번개처럼 발을 통과했다. 게다가 아주 짧은 순간에 가늘고 뾰족한 바늘 여러개가 탁탁탁 찌르는 통증도 있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이런 통증들은 좋은 징조였다. 마비가 많이 풀리고나면 위치감각도 되살아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면 내 발이 어디쯤 놓였는지. 발을 포갰는지 풀었는지. 등등을 눈으로 안봐도 알 수 있게 되니까.
온 몸의 근육이 다 빠진 상태이고 부족한 힘으로 많이 걷다보니 두 다리의 허벅지 근육이 지나치게 수축되고 말았다. 그래서 어제는 치료시간에 허벅지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는 여섯가지 운동을 배웠다. 그 중 치료사가 가장 추천하는 자세는 플랭크의 쉬운 버전. 팔꿈치로 바닥을 짚고 배는 바닥에 내리는 대신 허벅지에만 단단히 힘을 주면 된다.
4/12월요일
봄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내가 처음 병원에 들어갔을 때에는 낙엽이 지고 단풍이 들던 가을이었다. 그 사이에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오늘은 지팡이 대신 장우산을 짚고 나왔다.
병원치료가 길어지면서 매너리즘에 빠졌다. 그래서 전통자수를 늘리고 치료횟수는 조금씩 줄이기로 했다.
오늘은 내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안부를 먼저 물어와주는 연락은 언제나 반가웠다. 잘 회복되고 있는지. 요즘에도 드로잉을 하는지.
드디어 지팡이 없이 혼자서 난간을 잡고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하루 전 운동효과로 허벅지가 쑤셨지만 또 한 단계 회복됐다. 그동안 무료하고 지루했던 재활치료시간에 대해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이제는 뛰기에 도전할 차례.
(다음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