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이 Seoy Oct 24. 2021

[ 9-1 ] 요양생활

통원치료

멀미와 회복을 반복하다.



3/10수요일

퇴원 당일 점심은 한우와 된장 볶음 밥.

오랜만에 차를 탔더니 심한 멀미를 하다가 결국 병원 밖에서 토를 하고 말았다. 

병원에 더 머물러야 했었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날 오후와 저녁에는 설사를 했다. 저녁은 굶었다. 

엄마는 우리가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다며 퇴원 첫날부터 걱정했다. 


3/11목요일

퇴원 1일째. 오전 10시쯤 집 앞 재활병원에 갔다. 의사는 반갑게 우리 모녀를 맞아줬다. 

이제부터 통원치료를 어떻게 해나가면 좋은지 상의했고 그동안의 병원 기록 묶음을 제출했다. 

치료는 근육이 약해진 관절과 무릎 그리고 발목을 위주로 전기치료와 미세전류치료를 받았다. 

지금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고 그냥 걸어다니면 나중에는 무릎에 무리가 가서 많이 아플 수 있다고 했다. 


3/12금요일

퇴원 이틀째 되는 날.

어제처럼 오전에 전기치료와 미세전류치료를 받았다. 다리도 걱정됐지만 어깨도 아파서 엎드려서 목 뒤로 넓게 전기치료를 받기도 했다. 힘이 생길 때까지는 이곳저곳이 아플 수 있다고 했다. 안좋은 자세로 걸으면 근육이 뭉치기 때문이란다.


의사는 치료기기에 연결된 전선 끝에 달린 스티커를 내 몸에 부착해주면서 나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엄마로부터 전해들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줬다. 내가 갑자기 희귀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엄청 식겁했다고 했다. 내가 병원 침대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동안 엄마 혼자 동분서주했던 사실들을 이렇게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으니 또 슬퍼졌다. 


재활치료를 다 마친 후에는 오랜만에 집앞 빵집에 갔다. 

코로나의 영향인지 엄마와 즐겨먹던 모닝세트가 없어지고 다른 빵이 그 메뉴를 대체하고 있었다. 아쉽지만 다른 맛있는 빵들을 고르기로 했다. 나는 소시지빵, 엄마는 옥수수빵. 커피는 한 잔을 둘이 나눠 마셨다. 


오전 스케줄이 병원과 빵집으로 끝났지만 더 돌아다니고 싶어졌다. 모든 것이 오랜만이라 지치기 보다는 오히려 기운이 생긴 것 같았다. 마침 엄마의 운동화를 백화점 수선집에서 픽업해야 해서 그 길로 바로 백화점으로 갈 수 있는 지하철을 타러 지하로 내려갔다. 아직 금요일 낮이라서 사람들 때문에 부딪힐 위험은 없었지만 그래도 걷는 속도가 느려서 미리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벽쪽으로 붙어서 안전하게 걸었다.


이런저런 소일거리를 핑계삼아 열심히 걸어다니니 자신감이 생겼다. 

여기에 탄력을 받아서 삼촌댁으로도 놀러갔다. 

나는 염치없었지만 맨 몸으로 가서 삼촌이 끓인 물로 우린 우롱차를 마시고 다같이 심심풀이 게임을 하는 것처럼 셋이 순서대로 돌아가며 혈압을 쟀다. 삼촌이 고혈압에 가까워서 걱정됐지만 전반적으로는 나보다 건강했다. 삼촌과 내 혈압수치를 비교하면 내가 정상범위 안에서 숫자가 제일 낮았다. 마지막으로 삼촌이랑 윷점을 보고 “아이가 보배다” 라는 문장이 나온 걸 보고 대충 좋은 점이라고 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고 그냥 재밌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누워서 쉬었다. 지하철만 탔는데도 멀미가 났다. 

이불 속에서 두 눈을 감고 가만히 쉬기만 하다가 저녁을 먹었다. 저녁은 병원밥처럼 작은 밑반찬 서너개 정도와 밥 그리고 미역국을 먹었다. 그러지 않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식후에는 병원에서 처방해준 유산균 가루약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소화를 잘 시키기 위해 집 주변에서 살살 밤산책을 했다.


내 몸의 상태 : 한 시간 정도 계속 걸으면 허벅지와 무릎 그리고 발목의 힘이 조금씩 빠져나가서 힘들었고 발바닥은 심하게 얼얼해졌다. 그래서 30분씩 나눠서 걸었고 중간에는 쉬거나 집으로 들어갔다. 어떤 날은 하루에 한 시간을 걷기 위해 서너번씩 쉬기도 했다. 매일 걷기 운동의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서 목적지를 달리 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계속 했다. 


3/13토요일

퇴원하고 3일째 되는 날 아침이다. 

엄마는 벌써 3일이나 지났다고 그랬고 아빠는 아직 3일밖에 안 지났냐고 물으신다. 



요양중에 사람 만나기



3/14일요일

오늘은 재활을 쉬는 날. 하지만 집에서 나와 걷기를 한 시간 이상 했다.


3/15 월요일

오늘은 엄마와 함께 여의도 거리를 걸었다. 

발바닥과 발가락이 얼얼해질 정도로 열심히 걸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어딘가에 부딪히거나 발부리가 걸려넘어지지 않도록 땅을 잘 살피면서 갔다. 가끔 지팡이를 짚고 걷는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가까운 곳에 햄버거 가게가 있었다. 거기서 햄버거로 점심을 먹으면서 그 앞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꽤 고행이었다. 여의도역까지 걸어왔던 길이 너무 멀었다. 오랫만에 그렇게 오래 걸어보니 나에게는 체력과 힘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시간계산 실패. 발바닥이 엄청 얼얼하고 굵은 몽둥이로 후두려 맞은 느낌이 들었다. 꾸역꾸역 집으로 도착할 때까지 걷고 쉬기를 반복했다.

저녁에는 아무것도 안하고 쉬었더니 체력은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했다. 

집 근처 공원으로 운동하러 다시 나갔다. 


3/15월요일

드디어 연락만 주고 받던 친구를 만났다. 

퇴원기념 선물은 내가 좋아하는 빵집의 오렌지 파운드 케익.

집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친구는 갈비탕, 나는 고기가 부담스러워 시래기 국을 시켜먹었다. 

음식점을 나와 동네 산책길을 걸었다. 병원을 퇴원한 뒤로 혼자서 밖을 돌아다닌 적이 없었다.

친구가 놀러온 덕에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어느 한적한 까페에 들어갔다.

한 시간 넘게 까페의자에 앉아있다가 물을 한 컵 받아오려고 일어나니 고관절이 심하게 접힌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크게 움직이면 더 아플 것 같아서 어기적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느리게 갔다왔다.


친구는 집이 멀어서 나와 일찌감치 헤어졌다. 나는 도수치료를 받으러 갔다. 

여전히 혼자 다닐 정도는 못돼서 엄마가 동행했다. 걸음이 느려 횡단보도를 건널 때 특히 조심했다.

내 느린 걸음으로는 신호가 바뀌는 것을 따라잡기 어려웠다.  



치료실에서 나는 발의 굳은 근육들을 풀어주는 치료를 받았다. 

그동안 너무 오래 누워있었고 걷는 자세는 불안정해서 발 근육들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치료사는 특히 발가락으로 힘을 줄때 섬세하게 쓸 수 있도록 발가락 관절을 감싼 근육들을 일일히 '쪼갰다.' 처음엔 심각하게 굳었다는 말을 듣고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러다가 발가락들을 앞뒤로 마구 꺾으면서 엄청나게 얼얼해지는 걸 경험하고 나서야 이해됐다. 치료사 손 안에서 내 발은 젤리처럼 위 아래로 엄청나게 구부러지고 휘었다. 발가락 뿐만 아니라 발가락과 발등을 이어주는 중간 관절도 너무 굳었다고 했다. 막상 부드럽게 만지면 아직도 먹먹한데 도수치료로 제대로 된 자극을 주면 정신없이 아팠다.


발의 안쪽과 바깥쪽(발날부분)만 간지러움을 느낄 수 있는 정도로 감각이 돌아왔다. 발등 가운데만 아직 손가락을 몇개 올려놨는지 눈을 감고 알아맞추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도수 치료사는 이런 순서의 마비풀림이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발 안쪽과 바깥부터 풀리기 시작하면 나머지 부분은 순조롭게 풀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남아있는 모든 마비는 시간이 오래 거리더라도 저절로 잘 풀릴 거란다. 



걷기를 잘 하려면 경사판에 10-15분정도 서서 아킬레스 쪽 근육을 따로 늘려줘야 한다. 

이때 무릎은 뒤로 밀지 말고(또는 잠그지 말고) 살짝 앞으로 구부려주면 좋다. 그러면 종아리가 훨씬 많이 당기면서 운동효과가 좋아진다. 기왕이면 골반각도도 하늘방향으로 살짝 기울이고 아랫배에는 힘을 줘서 서있으라고 알려줬다.


3/16 화요일

그동안 병원에서 가족면회는 주1회 1인으로 제한됐었다. 그래서 엄마 아빠도 동시에 면회를 오지 못했다. 

가족순서에 밀려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언니를 드디어 집 근처에서 만났다! 만나자마자 기분전환이 되고 다시 만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준중환자실에 있을때 심심할 때마다 마비가 덜 풀린 손가락으로 언니와 영상통화도 하고 톡으로도 연락을 주고 받곤 했다.


언니가 떠나고 공원에서 산책을 했다. 그곳에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운동기구가 많지 않아서 그냥 오랜만에 휘 둘러보고 동네산책을 좀 더 하다가 재활병원으로 갔다.

오늘은 걷는 자세를 섬세하게 배웠다. 보폭을 넓게 해서 걷기 그리고 상체를 앞 뒤로 리듬타듯이 유연하게 움직이며 걷기를 했다. 서 있는 자세를 바르게 하는 법도 알려줬다. 발을 십일자로 해야 허벅지 안쪽 근육을 단단하게 힘줘서 잘 쓸 수 있다고 한다. 지금 내 상태는 잘 서있는 것만으로도 운동이 됐다. 



정확한 자세를 배우고나니 발의 감각을 조금이라도 빨리 깨우고 싶어졌다. 땅에 발바닥이 닿았는지 떨어졌는지 느낌을 알지 못해서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다. 자세가 무너진 줄도 모르고 걸으니 그것도 문제였다. 다음에는 치료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병원에 있는 지압판 위에 서있기를 해봐야겠다.

발에 감각이 없어서 슬리퍼를 벗는 일이 오래 걸린다. 슬리퍼에서 발을 빼면 쏙 빠지지 않고 발등에 달라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만약 발등에 슬리퍼가 걸려있는걸 알아차릴 수 있다면 슬리퍼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고 발만 슥 빼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슬러퍼를 바닥에 내려놓는 느낌도 전달되지 않는다. 내가 느낄 수 있는건 골반이나 무릎으로 정확하지 않은 진동과 둔탁한 충격 그리고 대충의 무게감 정도다.


운동화는 슬리퍼보다 더 오래 걸린다. 

신발 속에 발을 끝까지 다 넣으면 발가락이 안쪽에서 구부러져있는지 펴져있는지를 구분할 수 없다. 감각이 과민해서 신발에 발을 넣고나면 발가락이 구부려져도 펴져있어도 일단은 얼얼해지기 때문이다. 발을 넣는 동안의 마찰이 발을 얼얼하게 만든다.


그런 과민함 때문에 집 안에서는 발바닥 밑에 구겨진 발수건이나 화장실의 물빠짐 발판 그리고 현관의 문지방이 발바닥에 닿으면 참을 수 없게 아팠다. 긍정적인 효과는 감각을 자극해서 아까도 말한 것처럼 빨리 되살아날 수 있겠지만 그 느낌은 엄청난 통증일 뿐이다.


치료사가 잘게 쪼개준 발가락과 발등의 근육상태를 잘 유지하려고 일부러 의자에 앉을 때마다 발가락을 구부려서 땅에 세워놓고 있다. 토 슈즈를 신은 발레리나의 발등 처럼 발을 세웠다.  


(다음 이어서)

이전 27화 [ 8-8 ] 그리고 다시 걷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