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재활병동 퇴원준비
3/5금요일
오늘 수치료를 오전 9시에 받았다.
아침에 다른 모든 활동들을 시작하기 전에 수치료부터 받으면 빡빡했던 근육들이 부드러워져서 몸과 기분이 나아지는데 도움이 됐다.
점심시간에는 안다고를 했다.
(아래 그림에서 안다고 운동을 하기 전 로봇치료사가 조끼를 입혀주고 있다.)
그런데 이번엔 안다고를 하면서 동시에 호흡을 측정하는 시간이었다. 측정의 목적은 내가 마시는 산소량과 내뱉는 이산화탄소량을 의사와 치료사들이 체크를 하는 것이었다.
코와 입을 산소마스크로 한 번에 덮었다. 내 손가락 검지에도 느슨한 집게를 집었다. 라텍스보다 젤리처럼 더 말랑거리는 산소마스크에 줄이 달려있고 내가 숨을 쉬면 그 줄을 따라 어느 카세트테잎 같은 기계로 측정을 했다. 한 15분정도 그렇게 하고 걸었다.
다른 15분은 전체 트랙을 돌면서 걸음걸이를 코치 받았다. 나는 낙상 고위험 환자이기는 했지만 예전보다 몸의 중심을 잘 찾아서 걸었다. 참, 안다고는 내 몸무게를 2kg만 지탱하도록 도와주는 역할도 했다. 로봇 치료사가 직진보행이 아닌 곡선 보행으로 기계를 설정해줘서 부드럽게 코너를 돌며 걸어보기도 했다. 병원을 퇴원할 때까지 나는 낙상위험 환자였지만 런닝머신 위에서 기본기를 익힌 다음 걸으니 두려움 없이 한 발 한 발을 뗄 수 있었다.
조끼입혀주는 그림 아래는 안다고로 코너를 돌면서 거울로 다리 각도를 확인하는 모습이다.
그 다음 왼쪽 개구리 자세 그림은 내가 물 속에서 걷기 전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다리자세를 스모선수처럼 취하고 두 팔을 벌려 물살에 밀리지 않는 힘을 온 몸에 주는 연습이었다.
간단한 양 팔 운동도 물 속에서 할 수 있었다. 수면 위로 양 팔을 쭉 펴서 올린 다음, 한 손을 다른 한 손으로 가져간다. 이때도 물의 저항을 느끼면서 움직였다.
끌고 갔던 손을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는다.
안면마비가 아직 왼쪽 눈꺼풀, 미간 그리고 왼쪽 입꼬리에 남아있다.
나보다 내 얼굴을 자주 쳐다보는 엄마가 더 걱정했다. 나는 내 얼굴에 난 피부 트러블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전공의와 담당 치료사에게 안면마비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나니 얼굴 근육 마사지 치료는 결코 방치해서는 안되는 문제임을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면 내 표정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얼굴 근육 치료를 위해 먼저 미간 찌푸리기와 입 모양으로 '아에이오우'를 치료사 앞에서 해보였다.
담당 치료사는 손 끝으로 눈꺼풀 근육을 지압으로 자극을 줬다. 그리고 내 눈꺼풀을 붙잡으며 눈에 힘을 힘껏 줘서 감아보라고 했고 반대로 아랫 눈꺼풀을 치료사가 누르는 동안 위로 힘껏 밀어 올려보라고 시켰다.
그리고 눈꺼풀 주변 근육과 입술 근육 주변을 검지로 쓸어 내리고 밀듯이 자극을 또 주었다. 정확한 원리는 모르겠지만 잠들어버린 근육을 하나하나 흔들어 깨워주는 것 같았다.
중환자실에 있는동안 급성기 이후 전신마비는 몸 전체 중 가장 먼저 얼굴부터 서서히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아마 얼굴마비가 풀린지 한 달 정도 됐을 때 나는 입에 적은 양의 물이라도 몇 초간 물고 있을 수 있었다. 간호사가 칫솔질을 해주고나면 양치질이 가능해졌다. 물론 입술에 힘이 끝까지 들어가지 않아서 입술꼬리로 양칫물이 줄줄 새서 종이컵을 턱 밑에 받치고 했다.
그때 이후로 내 얼굴에는 마비가 조금 남아 있다. 힘차게 양치질을 부글부글 할 정도는 아니어도 가볍게 오물오물 할 수 있는 정도다. 오물오물 거리는 양치질의 리듬에 따라 내 입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작업치료는 상반신과 하반신(병원에서는 상지와 하지라 불렀다.)을 하루씩 번갈아가며 했다.
나는 손의 마비가 조금 남아있는 것이 걱정됐지만 손 재활 치료를 받는 동안 그런 걱정은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오늘의 작업치료는 어깨 양쪽을 각각 팔을 부드럽게 돌려주며 굳은 관절을 풀어주고, 치료사는 내가 내 손과 팔을 있는 힘껏 사용하도록 직접 밀어내고 잡아당기는 저항을 만들었다. 치료사가 내 손을 밀어내는 동안 나도 밀어내고 치료사가 내 손을 잡아당기면 나도 잡아당겼다.
3/6토요일
나는 병원로비에서 산책도중 화장실을 가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그곳을 지나가던 어떤 할머니가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나중에는 내가 화장실 앞에 도착할 때까지도 몸을 뒤로 돌려가면서 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젊은 애가 지팡이를 짚고 가는게 신기했나보다.
걷기 운동의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는 내가 좋아하는 까페까지 네발 지팡이를 짚고 열심히 걸어가서 맛있는 음료를 사먹는 것. 처음엔 가까운 편의점까지 가기, 그 다음은 파스쿠찌까지 가기, 조금더 먼 암병원에 가기, 그 다음 더 용기내서 멀리 이곳까지 걸어왔다.
3/7일요일
방금 엄마가 메모장에 써놓았던 글을 핸드폰으로 읽고 눈물 콧물이 났다. 내가 중환자실로 갑작스럽게 떠나버린 일로 무척 힘겨웠던 그때의 심정을 글로 세세하게 써놨다. 그당시 엄마의 슬픔이 깊이 전해졌다. 그런데 글을 읽던 중 내가 발견한 사실 하나는 중환자실에서 담당의로부터 내 병에 대한 설명을 나 혼자 들으면서 울고 있었다는데 나한테 기억은 지워져서 없었다. 목관 시술 때 쓰는 마취약이 단기기억 몇 개를 지울 수도 있다더니 다른 기억도 아닌 바로 그 중요한 순간이 흔적도 없이 지워진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을 때는 내가 왜 침대에서 그러고 누워있었는지 영문도 몰랐다.
병원에 있는 동안 '코드블루'라는 안내방송이 자주 나왔다. 사람의 목소리가 차분하고 감정이 들어있지 않아서 몰랐는데 환자가 심정지 상태임을 알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 나를 간병했던 여사님은 방송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마음이 무척 힘들어진다고 했다.
이제는 아침마다 스스로 두 발로 잘 버티며 설 수 있게 됐다. 장족의 발전! 그런데 일어서자마자 첫 발걸음을 떼면 종아리와 아킬레스 근육이 엄청나게 당겨서 아팠다. 아픔이 누그러지고 근육들이 유연해질 때까지는 서서 버티는 시간을 좀더 가졌다. 잠이 든 사이에 종아리 근육이 다시 굳어진 듯 하다. 따로 예열을 해줘야 했다.
침대 끝에 두 발을 걸친다. --- 무릎까지만 걸친다. --- 엉덩이를 걸치고 두발을 땅에 단단히 딛고 선다. --- 엉덩이를 침대에서 떼고 허리를 편다. --- 한 발씩 떼어본다.
며칠전만해도 휠체어를 밀면서 걷는 것이 대단히 빠른 발전이었는데 지금은 어느새 네 발 지팡이를 사용해 걷는다. 마비가 계속 풀리는 중이고 풀리는 과정에서 미세하고 다양한 여러 느낌들의 통증들이 지금도 진행 중이라 완전히 잘 걸으려면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
오늘 회진은 침대가 아니라 복도에서 있었다. 나는 아침 일찍 휠체어를 카트처럼 앞으로 밀면서 엄마와 함께 걷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휠체어를 따라 미끄러질 위험이 없었고 걷는 속도도 나쁘지 않았다. 회진이 끝나고 운동치료를 시작하기 전까지 걷기 연습을 했다.
휠체어는 졸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욕창방지 방석은 아직 더 써야할 것 같다. 여전히 엉덩이가 많이 배긴다.
휠체어는 위의 두 그림처럼 불편한 상황들이 있어서 시설을 스스로 이용하기가 힘들었다.
반면 아래 그림처럼 네발 지팡이를 짚고 서있으면 엘리베이터 버튼과 화장실 자동문 열기 버튼을 직접 손으로 누를 수 있어 불편함이 없었다.
3/8월요일
기대 이상으로 결과가 좋아서 그런 가. 병원을 미련없이 깔끔하게 퇴원하고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몸에 마비가 다 없어지지 않아서 병원을 나간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다.
힘들고 답답한 병원에서 잘 지내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 이제는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몸이 눈에 띄게 회복이 되면서 정말 큰 의지가 됐고 마음에 안정감도 생겼는데. 병원 생활에 정이 들었을 정도로 그동안 잘 지내온 것 같다.
오늘부로 끝이 난 치료는 수치료와 로봇치료.
내일은 물리, 작업치료때 얼마나 회복을 했는지 테스트를 받을 예정이다.
전기치료와 라파엘(손 운동 치료)은 끝나려면 아직 몇번 더 남았다. 그리고 휠체어 타기 연습때부터 말썽이던 오른발목 때문에 체외 충격파 치료를 한 번 더 받을 것 같다.
네발 지팡이는 전공의가 제대로 짚고 다니는 사용법을 알려 주다가 내가 이제 예전보다 더 잘 걷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곧 외발 지팡이로 바꿔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병원생활을 하는 동안 병원의 지침에 따라 꾸준히 혈압과 체온을 측정했다. B병원에서는 내 혈압이 지나치게 낮고 체온은 자주 높아져서 두 번 세 번씩 측정하고 갔다. 그런데 점차 잘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몇 주 전보다 혈압은 거의 정상 범위내에서 머물기 시작했고 체온도 37.5도보다 낮았다. 예전의 내 체온은 37.2~37.4도가 나와서 코로나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물리치료, 작업치료 시간에는 마지막으로 내 아킬레스건 쪽 근육을 늘려주는데에 집중했고 발바닥과 발가락의 감각에 자극을 줬다. 그렇게 해서 마무리 짓게 되었다.
(다음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