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안타까운 환자
저 찰흙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흰 비둘기다. 매끈한 저 클레이는 새를 한 마리씩 만드는게 어울리고 완성도가 다른 것들에 비해 더 잘 나왔다. (일반병실 침대의 머리맡 선반과 내 찰흙인형들 진열한 모습. 흰 비둘기는 왼쪽에서 두번째.)
체외충격파 치료중. 몇 년전 너무 세게 치료받은 경험이 있어서 무조건 거부하고 엄살을 부렸었는데 견딜 수 있는 만큼 강도를 낮추고 나니 할 만했다. 어제는 두 번째 치료. 처음에 했던 3단계에서 이제 4단계를 받았다. 진동이 너무 세고 정신없어서 치료 직후에는 얼얼하지만 운동하거나 발목을 사용할 땐 통증이 거의 없을 것이다.
3/3수요일
B병원의 곳곳을 누비고 다니다보면 긴 역사를 가진 병원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본관 한복판에 있는 진열장에는 희귀한 수동 카메라의 여러 모델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부 그 병원과 관련된 사람들로부터 기증받은 것들이었다. 병원 설립자와 관련된 물품과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그 주변을 산책을 하다보니 저절로 관심이 갔다. 바삐 오가는 사람들의 무심함, 그리고 병원의 자부심을 전시한 곳에서 서성거리는 나의 한가로움이 대비가 됐다.
햇살을 받으며 휠체어에 앉은 채 졸고 있는 옆 침대 할머니를 그렸다.
할머니의 간병인이 잠깐 간호사에게 갈 일이 생겨서 우리에게 할머니를 부탁하고 자리를 비웠다. 치매에 걸린 그 할머니는 종종 소란을 피웠는데 졸고 있는 모습은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다음주 퇴원을 앞두고 나를 치료해 준 사람들의 얼굴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난주 휴일전에는 라파엘 치료사의 얼굴. 이번주는 로봇 치료사와 이전에 나를 담당했던 물리치료사까지 두 얼굴을 만들었다. 이번 주말에는 두 가지를 더 만들 예정. 이전 병원에서도 네 명의 얼굴을 만들어서 선물로 줬다. 내 여사님, 물리치료사. 담당 의사 선생님과 전공의. 만든 사람은 뿌듯하고 받는 사람도 기분 좋은 선물이 됐다. 치료해주셔서 감사합니다도 중요하지만 그 말에 내 마음을 다 담을 수 없어서 시작했는데 만드는 일 자체가 즐거움이 됐다.
얼굴의 기본형을 만드는 일은 꽤 공이 들었다. 시간도 생각보다 많이 들었지만 손가락 운동에도 도움이 되었다. 기본형은 곧 눈코입만 없을 뿐이지 얼굴이 되니까 매끄러워야 해서 한참을 두 손으로 둥글게 돌리며 표면을 다듬었다. 매끈해 질때까지 눈을 감고 두 손을 돌리면 그 모습이 기도를 하거나 마술을 거는 모습이다.
3/4목요일
로코맷
하지운동을 돕는 기계장치. 런닝머신같은 움직이는 레일 위를 일정한 속도로 걷기 훈련을 한다.
안다고
로코맷이 제자리 걸음으로 하는 훈련이라면 안다고는 긴 트랙을 따라 실제로 걷기 연습을 할 수 있다.
오늘은 로코맷 대신 안다고를 했다.
낙하산 타는 것처럼 안전장치를 등에 메고 다리에 아무 장치없이 걸으면서 치료사의 코치를 받고 걸음을 교정받는다. 로코맷보다 몸이 가볍게 움직일 수 있어서 좋고 기계를 끌면서 걸음을 섬세하게 수정할 수 있어서 좀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로코맷으로 걷는 동안 로봇이 대신 걸어서 그런지 생각없이 움직였나 보다. 의식하면서 걸으니 올바른 자세를 잘 따르기가 어려웠다. 안다고가 걸음에 많이 도움이 됐지만 하고싶은 만큼 할 수는 없었다.
위 그림의 순서로 다리 이동이 자연스러우면 다리 구부리기와 펴기가 부드럽게 ‘힘’으로 연결되야 하지만 현재는 그 만큼의 힘이 회복되지 못했다. 작업 치료를 하면서 발목, 양 옆(바깥) 허벅지와 뒤쪽 허벅지가 힘이 잘 안들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마비가 아직 남아있는 것처럼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필요한 부위에 ‘힘’을 주려고 하지 않으면 힘이 빠진 채로 나쁜 자세로 걷게 된다고 한다.
병원에 있는 동안 가까이 생활하는 환자들이나 보호자들 사이에서 나는 ‘참 안된 환자’였다. 내가 왜 입원환자가 됐는지 이유를 알고나면 다들 놀라며 그렇게 말했다. 대부분 나를 교통사고 환자로 오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