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트딜러 한혜미 Mar 25. 2020

두루마리 휴지가 아니라 박물관입니다

송도 국립 세계문자박물관 엿보기


문화예술경영 mba 비대면 강의 2주 차. 기존 계획대로라면 다음 주부터는 학교로 수업을 나가야 하지만, 코로나 19의 확산 방지를 위해 비대면 강의가 2주 연장되었다. 할많하않.


다행인 건 전공 교수님들께서 강의의 질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주신다는 것. 대면/비대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상의 강의 퀄리티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이분들께 감사할 뿐이다.

(어제 출석체크 때 손을 흔들라고 하셔서 흔들었지만.. 못 보시고 '안 오셨군요'하셔서... 급하게 채팅으로 '저 손 흔들었어요'를 써야 했지만.. 이것도 추억이랴ㅎㅎ)


이번 학기 총 4과목의 문화예술경영 mba 수업 중 전공 관련으로는 '박물관·미술관 교육론'과 '소장품 경영론'을 듣는다. 얼핏 보면 다르지만, 미술관의 현황을 파악하고 기능과 철학을 이해해서 큐레이터의 역량을 높이는 큰 줄기는 같다. '빗살무늬 토기가 여러 박물관에 있지만 그 콘텐츠를 해석하는 방법은 모두 다르다'는 것처럼 해석의 차이를 볼 수 있는 건 보너스다.


그리고 어제, 두 분의 교수님께서 수업 중 언급하셨던 박물관이 있다.

2021년 하반기 개관 예정 중인, 송도 세계문자박물관이다.


양심 고백하자면 관심이 미비했던 곳이다. 우리나라에 박물관과 미술관이 천 개가 넘는데, 어떻게 모두 다 알까. 그래도 두 분이 언급하신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곳이기에 두 수업에서 연달아 언급된 걸까.






송도 국립 세계문자박물관은 인천 최초의 국립 문화시설로 센트럴파크 위에 개관할 예정이다.

화상강의의 화면에서 이 사진을 보고 '응?' 싶었는데,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두루마리 휴지'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다고... 매우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선된 디자인이라는 말씀도 덧붙였다.


이 디자인의 장점(?)은 머리에 계속 남는다는 것이다. 한번 보니 잊히지가 않아서 더 찾아보기로 했다. 내가 모르는 의미를 알고 싶었고, 이 박물관으로 미술업계가 확연히 달라지진 않더라도 조금의 영향을 받는다면 미리 아는 게 맞으니까.





*아래부터의 이미지는 세계문자박물관을 디자인한 '삼우 종합건축사사무소'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했다. 디자인에 관한 해당 글 역시 홈페이지에 기재된 의견을 참고해서 작성했다.







국립 세계문자박물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서는 '전 세계 문자를 수집 및 전시하고 연구'할 예정이다. 건축사무소는 '건축적 PAGES'라는 콘셉트로, '세계 문자 문명의 정수를 담은 인류의 보물이자 사람들의 일상과 풍경을 끊임없이 기록하게 될'곳으로 해석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박물관, 그리고 박물관과 공원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기대한 것이다.







흔히 아는 직선이 아닌 곡선의 모습이다. 이는 공원의 의도를 해석했기 때문이다. 도시에 여유로움을 담으려는 의도에 따라 자연스러운 곡면을 선택했다. 위에서 보는 조감도는 공원의 길을 따라 박물관의 동선이 흘러가는 느낌이었는데, 옆에서 보니 굴곡을 따라가는 느낌도 든다. 건축사무소가 얘기하는 '유연하고 공공에게 열린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짐작하게 된다.






세계문자박물관의 디자인을 '마치 아이의 낙서 같기도 하고 문자가 완성되기 이전의 추상적인 모습을 닮았다'라고 표현했다. 유연한 곡선의 디자인답게 공원과 박물관의 경계를 알 수 없는 공간들로 이어질 예정이며, 방문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포부이다.







위의 사진을 보고 '두루마리 휴지'같다고 논할 수 있을까. 압도적인 느낌에 보자마자 반했다.


이 사진대로 실현된다면 아마 각종 sns에 사진 명소로도 인기를 얻을 것 같다. 해외 어느 박물관 못지않게 공간의 힘이 시선을 잡아끈다. 저 사진을 보면 가장 오른쪽에 어떤 사람이 사진을 찍듯 위를 바라보고 있는데, 마치 내 미래의 모습이 담긴 것 같다.


그런데 홍보용 기사들에서는 위의 사진을 볼 수 없었다. 그 외에도 지상이 1층이니, 2층이니 말이 달랐는데 진행되면서 바뀐 부분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지금 마음으로는 위의 모습이 무산된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입구를 지나 벽을 따라 걸으면 만날 수 있는 '세계 문자들의 바다'이다. 박물관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할 예정이며, 관람객들로 하여금 '나와 문자'를 몸소 체험하게 하는 건축적 장치라고 한다.


'물건은 눈을 사로 잡지만, 정보는 마음을 사로잡는다'


수업시간에 박물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으로 말씀 주셨는데 이 박물관은 눈과 마음을 모두 사로잡을 것 같다. 교수님께서 말씀 주신 박물관의 역할이 떠오른다. '오브제를 해석하고 소통하며, 그 소통을 통해서 관람객들에게 어떤 경험을 줄 수 있는지'이다. 문자 박물관이 '문자'를 어떻게 풀어갈지 기대된다.







이곳에서는 인천에서 창제된 최초의 한글점자 '훈맹정음'을 콘텐츠로 한 상설전시관도 설치가 될 예정이다. 훈맹정음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점자로, 강화 출산의 교육자 송암 박두성(1999~1963) 선생이 1926년 창안했다.

(세계 문자 박물관 유치를 위해 9개의 시·도와 경합을 벌였을 때, 인천이 박두성 선생을 배출한 도시라는 점을 내세웠다는 건 에피소드)


문체부 장관은 "문자를 통해 다양한 문화유산과 역사를 재발견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문화 정책을 추진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이 공간이 모든 이들의 염원처럼 단순한 랜드마크가 아닌 취지에 알맞은 박물관의 모습을 갖추길 바란다.






세계 문자박물관은 전시 콘텐츠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유·무형의 세계 문자 자료로 구성할 예정이며, 공사비 약 900억 원은 전액 국비로 진행된다.


사진 한 장이 아닌, 해석과 의견을 종합해보니 세계 문자박물관의 취지와 방향이 뚜렷해진다. 더해서, 세계 문자박물관의 설립이 미술업계만큼이나 부동산업계를 설레게 하는 것 같다.  홍보용 기사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부동산 관련 글이었으니까. 누구나 '우리 동네에 미술관이 있으면 좋겠다', 고 생각하지만 일 년에 박물관을 찾는 발길이 저조하다던 지난 수업의 내용이 떠올랐다. 그전에, 세계 문자박물관에 대해 나 역시 관심이 미비했기에 누구를 탓할 필요도 없이 스스로 먼저 반성해본다.


두루마리 휴지로 뇌리에 박혔던 세계 문자박물관.

2021년 하반기, 빌바오의 구겐하임처럼 각광받길 기대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