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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ESI Jun 08. 2022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백수 이력서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오늘은 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나는 투머치토커니까. 읽기 싫어도 끝까지 읽어주길 바란다. 이 매거진의 제목은 ‘1만 시간의 백수’이다. 제목처럼, 근 3년간 내가 백수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들을 풀어낸 에세이집이다.


 당신은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3년 동안 백수로 산 거지?" 어쩌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취업도 힘들고 히키코모리라던가 프리터족이라던가, 그런 게 넘쳐나는 세상이니까. 3년 차 백수쯤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지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나에겐 해당되지 않지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름- 고학력 백수이다. 평생을 ‘모범생’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이름 한번쯤 들어봤을 대학을 졸업했다. 그전까지 인생은 소름 끼칠 정도로 무난했다. 평생 존재감이라곤 1도 없었지만 ‘걔? 공부 열심히 하는 애 아니야?’에서 '걔'를 맡는,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인생을 구가하고 있었다. 사춘기 시절 부모님과 크고 작은 트러블을 만들기도 했으나 현재는 나름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다. 삶에 문제 될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정말이지 백수로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한 환경 속에서, 나는 백수가 되었다.








 백수가 되기 전, 나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었다. 사실 백수와 공시생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후자는 번듯한 명칭이 있으니 구별해주도록 하자. 내가 왜 공무원이 되려고 했는지에 대해 설명하려면 너무 길기 때문에 패스하겠다. 여하튼 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였고, 9개월 만에 때려쳤다. 시험도 보지 않았다. 이유는 우울증과 공황장애 때문이었다. 원래도 우울감이 있고 예민한 편이었는데 공시가 기폭제가 되어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삶이 무너졌다. 그래서 다 때려쳤다.


 공시를 관두고 2년 반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에이, 그래도 뭘 하긴 했겠죠. 아무것도 안 했다는 사람 치고 정말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은 본 적 없는 걸요, 호호." 정말 아무것도 안 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하루 사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밥을 넘기질 못해 두 달만에 7kg이 빠졌다. 거식과 폭식을 반복해 위장이 완전히 망가졌다. 지금 나는 김치 한 조각 먹는 것도 힘들다. 잠은 이틀에 한 번 잤다. 30분에 한 번씩 깼는데 그렇게 서너 시간이 지나면 그 후 이틀은 잠잘 수 없었다. 먹고 자질 못하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취업준비를 했지만 한 시즌만에 관뒀다. 하찮은 내 멘탈로 대한민국의 공채 시스템을 이겨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매일 자소서를 쓰고 불합격 문자를 받으면서 나의 불안장애는 더욱 심해졌고, 면접이라도 볼랑 치면 과호흡이 왔다. 한 번 떨어지면 일주일을 앓아누웠다. 일단 살고 보잔 마음으로 3개월 만에 때려쳤다. 주변에서도 나의 선택을 두둔하며 프리랜서로 일하는 게 어떻냐고 권했다. 나중에 말하길 이러다 죽겠다 싶어 말렸다고 한다.


 그렇게 놀기를 다시 반년.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충동적으로 정한 건 아니고 어려서부터 꿈이었다. 정확히는 철밥통이 되어서 주중에 돈 벌고 주말에 글 쓰는 게 꿈이었는데, 철밥통은 실패했으니 글이라도 쓰자는 심정이었다. 물론 아무 대책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내겐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나의 찬란한 재능. 나는 내가 신이 내린 재능을 가진 프로재능러라서 글만 쓰면 성공할 줄 알았다. 세상의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나를 향하며 ‘세상에, 이런 인재가 우리나라에!’를 외칠 것이라 굳게 믿었으나, 웬걸. 명동 한복판에서 외쳐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그 뒤로 1 년을 더 붙잡았으나 등단은커녕 본선에도 오르지 못했고, 곧 굶어 죽을 운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와우!








 그렇게 나는 만 3년을 경제활동 없이 부모님께 빈대 붙으며 살아왔고, 지금은 누가 시키지도 않고 돈도 주지 않는 주간 연재를 하겠다며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여러분은 그런 백수의 글을 읽고 있는 거고.


 왜 나한테 이런 TMI를 말하는 거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나도 모르겠다. 다만 당신이 나에 대해 알면 내 글에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하는 작은 꼼수였다. 한 번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기도 했고. 왜 그런 날 있지 않나. 갑자기 속에 있는 모든 걸 다 쏟아내고 싶은 날. 한의사 아저씨는 내게 말을 줄이고 서두르지 않는 게 건강법이라고 했지만, 이미 나는 건강하지 않으니 오늘만 더 되는 대로 살아볼까봐. 하하하



 이야기를 어떻게 끝내야 될지 모르겠다. 다만, 글을 쓰고 싶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고, 누군가 나를 찾아주길 바랐고, 나 같은 사람을 발견하고 싶었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정말 나밖에 없을까? 찾아보면 한 둘은 나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쓰기 시작했다. 바다를 떠도는 유리병 편지마냥 누군가에게 닿길 바라며. 그리하여 만나게 된 그이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우린 서로가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누굴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나와 같은 사람이라면 말해주고 싶다. 흔적이 없다 해서 시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 우린 분명 존재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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