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그림자-1

부재

by 하늘

아침 일찍부터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책상 위에 던져둔 화면이 부르르 떨릴 때마다 서연은 눈길을 피했다.
부재중 통화, 열일곱 통. 그 아래엔 같은 번호로 도배된 메시지가 꼬리를 물고 있었다.


05:30 ― 우리 딸, 엄마가 미안해. 사랑해.
06:17 ― 너 왜 안 받아? 나 지금 갈 거야.


서연은 핸드폰을 뒤집었다. 회의 자료에 시선을 고정했지만 활자가 희미한 먹물처럼 번져서 읽히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문자만 고장 난 확성기처럼 메아리쳤다. 결국, 손이 아닌 체념이 대신 답장을 눌렀다.


“술 좀 그만 먹고, 연락하지 마.”


그리고 속으로 기도하듯 중얼거렸다. “오지 마… 제발, 오늘만은.”


그러나 5분도 채 되지 않아 알림음이 또 울렸다.
“내가 무슨 술을 마셔.”
“사람한테 그따위로 말하지 마.”
“네가 뭘 그렇게 잘났다고 엄마를 무시해.”


펜을 쥔 손끝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불안과 분노가 얽혀 장기를 비트는 듯했다.




정오 무렵, 사무실 로비에서 소란이 터졌다.
유리벽 너머로 구겨진 원피스, 풀어진 머리끈, 휘청거리는 그림자.

경비가 막아섰지만, 엄마의 목소리는 대리석 바닥을 울리며 번졌다.

“서연아, 엄마 왔다!”


순식간에 사무실이 정적에 잠겼다. 수십 쌍의 시선이 일제히 자신에게 꽂히자, 서연의 목덜미가 후끈 달아올랐다. 일어나지 않으려 버티던 다리는 납처럼 무거웠고, 손끝은 덜덜 떨렸다.

이 감정은 분노일까, 불안일까.

완벽하게 세운 장벽이, 엄마의 비틀거림 하나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문을 열자 술에 달아오른 얼굴이 들이닥쳤다. 눈동자는 소주에 잠긴 듯 탁했고, 목소리는 낯선 사람처럼 갈라져 있었다.


“네가 뭔데 사람을 가르치려 들어? 사장 나오라 해! 내가 너 잘라버릴 거야!”


꼬부라진 혀에서 쏟아진 말은 못처럼 가슴에 박혔다. 입술을 열면 눈물이 터져버릴 것 같아 서연은 이를 악물었다. 손바닥 안쪽엔 손톱자국이 희뿌옇게 파여 갔다.


“…가자. 나가서 이야기해.”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팔에 매달렸다. 회사 문을 빠져나오는 순간, 서연은 순간적으로 의심했다.

치매가 시작된 걸까. 그러나 엄마 손에 들린 김치통을 보고 곧 알았다. 제정신이다.


“내가 니 때문에 김치까지 날라야 되냐? 다 처먹든가 버리든가, 알아서 해!”

서연은 한숨을 삼키며 대꾸했다.

“알았어. 바빠서 그랬어, 집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