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그림자-2

칼날

by 하늘

퇴근 후 좁은 자취방 문을 열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신발을 벗으며 중얼거렸다.
“오늘도 고생했다.”


그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띵동. 띵동. 띵동.
서연의 몸이 굳었다.


휴대전화 화면엔 또다시 수십 통의 부재중 통화. 방금 도착한 문자.

“서연아, 엄마 왔어.”


문손잡이가 덜컥덜컥 흔들릴 때마다 원룸 벽이 북처럼 울렸다. 서연은 결국 문을 열었다. 산소가 빠져나가듯, 가슴이 조여왔다.


“들어와.”

오늘만은 더 큰 파도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서연은 엄마의 기분에 몸을 맞췄다.

식탁 위에는 아구찜이 올려졌고, 옆에는 빠지지 않는 술병이 놓였다. 알코올 냄새는 벽지와 장판에 밴 김치 냄새처럼 방 안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요즘 뭐 힘든 일 없어?”


엄마의 말에 서연은 눈시울이 화끈해졌다. 제정신일 때 한 번만 해주면 될 말. 꼭 술에 젖은 목소리로만 묻는 걸까. 술이 엄마를 따뜻하게 만드는 걸까.


“그냥 그래.”
“대화하기 싫어? 넌 맨날 그렇게 단답이더라.”

엄마는 술잔을 가득 채우더니,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털어 넣었다.
서연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 대답은 저 술잔에 삼켜졌다.




엄마가 방 한가운데 쓰러져 잠들자, 서연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남은 소주 두 병.

“딱 잠 올 정도로만 마시자.”


불도 켜지지 않은 방, 휴대전화 불빛에만 의지해 잔을 기울였다. 엄마의 입술이 닿았던 소주잔에 자기 입술도 닿았다. 빈병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머리가 둔하게 무거워졌다.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가 수건 더미 뒤에 감춰둔 커터칼을 꺼냈다. 손잡이를 밀어올리자 차가운 칼날이 드러났다. 흐린 시야 속에서도 손길은 정확했다. 차갑게 긋자, 검붉은 액체가 선을 따라 흘러내렸다.


덤덤했던 서연은 그제야 눈물을 쏟았다. 마음이 아니라 손목이 아파서, 아픔이 눈물을 대신 끌어냈다.

울음소리가 새어 나갈까 두려워 세면대 물을 세차게 틀었다. 그러나 붉은 물은 옷깃을 적시고 소매를 타고 팔 위로 스며들었다. 만약 마음의 상처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아마 이렇게 퍼져 있겠지.


‘딸깍.’
문이 열리는 소리.


“이게 무슨 일이야?” 엄마의 목소리.


서연은 울부짖듯 외쳤다.
“다 엄마 때문이야. 내가 이렇게 힘든 건 다 엄마 때문이야!”


돌아온 건 차가운 말뿐이었다.
“기껏 키워놨더니 이게 무슨 지랄이야. 죽을 거면 내 눈앞에서 안 보이는 데 가서 죽어.”


숨이 막혔다. 몸부림치듯 고통을 토해냈지만, 전부 무시당했다.
그 순간 서연은 깨달았다. 나는 엄마의 딸이 아니구나. 엄마는 내 엄마가 아니구나.


“…그만하자.”


두루마리 휴지를 대충 뜯어 손목에 감았다. 그리고 집을 나와 끝없는 길을 걸었다. 갈 곳 잃은 길고양이처럼 도시를 배회했다.

그날 밤, 고작 16도의 술이 엄마와 서연의 마음을 똑같이 시커멓게 태워버렸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달래듯,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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