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by 하늘


“아름다움은 선함에서 오지 않거든. 인간도 선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살아있으니 아름다운 거야.”
“아름답다는 것은 가장 나답다는 것이다.”


나는 이 두 문장을 오래 좋아했다. 단순히 아름다움을 미(美)나 도덕에 기대지 않고, 생명과 존재에서 찾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가장 ‘나다운’ 모습이라면 무엇이든 아름다운가?

악한 존재가 가장 악하게 존재할 때도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싸이코패스가 살인을 저지를 때, 그는 가장 자기답다. 그 순간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 행위는 추함을 넘어선다.

이 질문 앞에서 나는 깨달았다.

내가 붙들었던 문장을, 내가 다시 써야 한다는 것을.


인간은 선하지 않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타 생명을 해친다.

말로 타인을 상처 입히고, 무관심으로 존재를 지우며,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을 소비한다.

이런 인간에게 “아름답다”는 말은 쉽게 허락될 수 없다.

나는 본질적으로 아름다운 인간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자연에 머무는 이유는, 그것이 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무는 상처를 주기 위해 자라지 않고, 꽃은 증오 없이 피고 진다.

바다는 존재를 삼키지 않고 품고, 태양과 달은 어떤 생명도 지우지 않는다.


그렇다면 타락한 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돌보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방식은 거창하지 않다. 아주 사소한 노력에서 시작된다.

해치지 않으려는 순간. 우리는 그 순간에 아름다움을 본다.


자연을 아끼려는 마음,

연약한 것을 지나치지 않는 시선,

타인을 지우지 않으려는 멈춤.


인간은 아름다운 존재가 될 수는 없지만,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 수는 있다.


그 순간들이 모여 관계가 되고, 관계들이 모여 세계가 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타 생명에게 무해하려는 의지, 즉, 아주 희박하게 피어나는 빛이다.


나는 아름다운 인간을 믿지 않는다.

다만, 빛을 내는 그 순간을 믿는다.

아주 희박하고, 아주 사라지기 쉬운 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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