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Aug.
혼자 여행하는 KL(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에서 맞는 일요일 아침, 나는 걸어서 이슬람 아트 뮤지엄에 도착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면 밥부터 먹는다. 자고로 예술이나 문화는 배불러야 나오지. 암암.
식당에 나 말고 혼자 있는, 연신 웃고있는 할배가 있었다. 우연히 계산을 같이 하고 나오면서 왜 이 할배는 여기 혼자왔을까 궁금해서 눈마주친 김에 말을 걸었다.
"혼자오셨쎄여?"
여행을 좋아하는 Leo할배는 벌써 이 미술관에 네번째 오는 거라고 하셨다. 나는 이 박물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어떤게 좋은지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랑 같이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Leo할배의 역사, 종교, 예술, 정치 강연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이 분의 이슬람 사원의 건축에 대한 이해가 너무 깊기에 "건축가에요?" 물어보니 아니시란다.
메카에 있는 검은 돌, 카바를 싸고있는 테피스트리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면서 "이 테피스트리에는 분명 어딘가 의도로 실수를 한 부분이 있을거야. 완벽한 것은 알라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거든." 등등 예술품에 대한 대화부터 시작하여, 인간은 눈에 보이는 상징이 필요하기에 이런 예술은 권위를 준다 등등으로 점차 대화가 넘어가,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민주주의의 헛점등등으로 대화가 점점 넓어졌다. 내가 궁금한 이상적인 정치를 하고 있는 곳은 스위스라는 것도 말씀해주셨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걸 아세요?"
Leo할배는, 올해 자그마치 85세이시다. 젊어서 여행을 많이하셨다고 한다. 일년 반동안 자전거를 타고 유럽에서 중동을 거쳐 호주까지 횡단 여행도 했고, 그 같은 길을 Nally라는 5년전 사별하신 아내분과 오토바이와 사이드카로 다시 여행을 하셨다. 여행을 가기전 그 나라에 대해서 공부를 하셨기 때문에 많은 것을 아시는 거라고 했다. Leo 할배의 얘기가 재밌어서 내친김에 저녁까지 함께 먹게 되었다.
Leo할아버지는 체코에서 태어나셨다. 그리고 히틀러에게 나라가 점령당하고 강제 독일인이 되었다가 풀려나면서 나라에서 추방당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50년 전 호주로 망명하게 되었다. (살아있는 역사책...) 그리고 호주 시민으로 지금까지 살아오셨다. 그리고 스무살 초반에 Nally 할머니를 만났고, 50년 동안 자식도 없이 5년전 암으로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기전까지 두분이서 여행을 다니며 알콩달콩 사셨다. 그 후로 지금은 일년 중 8개월은 일하고, 4개월은 여행을 다니고 계신다. 아프리카에서는 캠핑카를 사서 다니셨고, 인도, 미국 등등. 다음 일정은 파리라고.
83세 할아버지가, 아이폰/아이패드/맥프로를 들고 여행을 하시면서 그 세개 디바이스를 연동해서 사용하시고 있었다. 도대체 할아버지는 정체가 뭔가요?
Leo할아버지는 호주 방송국과 우드 사이드라는 석유회사의 대주주라고 하셨다. 그 석유회사가 석유채굴을 시작할 때 주식을 사서 아직도 들고 계심. 여행다니셨던 다양한 사진을 보여주셨는데, 그 중 할아버지 집도 보여주셨다. 호주 골드코스트에 섬이 있는데, 28가구 정도 사는 그 섬에 할아버지 집이 있다. 해변과 접해있는 집에 수영장과 할아버지가 타는 보트가 있고 펠리칸이 보트에 앉아있었다. 살아 생전에는 할머니와 두분이서 살았지만 지금은 혼자 사시면서 본인이 다 청소도 하신다고 했다. 그 와중에 다소 낡아보이는 차가 잘 맞지 않았다.
"이 차는 낼리의 차야. 낼리가 죽고 나서 사람들은 나에게 재혼을 권하기도 하고 차를 바꾸라고 하기도 했지만, 나는 낼리와 내가 대화할 수 있다고 믿어. 내가 낼리에게 '차를 바꿔도 될까?'라고 물어보면 낼리는 싫다고 섭섭하다고 할거야. 나는 50년동안 낼리와 둘이 지내면서 정말 축복받은 삶을 살았어. 나라에서 추방당한 후 나에게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거든 낼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우리는 함께 여행하고 어디든 같이 갔지. 자식이 없어서 지금은 외롭지만 그리고 너에게는 자식을 낳는게 좋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우리는 그만큼 서로에게 더 충실할 수 있었다."
김치녀, 조건, 내 가족, 당신네 가족의 얘기에 물려있던 나에게 정말 따뜻한 이야기였다.
"Leo할아버지, 우리는 결혼을 두사람의 만남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두 집안의 만남이라고 해요. 결혼한 두사람을 괴롭히는건 상대방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비교, 상대방의 가족 등이 많은것 같아 보여요."
"이민을 가버려! 캐나다든 어디든.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비교, 영향력 아래서 행복하기 어렵다면 두 사람이 더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곳에서 서로를 더 볼 수 있는 곳으로."
우리 엄마가 들으면 기절할 소리지만, 일리는 있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은 갖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에서 올 수 있다. 그래서 정말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게 하는 돈, 직업, 명예 그리고 그보다 더 치명적인 남편의 돈, 남편의 직업, 남편의 명예, 당신의 가족... 다른 사람에게 좋아보이기 위한 허울들을 남과 비교하는 사이에 그 안의 본질, 그 사람과 그 사람의 마음을 보기 어려워 지는 것이다. 그건 두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그 두사람을 싸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다.
Leo할아버지의 아내를 향한 사랑은 아직도 간절하다. 암으로 아내를 잃게 될 줄 몰랐기에, 화학치료를 하면서도 정말 아내가 세상을 떠날꺼라고 믿지 않았기에. 그렇지만 그럼에도 할아버지가 행복한 표정을 계속 짓고 계셨던 것은 아내와 함께 한 삶이 다른 누구도 끼어들 수 없을 만큼 충만했고 축복받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인것 같다.
저녁을 먹고 나를 택시에 태워 보내주시면서, "좋은 남자를 만나렴!" 하셨다. 심지어 Leo 할아버지조차도 나에게 남자들은 어린 여자를 좋아하니 내 계획처럼 10년 후 결혼을 생각하면 니 생각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을껄?이라고 겁을 주셨다. 앞으로 10년은 더 정정하게 사신다고 했으니, 그 안에 찾아 할아버지의 멋진집에 방문하기로 했다.
2015년 11월 11일에 이르기까지 레오 할아버지와의 인연은 계속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만난적은 없지만, 제가 사랑과 인생에 대해서 고민을 할 때마다 할아버지께 메일을 보내서 조언을 받고는 했었지요. 그 메일의 내용 중 너무 좋은 이야기들이 많아서 여기에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년도 12월 크리스마스 이브에, 제 연애 역사상 가장 저를 시련에 들게 하고 힘들게 했던 남자친구와 함께 레오 할아버지 댁에 방문을 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제가 찾은 남자친구를 어떻게 보실지 궁금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