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의 사회적 기업가 - 40살에 레스토랑을 오픈한 마약 중독자 베니
싱가폴의 Bugis에 있는 카페 ‘the blackseed’에서 베니를 만났어요. 올해로 56세인 싱가폴 사람 베니 세 토는 껌을 씹는 것조차 불법인 싱가포르에서 헤로인 중독자였어요. 7명의 형제 중 한 명으로태어난 베니의 아버지는 아편을 파는 마약 딜러였고, 어머니는가정주부였습니다. 베니는 아버지가 판매할 마약을 포장하는걸 도우면서 자랐대요. 십대 때 마리화나를시작했고,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시험에서 실패합니다. 젊은 시절을 감옥과 재활원을 10년을 넘게 들락거리며 보냈다고 해요. 장궤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그는 어떤 영적인 경험을 하게 되고 신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그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겠다고 마음먹게 했다고 해요. 그때가 1992년이었고, 비로서 사회로 나온 베니는 중졸의 33세였던거죠.
그가 막 교도소에서 출소했을 때 사람들은 한창 싱가폴 드림(dream)을 쫓느라고 바빴대요. 비싼 차, 현금, 그리고 비싼 아파트를 사는거고, 많은 사람들이 폭발적인 경제성장과 함께 그걸 이루었죠. 그렇지만 베니가 원했던 것은 그런 성공도 아니고, 정말 단순하고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주방 보조,배달원 같은 포지션에 지원을했고, 6번의 인터뷰를 봤습니다.그렇지만 아무도 감옥에 간 경력이 있는 그를 고용하고싶어하지 않았던거에요. 그때 베니는 다짐했대요.
‘아무도 인터뷰에서 날 고용해주지 않으니 결국 난 내 스스로를 고용하는 수밖에 없다. 만약 내가 성공해서 다른사람들까지 고용할 수 있게 된다면 난 꼭 ex-prisioner(감옥 출소자)들을 고용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겠다.’
베니가 시작한 첫 일은 인터뷰도 볼 필요가 없는프리랜서 배달이었다고 합니다. 호출기와 오토바이면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열심히 일했던 베니는 7년 후 인 40세부터 작은 택배회사를 운영하기시작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듯이 그당시 그가 고용했던사람의 80%는 재소자들이었대요.
1999년, 그는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회사 일을 뒤로하고 큰 지진으로 많은 피해를 겪은 터키에 교회 자원봉사단과 함께 도움을 주러 가게 된거에요. 봉사단원들은 대부분 의사와 간호사들로 꾸려져 있었고, 그쪽 재주가 없었던 베니는 주방에서 음식을 하는 팀에 들어가게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곧 잘 취미로 음식을 하곤 했지만, 많은 사람들을 위해 주방에서 공식적으로 요리사로 일한 경험은 그게 처음이었다고 해요. 베니는 사람들을 위해 고국의 그리운 싱가폴 음식을 만들었고, 그의 요리는 정말 센세이셔널 했던거죠. 몇몇 사람들은 베니에게 배달 회사를 접고 음식점을 열라고 추천을 했대요. 사회에서 문제아로 낙인이 찍힌 사람에게 칭찬과 격려가 어떤 의미였을까요? 요리는 사회에서 아웃사이더였던 그를 인사이더로 인정받게 하는 느낌을 줬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베니는F&B 사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처음으로 들기 시작했대요. 40세가 되어서 진짜꿈을 발견한거에요.
정식적으로 요리 교육을 받은 적도 음식점에서 일한 적도 없지만 그는배달 사업을하면서 모았던 2천만원으로 2005년 중국음식 레스토랑을 창업을 합니다. 제일 먼저한 일은 유니폼을 산거였대요. 멋진 유니폼을 사고 ‘Executive Chef’라고 팔에 멋지게 달고 10코스 메뉴를 짰습니다. 문제는 요리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에는 능숙하지 않았단거에요. 무엇보다 적은 자금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도시의 중심지와는 아주 먼 지역에 레스토랑이 위치해 있었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베니가 고용한 온몸이 문신으로가득한 재소자들이 서빙하는 고급 중국 레스토랑은 많은 손님을 모으는데 실패합니다. 그래서 일 년만에 그는 레스토랑 문을 닫을수 밖에 없었어요. 더 잃을 것도 없는 그는 셰프의 꿈마저 잃을 순 없었대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어떻게 하면 운영을 더 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인터넷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영국의 스타셰프,‘Jamie Oliver’의 ‘fifteen foundation’ 였습니다.
“제이미 올리버가 누군진모르겠지만, 영국에 아주 유명한 셰프라고 하더라고. 그 사람이 런던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Jamie’s fifteen이란 곳인데, 불우한 가정 환경이나 어릴 때 방황으로 배움의 시기를 놓친 사람들을 견습생으로 받아서 가르쳐주는 인턴십 프로그램을 발견한거야. 내가 하고 싶은 재소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레스토랑과도 컨셉이 맞았기 때문에 난 꼭 그 인턴십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그래서 전화를 걸었지. 그런데해당 프로그램은 영국 사람들에 한정해서 지원자를 받기 때문에 안된다는거야.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고 다음날 전화를 다시 걸어서 또 같은 질문을 했어. 그 사람이 ‘Benny, as I explained before, we only accept people here in UK…(베니, 내가 전에 설명했듯이, 우리는 영국에 거주 중인 사람들에게만 인턴십 기회를 주고 있어요)’ 그리고 다음 날 또 전화했지. 받아 준다고할 때까지 전화하고 요청했어. 결국 그들은 내 끈질김에 두손 두발 다 들었고, 2006년 나는 자비로 비행기표와 숙소를 마련해서 런던으로 날아가 인턴십을 했어.”
“앙트레 같은건 뭔지도 몰랐을 때야. 칠리 크랩은 끝내주게 만들수 있었지만…거기서 처음으로 정통 웨스턴 음식에 대해서 배웠지. 어느날 올리브 오일로 샐러드를 버무리고 한 손으로 접시에 옮겨 담으려고하는데, 수셰프가 나에게 소리를 질렀어.
‘베니!!!! 이 야채들은 살아 있다고! 두 손으로 소중하게 옮겨 담아야 해!’
난 음식에 대한 열정만큼은 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나는 요리를 정말 사랑한다는것이 어떤것인지에 대해 배울수 있었지.”
그리고 그는 싱가폴로 돌아왔고, 배워 온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2007년 캐쥬얼 양식 레스토랑인 Eighteen chefs를 만들었습니다. 이번 달 2개의가게를 새로 더 오픈하는 베니는 다음 달이면 14개 레스토랑의 co-founder가 됩니다. 두명의 동업자와 2억원 자본으로시작한 레스토랑이 10년만에 연매출 75억의체인점이 된거에요.
“베니, 레스토랑을 운영하면 Eighteen chefs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 어려운 산업에서 성공적일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뭔가요?”라고 제가물었어요.
“I market myself (난 내 자신을 팔아). 내 브랜딩이야.” 베니가 답했어요.
그리고 이어서 덧붙였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가르쳐준 적은 없지만, 난 셰프로 나 스스로를 브랜딩했지. 사람들은 레스토랑은 기억하지 못해도 셰프는기억하더라고. 그래서 내 이미지들을 레스토랑에 크게 붙여놓기 시작했어. 어떤 사람들은 내가 너무 자아 도취적인거 아니냐고 하는데, 중요한 건 이게 먹힌다는거야. It works!”
마치 스티브 잡스가 항상 청바지에 까만 터틀넥을 입었던 것처럼 베니가 항상입는 룩이있어요. 그리고 그의 특유의 무표정은 하나의 아이콘같죠. 또한 그의 삶이 워낙 기구하다보니 다양한 곳에서 연사가 되어달라는 요청도 많이 들어오는데 그를 통해서도 그는 레스토랑의 브랜딩을 하고있는 셈입니다.
또 하나 그의 레스토랑이 가진 장점이 있어요. 레스토랑 사업을 하는 모든 사업자가 겪는 문제 중 하나가 인력 수급이라고해요. 그런데 그에게는 무궁무진한 인력풀이 있죠. 30% 이상의 직원들이 감옥에서 나온 재소자들이니까요. 싱가폴은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에 많은 레스토랑 오너들은 제 3국에서 온 사람들을 고용하곤 했지만,요새는 외국 노동자 할당량을 정부가 줄이기 시작하면서 다른 레스토랑 오너들도 재소자들을 찾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는 교도소에서도 Jobfair(채용박람회)를 하는 것을 알고 있었냐며, 자기는 그런 변화가 생기는 것이 기쁘다고 말합니다.
대화를 하면서 그는 직원 중 한명을 가르키며 말했어요.
“저기 저 여자분 보여? 저 사람도 헤로인 중독자였어. 자식이 두명이 있었는데, 경찰에 잡히기 전에 말레이시아로 도망가서 2년을 있었어. 아들과 전화를 하는데 큰 아들이 ‘엄마, 언제 집에 돌아와요? 동생이 엄마가 보고 싶대요. 동생에게는 엄마가 필요해요.’라고 했대. 그리고 얼마 후 그 동생이 교통사고로 그만 세상을 떠난 거야. 그래서 저 여자분은 깊은 슬픔에 빠져서 싱가폴로 돌아와서 경찰서로 가서 자수했어. 그리고 형량을 살고 지금 여기서 일하고 있어.”
베니는 직원들의 사연을 다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감옥을 갔다온 사람들 중에 사연이 기구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까요? 베니는 이어서 말했어요.
“재소자들은 다른 사람의 말은 잘 듣지 않아. 그렇지만, 같은 재소자의 말은 듣지. 이 사람들은 내 말을 들어. 왜냐면 난 이 사람들을 이해하거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거든.”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많은 사람들이 부딪치는 문제가, 사람에 대한 실망이라고 들은 적이 있어서, 셰프는 그런 경험이 없는지 물어봤어요.
“레스토랑은 현금 비즈니스잖아. 천 만원, 오백 만원, 사람들이 돈을 훔치고 잠적한 경우도 많았어. 그런데 웃긴건 뭔지 알아? 그렇게 돈을 훔친 사람들은 재소자들이 아니야. 범죄기록이 없던 직원들이 그런 짓을 했어. 내가 재소자들에게 신뢰를 잃었다면 지금까지 10년간 이 레스토랑들을 운영을 못했을거야. 직원들 중에 마약을 끊지 못하고,다시 감옥으로 돌아간 사람들도 있었어. 그렇지만 난 신이 아니야. 그 누구도 다른 사람들을 바꿀 순 없어.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삶을 더 낫게 바꾸고 싶다면, 난 그 플랫폼을 제공해줄 뿐인거야. 그리고그 다음은 전적으로 저 사람들에게 달려있어.”
셰프 베니의 스토리에는 많은 메시지가 있어요. 삶을 변화 시키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는 것, 아무리 희망이 없어 보이는 삶이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기회가 올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제가 제일 좋았던 부분은 인생에서 최악의 경험, 너무 버티기 힘든 일이라도 그걸 견뎌내고 나면, 비슷한 일을 겪었던 많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이해해줄 수 있고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희망과 도움을 줄 수있다는 점입니다. 공감 능력이란 그런 거에요. 고통과 어려운 경험은 닥친 순간에는 정말 힘들지만 시간과 함께 그 순간을 이겨내면 그 경험이 우리를 더 많은 사람과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웠던 그 때를 잊지 않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게 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을 도울 능력과 의지를 갖춘 사람은 결국 잘 먹고 잘 살게 되죠. 필요로 되는 사람이니까요.
베니는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을 간절히 원했던 전범자였고, 감옥에 다녀왔던 사람들이 사회에 재적응을 하기에 사회적 시스템이 너무 안 갖춰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변화의 옹호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현재 마주한 어려움, 곤경이 부조리하다고 이번 나의 삶은 망했다고 생각하고 다음 생을 기약할 것이냐 아니면 내가 changemaker(변화를 만드는 사람)가 될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떨치고 일어설 것이냐는 자신의 선택일거에요. 속상한 뉴스가 끊이지 않는 때일수록, 자기가 겪었던 그 어려움과 바로 그 문제를 풀겠다고, 변화를 만들겠다고 용기를 내는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