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기는 쉬우나 대답하기는 어려운 질문들
그것은 꽤나 당황스럽고 민망한 일이었다.
나름 커리어 가이드 비스무리한 글로 유명세를 탔고 책까지 출간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행복하냐고 물었을 때 '나는 매일이 겁나게 행복하오!'라고 말할 수 없다니... 그러면 내 이야기를 믿고 따라온 사람들에게 뭔 민폐란 말인가?
나름 윤택한 삶이다.
비록 스티브 잡스가 된 것은 아니지만, 이루기 어려운 어릴적 꿈 같았던 직업을 갖었다.
사장님의 격려를 받으며 초고속 승진패스를 타지는 않았지만, 보스들은 나 나름의 강점으로 밥값은 하고 있다고 생각해주는 듯하다.
세기의 로맨스는 아니지만 훌륭한 인격과 '객관적으로' 잘생기고 키도 큰 약혼자도 있다.
항상 놀자는 요청을 받는 인기쟁이는 아니지만, 가끔 만났을 때 다섯시간이고 여섯시간이고 수다를 떨어도 즐거운 훌륭하고 좋은 사람들을 친구로 두었다.
비록 나이가 드는 것이 잔병치레와 탄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살로 느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와 가족들은 모두 건강한 편에 속했다.
페이퍼 상으로는 모자란 것 없이 좋은 삶이지만, 여전히 누군가 "How are you? Are you happy?"라고 물으면 숨이 턱막혀오며 간단명료하게 YES/NO로 대답할 수 없는 것은 여전했다. 그나마도 내가 솔직하기 때문에 불만은 없지만 엄청 신나지도 않다고 구구절절히 설명하는것이지, 대답하기조차 귀찮을때면 "I am fine"이라고 해버리고 만다.
잠깐. 설마 이게 A: "How are you?" B: "I am fine"의 유래인가?! 사람들은 정말로 괜찮아서 I am fine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 복잡미묘한 감정 - '내가 행복한가? 아 객관적으로 별 문제는 없는데, 이게 최선인가?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지는 않나? 그런데 이사람은 친하지도 않은데 이런걸 구구절절히 말해야하나?'- 를 고민하다가 그저 함축적으로 "난 괜찮아"라고 해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루에도 몇번씩 듣는 질문이지만, 내가 어떠한지, 내가 행복한지는 그토록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적어도 나는, "여러분, 한국에서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가십쇼!!"라고 했고 "앨리스님~ 저도 자극을 받아 힘내볼께요!!웅원합니다!!"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잔뜩 받고난 후의 나는 "여러분, 헬조선을 벗어나니, 직업을 바꾸니, 매일 발전하니, 행복합니다!"라는 소식을 전해야 마땅했다. 그래서 앨리스의 다음 모험은 매일매일 좀 더 스펙타큘러해야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했다.
나: Life!
필립(aka 감자): How~?
맨일 자기전에 감자와 나란히 누워 눈을 마주보고 얘기를 한다. 지난 3년간 내가 어찌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삶을 어떻게 살면 좋으냐"라고 질문했는지, 내가 Life라는 단어만 꺼내도, 감자는 자연스럽게 "HOW???"라고 맞장구를 쳐준다. 그러나 이 질문은 지난 3년간 대답이 주어지지 않았다. 나름 하고싶은대로 하고 사는데도 행복하냐는 질문에 대한 깔끔한 답은 어렵기만하고, 그 책망은 삶, 그리고 그 중에서도 삶의 구성요소인 시간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회사로 가고만다. 회사 말고 뭔가 없나. 나는 여전히 무엇인가 아쉬웠다. 나는 나의 삶이 좀 더 특별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 답을 찾던 중, 두번째 회사를 그만두기 전 좋은 친구이자 스승과 했던 대화를 적어놓은 것을 보게 되었다.
그곳은 정말 좋은 회사였지만, 입사 후 1년이 지난 후 난 회사가 너무 지루했고, 동료들도 재미없었다. 괜히 배우는 것도 없는 것 같고, 너무 자주 있는 파티도 싫증이 날 무렵이었다. 이미 마음이 붕 뜬 상태에서 나는 그에게 물었다.
앨리스: (한참 현 회사에 대한 불만을 늘어 놓은 후) 들어봐. 너의 생각에는 소비재 산업에서 브랜드 매니저가 더 나을것 같아 아니면 IT산업에서 세일즈를 하는게 더 나을 것 같아?
친구: 넌 왜 그렇게 현재 회사를 안 좋아해? 동료중에 누가 널 괴롭히거나 뒤에서 안좋은 얘기하는 사람이라도 있어?
앨리스: 아니 그건 아닌데, 내 역량이 어쩌구, 내가 벌써 잘하는것만 하는거 어쩌구 저쩌구
친구: 내가 보기엔 말야. 넌 니가 정말 그렇게 대단하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걸 먼저 인지해야할 것 같아 (I think you need to acknowledge that you don't really matter). 이건 확실히 해두자. 넌 그렇게 대단하고 특별한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너를 특별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넌 너의 삶을 잘 살 수 있어. 그리고 사람들은 절대 너가 원하는대로 널 그렇게 대단하고 특별하게 생각해주지도 않을것이고 말야 (You can start living a life without everyone constantly acknowledging how amazing you are because they are never gonna do that).
문제는 회사가 아니야. 너의 현재 회사는 그렇게 나쁘지 않아. 문제는 너 자신의 "나는 항상 특별해야해, 나는 항상 잘해야해"라는 부담감이 문제인거야.
너가 현재 회사에서 사람들이 즐거운 '척'을 하는 파티가 많은게 싫다고 했던가? 그건 너의 마음이 "난 사교적이어야 해!"라는 부담을 갖고 있기 때문이야. 사교적이고 인기가 많은건 특별한 거니까. 근데 넌 그러고 싶지 않은거잖아? "난 사교적이어야해"라는 마음이 없으면, 넌 그 파티를 그렇게 싫어하지도 않을것이고, 자유로워질거야. 그러면 넌 그 파티를 자유롭게 즐기거나 아니면 자유롭게 집으로 가겠지. 그 어느쪽이 되었든 '난 이 회사의 파티가 너무 싫어!!'라는 니가 가진 마음을 갖게 하진 않을거야. 넌 "사교적으로 활발하게 웃고 떠들지 못하다니, 난 루저야..."라는 마음을 피하기 위해 억지로 거기 남아있었고, 이도 저도 아니게 되었으니 엄한 파티를 원망하고 회사가 싫다고 하는 수 밖에. '난 사교적이어야해'같은 사회적 압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마. 그러면 자유로워질 수 있어.
특별해야해, 잘해야해, 사교적이어야해, 능력있어야 해, 맡기면 다 잘해내야해.
이런 생각들은 너무나 흔하게 사회에 널려있는 압박이야. 그것에 동의할 필요 없어.
그저 자유롭게 살아, 앨리스.
나는 특별해야하고, 나의 삶은 특별해야한다는 생각은 모든 불만족의 근원이다. 그걸 아는데, 자꾸 까먹고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 특별한 삶을 살기위해 아둥바둥거린다. 우리 모두 그렇겠지. 그또한 특별하지 않은 것.
앞으로의 나는 "How are you?", "Are you happy?"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의 기대치와 현실에 괴리에서 오는 복잡한 마음대신, "Pretty good!", "I feel shit now" 같은 단순한 대답을 하게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