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익숙해서 감흥이 없을만도 하지만, 저는 아직도 해외 출장가는 것을 너무나 좋아해요. 대부분의 거대 글로벌 회사들이 그러하듯, 출장은 5성급 호텔에 투숙하면서 필시 그 도시에서 가장 맛있는 레스토랑에서 회식을 하니까요. 이번에 중국 광저우로 다녀온 출장도 뿌듯했죠.
리츠칼튼 호텔 투숙에, 광저우에서 제일 맛있는 베이징덕, 제일 유명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가장 핫한 광동요리 레스토랑들을 섭렵했어요. 그래서 아마 사람들이 출장가면 올리는 사진들은 대부분 호텔에 막 들어왔을 때의 룸, 환하게 웃고 있는 팀원들 막 이런거 일거에요. 저도 평소엔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번 출장에서는 처음으로 바쁘게 호텔을 체크아웃하러 나가기 전의 방이 눈에 들어왔어요.
나름 '흠...진짜?' 라는 생각이 들게하는 순간이었는데, 전 이 넓은 침대를 전 반도 안썼더라고요. 그 전날 팀이랑 저녁을 먹고 얘기를 하다가 저녁 10시에 들어와서, 동료랑 새벽 2시 30분까지 슬라이드를 만들다가 잤거든요. 침대 가운데에 누울 생각도 안하고 베게가 두겹이니까 한개를 채 멀리 보내지도 못한채 저기서 웅크리고 자다 일어났던거에요. 폭신하고 부드럽지만 정신없는 스케쥴에 웅크려자다가 바삐 일어나서 나가야했던거죠. 생각해보면 그 많은 출장을 다니면서 호텔 시설을 이용했던건 손에 꼽아요. 그래서 좋은 호텔에서 묵어도 출장에서 호텔은 정말 잠만 자는 장소가 되었죠. 그래도 가면 좋은 밥 사주고 좋은 호텔 재워준다고 아직도 출장은 신나서 가요.
그래서 제가 누웠던 침대를 보며 예전에 했던 생각이 떠올랐어요.
몇 달 전, 어린왕자를 다시 읽는데 그게 그렇게 눈물이 나는거에요! 너무 아름다운 얘기고, 정말이지 몇십년도 전에 이런 인사이트를 어떻게 캡쳐해냈을까 싶고... 그렇게 아름다운 어린왕자 책을 읽으면서 별도, 사막도, 사막에 부는 바람도 다시 보고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어요. 이집트 사막에 누워서 침낭안에 옷을 꽁꽁 싸매고 누워서 봤던 그 쏟아지는 별을 다시 보고 싶어졌어요.
'그때봤던 오아시스와 사막을 다시보러가자! 휴가를 쓰든, 아니면 퇴사를 하든! 어떻게 가지? 흠... 그렇게 장거리를 갈려면 쉬었다가 라운지에서도 있다가면 좋겠지. 난 이제 스타 얼라이언스 골드니까, 스타 얼라이언스 동맹안에서 선택하면 적립을 또하면 되겠다. 장거리니까 마일리지가 많이 나오겠네...흠... 아예 아시아나를 타려면 한국을 경유해서 가야하나?'
라고 생각하고 있는 저를 발견한거죠.
처음으로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를 했을때의 기쁨은 잊을 수가 없어요.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으로서 늘 느끼지만, 정말 비행기만큼 계층간의 격차를 느끼게 하는 곳이 없잖아요? 하다못해 백화점에서도 너도 나도 똑같이 줄서서 사는데, 여기는 한 공간에서 대놓고 서비스를 다르게 하니까요. 그래서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는 것은 저에게는 일종의 성공이 기준이었어요. 언젠가 부자가 되면 탈 수 있겠지. 병신이 아니고서야 같은 곳을 가는데 돈을 두배나 더내는 것은 돈이 썩어나야 가능한거니까. 아주 먼 훗날에는 가능하게하자고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영광의 순간이 온거죠. 선택과 집중으로 아시아나에 마일리지 몰빵을 한 후에, 여행이 잦았던 만큼 많은 마일리지를 모았고, 처음으로 마일리지를 써서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를 했어요. 한번 그렇게 타게 되니까 후에 출장도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기도 했구요. 아, 이 얼마나 성공한 삶인가! 거기에 이제 다이아몬드 등급으로 승급까지 되면 뭔가, 이제 비즈니스석으로 안가도 라운지를 갈 수 있대요. 이제 부모님들도 비즈니스 태워드릴 만큼의 마일리지도 축적했으니 이쯤되면 너무나 성공한 인생이죠.
그런데, 이제 그 별과 사막을 보러갈 때 뭘타고 갈지 고민을 하다가 아시아나를 타고 한국에 갔다가 이집트나 아프리카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한거 에요. 어린왕자가 제 머리를 들여다 봤다면 고개를 절레절레했을것 같아요. 그러다 예전에 친구가 해줬던 디즈니랜드 얘기가 생각나서 피식 웃었어요. 수단과 목적을 헷갈리지 말라고 말하면서, 디즈니랜드를 즐겨야지 왜 디즈니랜드를 가는 자동차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하냐고 저에게 말했고, 저는 '맞다맞다, 내가 디즈니랜드에 집중할게 이제부터!' 했거든요. 별과 사막이 보고싶다면서, 별과 사막을 보러갈때 어떤 비행기를 이용할지를 더 많이 고민하는 저는 어린왕자가 여우를 길들였던것처럼, 보이지 않는 손에 길들여진 젖소일뿐인거죠. 저는 큰 기업의 일원으로 살아가지 않겠다고 계속 결심을 하고 있었는데, 그 윤택함에 길들여진거에요. 어린왕자가 경고했던 것처럼, 길들인다는게 이렇게 무서운거에요. 여우가 어린왕자를 네시에 만나기로 했으면 세시서부터 가슴이 뛰는것처럼, 퇴사를 15일에 하자라고 하면, '2주도 채안있으면 월급날인데?'라는 생각이 든다거나, 별을 보러가는데 '기분좋게 가려면 스타 얼라이언스?! 장거리 마일리지 적립은 놓칠수 없지!' 이런 생각이 든다면 완전 길들여진거죠. 정신 빠짝 차려야지. 어후 무서운 자본주의.
어떤 비행기를 어떻게 타고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별도, 달도, 사막도 볼 수 있다면요. 좋은 비행기를 타고 priority딱지를 떼고 나오는 가방을 기분좋게 가져가기 위해 노력하는라, 삶에서 별과 사막을 못보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