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에서 손님이 왔다. 진짜 이상한 애가 왔다. 이쯤되면 나는 세상에는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것인지, 아니면 내 주변에 이상한 사람들 밀도가 높은 것인지 궁금하다. 카일은 내가 지난 10월 샌프란에 갔을 때 무도회장에서 만났다. 난 무도회장에서 '빛이 나는 쏠로'인데, 내 춤사위가 방해받는 것을 되게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호간에 피해를 안주기 위해 난 늘 인구밀도가 낮은 곳으로 가서 혼자 혹은 친구들과 논다. 특히 어정쩡하게 남자애들이 와서 같이 추려고 하면 짜증이 난다. 어쩌자고 내 날개짓을 방해하는 거지? 땐쓰의 땐도 모르는 것들이 어설픈 구애의 춤도 추지 못해서 급급하게 허리만 잡으려는 그들의 초조함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일이는 달랐다. 얘는 뭐랄까, 우아한 공작같았다. 점잖게 다가와서 춤사위를 펼치는데 흡사 포켓몬 춤배틀 같은 느낌? 같이 있던 친구들은 창피해서 일찌감치 물러섰고, 우리는 도저히 클럽에는 어울리지 않는 라라댄스같은 춤을 췄다. 난 걔한테 딱 두개 질문을 했는데, 하나는 '너 게이니?'였고 다른 하나는 '너 직업이 뮤지컬 배우니? 아님 뭐 춤추는거니?'였다. 모든 동작이 딱딱 들어맞는 느낌에 둘다 되게 신기해 했었다. 나는 술을 잔뜩먹어서 자아를 놓고 춤출수 있다고 치지만, 걘 술도 단 한방울도 안마신채 춤에 몸을 맡겼다. 얜 자기는 춤에 대한 엄청난 열정이 있다고 연거푸 말했다. 댄스 이즈 마이 패션. 난 걔가 진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클럽이 문 닫을때까지 우린 신나게 춤을 췄고, 연락처를 주고 받고 헤어졌었다. 그리고 싱가폴로 돌아오기 전날 밤, 우리는 다시한번 만났다. 다시한번 나와 춤을 추겠다는 일념으로 걔는 콘서트를 갔다가 버클리에서 산호세까지 한시간 반을 걸려 운전을 해서 왔고, 술을 안마시는 걔와 달리 난 맨정신으로 춤배틀을 할 수 없어서 데킬라 샷을 세잔을 연거푸로 마셔야 했다. 그런데 왠걸, 산호세의 클럽들은 문을 일찍 닫는 편이고, 춤신을 실망시킬 수 없었던 나는 "근처 공원으로 가자"해서, 정말 근처 공원에 주차를 해놓고 우리는 아이폰으로 Dancing in the moonlight를 틀어놓고 새벽 세시까지 존나 공민지처럼 춤을 췄다.
나의 소울 브라더여, 우리가 언젠가 인연이 닿는다면 또 만나겠지. 했는데, 걔가 진짜 싱가폴로 온것이다. 현재 다니는 회사와 합의를 보고 당분간 디지털 노마드로 일할거라고 한다. 내가 카일이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그가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에서 백엔드 소프트웨어/시스템 엔지니어라는 것과 얘는 춤에 대한 크나큰 열정이 있다는 것 두개 뿐이었다. 우리는 만나서 춤만췄지 얘기도 제대로 해본적도 없었다. 그래서 어제 그와 차와 모찌를 마시면서 앉아서 한참을 얘기한 것이 그와의 첫 진지한 대화였다.
얘기를 해보니 얘는 진짜 이상한 애였다.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교때까지 공부만 하는 너드였다.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물리였고, 그래서 브라운 대학에 물리학과에 진학하고 엔지니어링을 복수전공한다. 그리고 마스터는 같은 대학에 컴퓨터 사이언스로 받았는데, 그는 양자 컴퓨터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양자 컴퓨터를 만드는 이론으로 학위를 받았고, 그리고 존나 행복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네 학교 캠퍼스에는 이상한 애들이 많은데, 그 중 어떤애들이 Slack-lining이라는 신종 스포츠를 하는 것을 본것이다. 이게 우리나라 옛날 줄타기 같은건데, 그것보다 훨씬 탄력이 좋은 줄을 사용하기 때문에 트렘플린처럼 그 위에서 앞 뒤로 돌고 막 묘기를 부리는 스포츠라고 한다. 걔는 그게 재밌어보여서 한번 해보고 바로 그 스포츠와 사랑에 빠진다. 그 이후로 얘는 매일 세시간씩 줄을 타기 시작하는데, 자기는 그 줄타며 노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그 세시간이 한 20분같이 느껴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급기야 그는 슬랙라인 대회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미국 전역 투어를 돈다 (전생에 공길이었나...)
이런 느낌인데 이것보다 훨씬 더 익스트림 스포츠
그러다가 그는 풀고싶은 문제를 발견한다. 이 신생 스포츠의 가장 큰 이해관계자는 로프 및 각종 관련 장비들을 거의 독점적으로 파는 회사이다. 그 회사는 이 스포츠를 키우고 싶어서 이런 각종 대회에 스폰서를 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대회에 채점하는 방식을 고안해 냈다. 그런데 그 채점 방식이 카일이의 눈으로 보기에 너무 허접했던 것이다. 선수가 기술을 펼치면, 내가 이 기술에 어떤 점수를 받았는지, 왜 그런지에 대한 것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경기를 주관하고, 채점을 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기로 결심한다. 얘는 아예 그걸로 논문을 발표를 했는데, 얘가 가져온 혁신적인 방식은 (적어도 내가 듣기에), 물리를 데리고 온거다. 각종 체육종목을 채점할 때, 각 동작별로 점수를 다르게 준다고 한다. 예를 들면 한번 스핀하면 1점, 두번 스핀하면 2점 이런식으로. 근데 얘는 그 1점과 2점이 작위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동작을 할 때 들어가는 힘이 얼마나 큰지를 계산하여, 각 동작에 점수를 매길 때 물리적 계산을 통해 얼마나 이 동작이 물리적으로 힘든지를 점수로 매겼다. 그런 다음에 그런 모든 것을 고려하여 심사위원들이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걸 그 장비파는 회사에 들고갔다. 장비 파는 회사는 얘가 만든 이 시스템을 사고 싶어 했는데, 그 회사가 되게 자기 이윤만 챙기고 이 산업을 키우지 않는 방법으로 (독점으로 이 시스템을 쓰겠다거나 했던것 같다) 제안을 해서 얘가 거절해서 협상이 결렬되고, 얘는 아예 NGO를 세웠다. 그리고 이 채점 방식을 다른 나라에서 경기를 할때 쓰게 해주는 대가로 로열티를 받고 있다. 얘가 만든 채점 방법은 그 미국 장비회사가 쓰는 채점방법과 경쟁하고 있는데, 현재 포르투갈, 스페인, 일본 등의 다양한 나라에서 얘가 만든 채점방식을 쓰고 있다고 한다. (덕 중 덕은 양덕)
이건 얘한테 약 4 - 5년이 걸린 사이드 프로젝트였다. NGO로 한 일이라 돈을 벌고자 한건 아니었어서 본업을 유지하면서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그가 대회에 나가고, 문제를 풀기위해 이 일에 몰입할수록 그는 줄타기에 대한 열정을 잃기 시작했다. 그때 그가 찾은 새로운 열정의 장이 바로 춤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줄타기보다 춤에서 더 큰 즐거움을 발견하는데, 춤은 단순한 움직임만이 아니고 음악과 커넥션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줄타기를 통해 교훈을 하나 얻었다.
"The things you do for joy should be separated from the things you do for living. The thing that you to survive, some day you gonna hate the thing. I would not let anything to touch my joy."
(내가 즐거움 때문에 하는 일은, 내가 먹고 살기위해 하는 일과 구분되어야해. 언젠가는 내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을 싫어하게 될거거든. 그래서 난 그 어떤것도 내 즐거움을 망치게 하지 않을거야)
먹고 사는 것의 고단함은 패션과 즐거움마저 빼앗아버리게 할만큼 강력한가보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두번째로 찾아온 즐거움과 열정인 춤을 되게 소중히 대한다. 그렇게 춤을 좋아하지만, 춤을 배우려 하지는 않을 거라고 한다. 근데 또 왜 춤을 안배우는지에 대한 마음이 존나 내 생각과 일치한다.
"Dance brings me such a joy. If i learn how to dance, i will need to learn some steps, and movement and that will destroy my joy. Also the reason that I don't want to take dance class is this. You made your own personalized movement. That is very intimate expression of who I am. If someone teaches you, you are learning about them and their move. That is not yours. I am moving and expressing myself. The reason I love it so much is because I am truest of myself when I dance."
(춤은 나에게 정말 큰 기쁨을 줘. 그런데 내가 춤을 배워야한다면, 난 스텝과 특정 동작을 외워야할텐데 그건 내 기쁨을 망칠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춤을 배우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이거야. 내가 춤을 출 때 하는 모든 동작들은 다 내 안에서 나온것들이야. 그건 내가 누군지를 표현하는 나만의 고유한 그 어떤것이지. 그런데 만약에 누군가 나에게 춤을 가르친다면 그건 내것이 아닌 그사람들의 표현이고 동작이야. 내가 춤을 출 때 나는 나를 표현해. 그리고 내가 그걸 너무나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춤출 때 나는 가장 진실한 내가 되기 때문이야.)
카일이에게 "you are so weird"라고 했다. 그리고 걔는 내가 그렇게 말하는게 칭찬하는 건 줄 안다. 그러니까 이렇게 대답했다.
"Normal is boring. Weird is the only way to live a full lif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