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과 테크의 중간의 크립토로 온지 8개월인데, 요새 정말 잘한 선택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더라구요. 돈을 벌고 싶었고, 그래서 금융으로 오니, 확실히 돈에 대해 예전과는 다른 관점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얼마전에 런던에 한달 동안 다녀왔는데, 여기서 참석했던 두가지 이벤트에서 올드머니와 뉴머니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1. 올드머니
인도의 카스트가 눈에 보이는 계급사회라면, 유럽은 문화와 관습으로 가장해서 더 교묘하게 자리잡아 더 뿌리가 깊은 계급사회에요. 그리고 이걸 한껏 느끼게 했던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어느 평일 점심, 특별한 사람의 호의로 프라이빗 멤버십 클럽 점심식사에 참석했습니다.
이런 데가 처음이라 잘 몰라서, 병아리 같이 노란색 스웨터를 입고 도착한 고급 호텔의 홀에는 저빼고 검은 양복들만 가득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이미 약간 쫄렸어요.
이 점심은 초대받은 사람들만 가입할 수 있는 프라이빗 멤버십 클럽의 모임으로, 멤버들은 은행의 CEO, 헤지펀드 오너, 패밀리 오피스 CIO (chief investment officer), 아니면 패밀리 오피스의 패밀리들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이 자리에는 40명의 사람이 있었고, 그 중 여자 3명, 유색 인종은 4명이었고, 아시아인은 저 하나였어요. (제가 이 모임에 다양성을 더했습니다…)
*패밀리 오피스 (family office): 부의 세습이 이제 간신히 3대째로 이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몇 백년간 세습을 통해 부를 축척해 놓은 가문이 많은 유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가문의 부를 위해 일하는 투자업이에요. 한국에서도 부자가 3대를 못간다고 하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가문의 부와 문화를 오랜 세대를 거쳐 지키기 위해 이 가문의 자산과 교육까지 관리해주는 투자 기관의 형태가 발명된거죠. 물론 자기네 집안의 돈을 굴려서 키우는 거니까, 자산이 오지게 많은 패밀리들만 이렇게 따로 오피스를 차려서 운영을 하겠죠?
도착한 사람들끼리 서로 캐쥬얼하게 네트워킹을 하다가, 자리에 앉으면 식사가 나오고, 오늘의 연사인 니얼 퍼거슨 (Niall Ferguson)이 앞으로 나가섰습니다.
이벤트 주최자가 “니얼 퍼거슨, 이분은 모두 아시는 분이실텐데요” 라고 했습니다. (네, 저만 몰랐던 것 같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금융경제 역사학 교수로, 많은 저서를 썼고, 무엇보다 미국 정부, 일론 머스크, 에릭 슈미츠 등 정치와 경제계의 많은 유명인들을 클라이언트로 두고, 금융 경제의 현재를 역사적인 차원에서 조언을 주고 있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두시간을 쭈욱 슬라이드도, 노트도 없이 현재 국제적 이슈와 금융의 상황을 쭉 풀어내시는데, 와, 정말 대단하게 말을 잘하시더라구요. 논점을 잃지않고, 정보도 전달하면서, 유머까지…이런 얘기들을 했었어요.
*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cold war2부터, 중국이 앞으로 어떤 액션을 취하게 될것으로 보이고, 그게 불러올 파장
* 미래의 군사경쟁의 핵심인 AI, 그리고 미국과 중국이 어떤 부분에서 갈리고 있는지,
*미국의 현 이민 정책의 문제
* 기후변화 이슈에서 일반적인 관점과 다른 관점을 말했어요
(house rules... 여기서 논의된 인사이트나 내용은 외부에 말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 룰이라서 말하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그가 말하는 기후변화 토픽은 유난히 저한테 흥미로웠어요.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테크가 이렇게 발달한 시대에, 왜 이런 고리타분한 오프라인 미팅이 의미가 있는지 상기시켜줬거든요. 온라인 덕분에 우리는 많은 정보에 접근을 할 수는 있잖아요? 사실 니얼 교수님 책도 많고, 인터뷰도 많은데, 이런 프라이빗 이벤트들이 중요한 건, 진실은 절대 대중적으로 말해지지 않기 때문이에요. 소수의 그룹이 모여있을 때, 구전으로만 잔인한 진실은 전해지더라구요. 그런 정보만이 가치가 있구요.
이후에 이어지는 질문들의 수준도 압도적으로 높아서,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지적으로 황홀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이벤트는 유럽 정통의 올드머니 경험을 하게 해주었어요.
애초에 올드머니가 접근할 수 있는 지식, 정보, 사회적 자본의 세계가 달라요. 그냥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과는 다른 레벨이더라구요. 그리고 이런 것들은 엔간한 사람들의 눈에 띄지도 않아요.
우리나라에서는 금수저라는 단어를 쓰는데, 영어권 국가는 ‘trust fund baby’라고 한대요.
태어날 때, 나를 위한 신탁 기금이 만들어져있고, 그 신탁 기금은 그냥 돈이 들어있어서 내 맘대로 빼서 쓰는게 아니고, 룰이 있어요. 예를 들면, ‘내 딸이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해서 돈을 벌때마다, 그것에 2배로 매달 빼서 쓸 수 있다. 만약 인류를 위해 좋은 일을 하면 3배’ 같은 식의 룰을 만들어 놓고, 많은 돈이 갑자기 주어져 흥청망청 쓰는 것을 방지하는 거죠.
올드머니의 부를 지키려는 노력은 굉장히 스마트하고, 조심스럽고 또 배타적이어서, 이 세계를 동경하지만, 평범한 중산층인 제가 갈 수 있는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주일 후에 갔던 다음 이벤트에서 저는 뉴머니가 부를 쌓는 방법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쪽이 저와 더 맞는것 같다고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