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수요일에 엄청 뿌듯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동료를 도와서 링크드인으로 취업하는 방법을 아주 잠깐 강연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제 발표를 들은 SIT라는 싱가폴 전문대학교의 커리어 센터 매니저가 저에게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해줄 수 없겠냐고 부탁했던 것입니다.
제 브런치를 구독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 영어가 굉장히 후졌었기 때문에 이건 저에게 무지막지한 의미가 있는 일이었어요. 제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 면접을 보면, 죄다 영어 인터뷰 단계에서 떨어졌고, 대학교에서 행여나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에서 PT라도 하려치면 대본을 써서 읽어야만 했었거든요. 더 슬펐던 건, 제가 PT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었어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발표하는게 좋은데, 전달 수단인 영어가 마음을 따라오지 못하는 그 슬픔...
그 사이 회사에서는 여러번 발표를 했지만, 외부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회사에 *저를 콕찝어* 강사로 초청해서 영어로 PT를 하고, 좋은 청중 평가를 받았던 사건은 '우리는 모두 할 수 있다'는 인간승리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건 주제가 아니에요.
발표가 끝나고 몇몇 학생들이 질문을 하러 저에게 왔습니다. 이 학생들은 주로 mechanical engineering을 전공하는 학생들이었는데, 다소 general한 엔지니어링을 배우기 때문에 다양한 인더스트리로 갈 수 있지만, 요새 Oil and Gas 산업이 좋지 않아 걱정이라고 하더군요. 다들 그쪽을 생각하고 여기에 입학했는데 말이죠.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Shell에 들어갈 수 있죠?"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커리어에 대해 조언을 하는 것을 정~말 조심스럽게 생각해서 말을 아끼는 편이지만, 지난 주에 봤던 기사가 떠올라서 뭔가 말을 해주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기사 제목이 자그마치...
[거제르포] ⑭ 거제 청년들의 하얀색 꿈..."용접이 예쁘게 나오면 기분이 얼마나 좋은데요"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1/26/2015112600015.html>
기사 내용을 요약하자면, 거제에서 조선소에 취업하기 위해 용접을 배우는 학생들이 조선소에 닥친 불황으로 취업이 안되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중 제 기억에 남았던 것이 한 학생이 말했던 내용이었어요.
“이대로 대우조선이 망하면 거제 뿐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가 타격을 입는 것 아닐까요? 회사가 파산 할 지도 모르죠. 하지만 누구도 문제가 있다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배신감이 들어요. 누군가 미리 말했다면, 그래서 모두가 알았다면, 어떻게든 노력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저는 이 학생들에게는 너희들이 blindly believe하고 있는 '오일 & 가스 회사를 가면 돈을 많이 주더라, 취업이 보장되더라'는 생각으로 직업을 선택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해주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먼저 한국 조선소들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걸까요? 불과 2년전 까지만해도 한국의 조선 회사들은 엄청 잘 나갔는데 말이죠.
이런 얘기 좋아하세요? 뭐 일단 할게요.
가발, 섬유산업으로 대표되는 경공업 스테이지를 지나, 한국은 건설, 조선으로 대표되는 중공업 산업에서 세계 대표주자로 자리잡게 됩니다. 특히 조선은 전 세계 1, 2, 3위 조선회사가 다 한국회사에요. 현대, 삼성, 대우가 그것이죠. 그 전에는 어디였냐면, 일본이었어요. 중공업 산업의 매력적인 점이 뭐냐면, 고용규모가 엄청 크다는 것입니다. 배는 찍어내는 물건이 아니라, 선주의 요구에 따라 customizing이 필요한 제품이라는 특성이 있어요. 그래서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고 업무 강도가 쎄서 싸게 사람을 싸서 쓸 수 있는 직군의 일이 아니구요. 일본은 늘어나는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조선업의 역사에서 뒷편으로 밀리게 됩니다. 그렇지만 일본에 힘있는 shipping회사들이 많기 때문에, 자국의 shipping회사들을 대상으로 표준화시킨 배를 팔면서 간신히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는 정도입니다.
반면 한국조선사들은 그간 전 세계 1, 2, 3위로 많은 기록들을 쌓았습니다. 중국이라는 경쟁자를 맞아 경쟁력을 고민하고 있었지요. 그러던 찰나에 나타난 신사업영역이 Offshore(해양플랜트) 비즈니스입니다.
Offshore 비즈니스가 뭐냐면요, 쉽게 말하면 지금까지 땅에서만 석유와 천연가스를 파냈다면, 그걸 바다에서도 파자는거에요. 우리는 계속 천연자원 고갈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려 왔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한 것이, '지구 표면의 71%가 바다이고 나머지 29%가 육지인데, 지금까지 자원을 모두 육지에서만 탐사했다면, 왜 71%의 바다에 있을 수 있는 자원은 탐사하지 않는가?'였습니다. 그래서 석유회사들이 미지의 영역인 바다를 탐사하기 시작한거에요. 석유회사들의 육지 파트너는 건설사였다면, 바다의 파트너는 조선소가 된거죠. 그리고 조선 전 세계 1,2,3위인 한국 조선사들은 엄청 많은 Offshore 프로젝트들을 수주하게 됩니다.
Offshore를 우리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불렀어요. 일반 상선이 한척에 몇십억원 한다치면, Offshore는 몇조원까지 가거든요. 조선만 계속 했다면 중국에게 따라잡히겠지만, 배 위에 석유플랜트를 짓는것과 같은 Offshore산업은 안전성, 기술력면에서 훨씬 깐깐한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에 중국이 쉽게 넘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도 했구요. BP가 멕시코에서 석유터졌을때 회사가 거의 망할뻔했으니 전문성, 안전성에 대한 '신뢰'가 엄청나게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소들 입장에서는 해양플랜트에 사활을 거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독보적인 역량도 가지고 있었구요.
그리고 한국회사들이 가야할 방향은 명확해 보였습니다. 한국 건설사나 조선사나 시공 즉, 만드는 것에는 강점이 있지만 디자인, 상상력이 필요한 초기 엔지니어링은 흔히 선진사로 불리우는 유럽, 미국 회사들에 의존하고 있었거든요. '우리가 디자인도 해야한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걸 어떻게 해야하는지가 풀어야할 숙제였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가야할 방향은 명확했고, 우리는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되었어요.
그런데 이게 가능할까? 생각해보면, 이건 지극히 제 의견입니다만, 될지 안될지 판단하는건 저따위가 할일도 아니고 의견도 중요하지 않지만, 저라면 안할것 같아요.
왜냐면, 결국 최초에 배를 만든 유럽회사들이 있었고, 그 배 만드는 것은 표준화를 시켜 산업을 만들어낸거잖아요. 그니까 걔네들이 판을 짠거에요. 그리고 걔들끼리 경쟁력을 더 높이기 위해 머리싸매고 고민하여,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는 핵심산업이 아닌 것들은 다른 회사, 다른 나라에 주기로 한거고 그걸 한국에서 하고 있는건데, 한국이 "야, 우리가 배를 계속 만들다보니까 그릴 수도 있을것 같애." 라고 한다고 해서 그 영역을 가질 수 있을것 같지 않아요. 남이 짜놓은 판에서 이기기가 보통 어려운게 아니기 때문에, 저는 질것 같은 싸움에 사활을 걸고 열심히 하기는 싫거든요. 우리가 자원이 나는 나라라서 자국 프로젝트를 할 수 있으면 또 모를까, 그건 아니니까요.
그나마도 저건 2년전 얘기입니다.
지금은 땅에서 나는 오일, 가스 가격들이 너무 떨어져서, 굳이 바다까지 가서 찾지 않아도 되는 시점이 왔거든요. 바다에서 오일을 파려면, 땅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비싸요. 그럼에도 땅에서 자원이 떨어질까봐 다들 바다로 갔던건데, 땅에서 자원이 계속 발견되고 있는 시점인거에요. 셰일가스가 생산되기 시작했구요, 이집트에서도 엄청난 규모의 유전이 발견되었어요. 아부다비에서도 엄청난 규모의 유전이 또 발견되었고, 이제 이란이 미국의 경제제제에서 풀리게되면 천연가스 전세계 3위 매장량을 갖고 있는 이란산 석유와 가스가 거래되기 시작할거에요. 당분간은 땅에서 나는것도 차고 넘칠것 같아서 굳이 바다까지 가서 찾지 않아도 되는거죠. 그래서 배를 주문했던 선주들이 어깃장을 놓기 시작했어요. 괜히 트집을 잡으면서 "너네 약속대로 배를 안만든것 같다?" 하며 만들어 놓은 배를 안찾아가고, 시비를 걸고 한다고 합니다.
회사는 알아서 살길을 고민해야겠죠. 제가 회사에 조언 해줄 역량까지는 안됩니다. 다만 그 회사들이 고용하고 있는 임직원수, 하청업체의 임직원수까지 합하면 Too big to fail이라 정부가 뭔가할 것 같은데, 그 다음을 어떻게 해야할지는 회사들의 비전에 달렸겠죠. 굳이 제 의견을 말하자면, 상선은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고, 해양플랜트 관련해서는 한단계 위로 가는 디자인 역량을 키우는데 들이는 노력을 아예 E&P 즉 유전탐사를 하고 개발을 하는 쪽에 들이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최소한 FEED 디자인을 하는 회사를 사야지요. 너무 리스크가 커보이지만, 그 정도의 리스크를 지는 결정을 하지 않으면 역사가 증명했든, 100년을 가는 회사가 될 수 없으니까요. 얼마전 노키아의 CEO가 스피치에서 말했습니다.
“We didn't do anything wrong, butsomehow, we lost”
어쩌면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기 때문에 Nokia는 서서히 역사속으로 사라질 수 밖에 없었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학생들이 진로를 선택하는 시점이라면, 생각해볼만한 포인트를 던져줄 수는 있는겁니다.
저물어 가는 산업에는 가지마라.
(그 회사가 지금 얼마나 잘나가든, 얼마나 돈을 주는지에 상관없이)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초봉이 높은 한국 대기업들이 하는 산업들이 대부분 저물어가는 사업이 아닌가해요.
왜이렇게 우리나라가 워크 라이프 밸런스를 갖고 살기 어려운가 생각해보니까, 뭐 문화도 문화지만, 우리나라 큰 회사들이 있는 산업들이 성장하는 산업이 아니라, 포화상태에서 운영효율을 늘려 수익을 남기려는 사업이 많아서 그런것 같다는 생각을 요새 했어요.
싱가폴에서 유명한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을 쌍용건설이 지었다고 많은 한국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했거든요. 그것도 공사 기간이 4년으로 책정된 프로젝트를, 2년 반만에 지었다고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자랑스러웠어요. 그런데 합리적으로 계산한 공사 기간을 거의 반이나 단축시켰단 얘기는 결국 그 공사를 했던 직원들이 사활을 걸고 했다는 뜻이겠지요. 일주일 중에 일주일 다 일했단 얘기에요. 한국에서는 거의 망한 회사지만, 이 일로 쌍용건설은 싱가폴 정부의 신뢰를 받으며 싱가폴 건설업계에 단단한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산업인거죠. 물론 자잘자잘하게 비효율적인 부분들을 개선할 여지는 충분히 있겠지만, 결국 한국의 건설산업자체가 직원들의 행복과 워크라이프를 보장해 줬을 때 잘되는 산업이 아니라는 거죠. 그 산업의 본질을 알고도 괜찮으면 각오하고 가면 됩니다. 그리고 얼마나 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길게요. 어차피 전문가도 잘 모르니까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제가 해줬던 조언은, 성장하는 산업들을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장 연봉이 가장 높아보이는 Oil and Gas산업의 mechanical engineer가 될 수도 있지만, Healthcare, Renewable energy 쪽도 mechanical engineer를 많이 필요로 하니 그 쪽에 비중을 두고 고려를 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