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한 역전, 재밌는 수다, 나에 대한 알아감 - 인터뷰
얼마 전에 후배가 카카오톡으로 쪽지를 보내왔습니다.
"언니. 제 이력이 똥이 되었어요. 망했어요."
후배는 전문직을 하려고 대학 때 고시공부를 했었어요. 그 후배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게 그 후배의 적성이 아닌줄 알았지만 그래도 본인이 하겠다고 하니 뭐 어쩔 수 있나요. 그런데 시험에 한번에 붙지 못했고, 후배는 해당 직무로 일반 회사에 입사하게 됩니다. 일은 잘했지만, 결국 적성은 아니었던 거죠. 후배는 일년을 조금 못채우고 퇴사한 후, 스타트업에서 마케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스타트업의 상황이 불안정해서 다른 일을 찾아봐야하는 상황이 온거에요. 다른 사람이 후배의 이력서를 보더니 잦은 이직을 하는, 참을성 없는 애로 보인다고 한마디 하더랍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무슨 소리야? 너는 적성이 안맞는 일도 잘 해낼 만큼 똑똑한애야. 게다가 자기 적성이 아닌 일을 빨리 깨닫고 자기 적성으로 방향을 튼 결단력있고 용감한 애지."
저는 인터뷰 보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이직 제안이 오면 일단 응하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전혀 몰랐던 회사의 비즈니스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고, 제 자신의 경험, 강점과 약점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거든요. 그리고 인터뷰를 즐기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항상 결과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항상 인터뷰를 잘했던 것은 아니에요. 한국에 있을 때는 잘 못했던 것 같아요.
아, 갑자기 생각나네요..
투자회사에서 인턴 면접을 본적이 있는데, 제가 하도 어리버리하게 굴어서 인터뷰 보시는 분이 저를 혼낸 적도 있어요. 사실 저는 금융쪽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다른 인터뷰이들에 비해 금융지식이 확 떨어지는게 보였거든요.
"앨리스씨는 무슨 생각으로 지원하신 겁니까? 본인이 여기 와서 다른 한명이 기회를 놓쳤다는 것에 대한 자각은 있는겁니까?"
멋모르던 그 때는 잔뜩 쫄아서 엄청 죄송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래요.
'아, 보세요. 님이 채용 공고를 내셨고, 내가 지원을 했고, 내 이력서가 특이해서 보고 맘에 들어서 나에게 오라고 한거 아니에요? 애초에 특이한 애의 가능성을 보고 뽑는게 아니라면 날 왜 불러서 제 시간을 낭비하세요? 나름 딴에는 공부도 해왔구만.. 회사가 자기가 뽑고 싶은 사람에 대해서 잘 몰랐던건 괜찮고, 대학생이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몰라서 이것저것 시도해본걸 꾸짖어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는 몰랐다는 게 아쉽죠.
아무튼.
인터뷰의 목적은 뭘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마음가짐으로 인터뷰에 갑니다.
- 내가 엄청 훌륭한 인재라는 것을 입증하여 '합격'을 얻어 내기 (X)
- 인터뷰어와 즐겁게 대화해서 서로에게 재밌고, 유익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O)
저는 일할 때도 결코 '기업'대 '기업'으로 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앨리스와 뿅뿅과장님이 일을 하는거죠.
뿅뿅과장님이 인터뷰어로 나와있다면, 뿅뿅과장님은 지금 두가지 입장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회사의 입장과 뿅뿅과장님의 입장. 그리고 이 두 입장이 항상 이해관계가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더 큰 힘을 갖는건 뿅뿅과장님의 입장이죠. 어차피 나랑 같이 일할 사람이니까! 결국 인터뷰어는 '내가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위주로 사람을 뽑을 확률이 큽니다.
그렇다면 좋은 인터뷰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세가지 정도로 정리해볼게요.
후배의 사례에서 본것과 비슷해요. 내가 했던 모든 의사 결정들에는 나의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어요. 그게 어떤 것이었는지 잘 생각해보고 그걸 사람들이 들었을 때 일리가 있다고 느껴지게 하면 되요. 그리고 솔직하세요. 내가 가진 가치들이 이 회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어차피 그건 fit이 안맞는거니까, 그런 회사는 합격해서 가도 별로에요.
예를 들면, 저에게는 이직의 사유가 주로 '배움'이에요. 여기서 배울만큼 배웠고, 내가 충분히 배우지 않는것 같으면 이직을 생각해요. 저는 점진적 발전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솔직히 저는 전문가, 스페셜리스트가 되기는 글렀는지도 모릅니다. 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역동적이고 책임감이 많이 주어지는 일을 하고 싶고, 그리고 짧은 시간안에 성과를 내요. 만약 회사가 효율성을 위해 업무를 세분화해서 같은 일만 계속 시키면서 사람들이 오래 근무할 것을 기대하면, 저와는 좋은 궁합이 아닌거죠. 이런건 애초에 서로 솔직하게 얘기하고 기대수준을 맞춰서 갈길 가는게 서로를 위해 좋아요.
나의 스토리에 대한 답은 내가 가지고 있어요. 그게 객관적으로 보기가 어려울 때가 많은데, 그럴때는 주변에 긍정적이면서 인사이트가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스토리를 다듬으시면 됩니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여기서는 인터뷰를 하기전에 누구와 인터뷰를 할건지에 대한 정보를 미리주더라구요. 어떤 부서의 뿅뿅씨와 인터뷰를 본다고 하면, 저는 링크드인에서 그 사람을 검색해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커리어를 밟았는지에 대한 정보들을 쭉 봐요.
2년전쯤,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 중 하나와 면접을 본적이 있었어요.
거기서 2차 면접을 보게 된 사람이 영국 사람이었는데, 링크드인에서 찾아보니 대학교때 전공이 러시아어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카자흐스탄으로 교환학생을 갔다왔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조금 할 줄 알거든요. 그래서 인터뷰할 때 만나서 인사를 'hi' 대신 "즈드라스브이쩨 (러시아어로 안녕)"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러시아어를 전공한걸 프로필에서 봤다고, 나는 카자흐스탄에서 잠깐 산적이 있는데, 그때 러시아어를 조금 공부했었다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어요.
인터뷰때 이런식으로 초반에 선수를 치는건, 인터뷰 주도권을 저에게 가지고 올 수 있어서 좋아요. 사실 인터뷰어도 인터뷰 들어오면서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완전한 준비가 안된 경우가 많아요. '이 사람에 대한 정보는 이력서 한장밖에 없는데 뭔말을 어떻게 해서 이 사람에게 우리와 fit이 잘 맞는지 아닌지에 대한 정보를 얻어낼까...'고민이 될거에요.
그런 상황에서 인터뷰이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조사해 왔고, 거기에서 공통점을 찾아내고 적극적으로 질문을 해오고 하면, 마음이 금방 풀어져서 즐거운 대화를 하게 되는 여건이 마련되죠.
그래서 이 회사는 합격을 했는데 가지는 않았어요.
저때 인터뷰봤던 저 영국 사람은 그 때 정말 재밌게 얘기했어서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만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저한테 어떤 평가를 줬을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죠.
이게 제일 중요해요. 커뮤니케이션을 잘한다는 건 말을 잘하는게 아니라 잘 듣는거에요.
인터뷰를 갈 때 100% 준비된 마음으로 가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100% 준비된 열정적인 사람들이 주로하는 실수가, 묻는 말에 대답을 안하고 내가 준비한 대답중 멋진 말을 껴맞춰서 대답하더라구요. 답이 얼마나 멋지든간에 A를 물어봤는데 B를 대답하는건 이 사람이랑 일하기 싫어지는 가장 큰 이유가 되요. 말을 잘 안 듣는다는 사인이거든요. 준비된 답이 없어도 괜찮아요. 잘보이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말에 집중하지 말고, 인터뷰어가 던지는 질문에 집중하고 과거에 내가 했던 경험의 실타래에서 질문과 관련된 내용을 풀어내면 됩니다.
신용평가기관에서 봤던 마지막 인터뷰는 프랑스 사람과 본 인터뷰였어요. 그 사람이 워낙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저도 질문을 많이 하기도 했어요. "너가 하는 일에서 제일 힘든 부분이 어떤 일이야?", "이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너 생각에는 어떤 역량이 필요한 것 같아?" 같은 질문은 제가 그 회사에 일할 것을 결정하기 전에 알고 싶었던 부분들이라 그 사람의 경험에 기반한 질문들을 많이 했고, 열심히 들었어요. 맞장구도 쳐주구요. 그러다보니 한시간 반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 사람은 70%를 말하고, 저는 30%를 말하고 인터뷰에 합격하게 되었던거죠.
인터뷰 기회가 들어오면, 당장 이직 생각이 없더라도 일단 응해보세요.
친구들과 3시간 수다떠는 것보다,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