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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in wonderland Nov 09. 2015

싱가폴에서 취업하기 (1)

편도 티켓을 사서 무작정 싱가폴로 온 인문계 졸업생 

사실 싱가폴에 온지 거의 4년째가 다 되어가고 있어서 그때의 느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대신 예전에 싱가폴 취업후기를 썼던 게 있어서 그때의 내 글을 3년 후의 내 코멘트를 붙여가면서 여기에 쓰려고 한다.



3년전 나의글.


제가 밑에 싱가폴 취업과 관련없는 고민얘기를 구구절절히 썼던 것은, 제 오랜 취업의 방황과 고민의 끝에 얻은 답이 그냥 취업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였습니다. 취업을 하면 행복해질 것 같았는데 행복하지 않았다는 사람들의 말은 진짜에요.

그게 왜냐면, 충분한 고민 없이 취업해서 그런 것 같아요.
아마 취업에 있어서는 전문가일 수 있겠지만, 저는 진짜 행복 하려면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고 난 후에 일을 해야 정말 행복하지 않을까요...............저도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3년 후의 생각: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이란게 도대체 뭔지.. 해외 가서 일하기만 하면 다 해결될줄 알았는데, 다 해결된 것 같다는 느낌은 정확히 2년정도 갔던거 같고 3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아직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결국 자기 자신을 잘 아는게 평생의 과업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1탄은 저의 고민과정을 나누고 싶어서 아예 취업 과정의 초반부터 쓴 것입니다. 
암튼 근데 고민얘기에요.
실질적인 팁은 이거입니다.


2탄- 싱가폴 취업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2012년 9월에 입사하는 걸로 영국계 글로벌 헤드헌팅펌에서 오퍼를 받은상태에요.
그리고 비즈니스 컨퍼런스를 만드는 회사에서도 오퍼를 받았었는데, 여기는 리젝했어요. 
헤드헌팅펌이 좋은건 엄청 다국적이에요. 지사도 여러군데 있거니와, 같이일할 동료들이 다 다른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에요.
프랑스 사람, 독일 사람, 미국 사람, 싱가폴사람, 말레이시아 사람 등등등. 
한국 사람은 저 혼자에요. 
월급은 철저하게 성과급제라 자기가 딜을 많이 따면 그만큼 더 돈을 주는 구조지만 기본급도 꽤 높은 편이에요. 
(3년 후의 생각: 돌아보면 이때는 기본급이 꽤 높은 편이라 생각했지만, 이 나라 물가 수준에 비하면 기본급만으로 먹기 살기에는 많이 빠듯했었다. 그러나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구울 각오로 온 싱가폴이라 그 당시 나에게는 저 기본급이 그저 감사했나보다.)

그러면4월에 싱가폴에 온 얘기로 다시 돌아가면,
저는 진짜 충동적인 사람이에요..
너무 가고 싶어서 진짜 발을 동동 구르다가 일단 왔어요.
찡량이라는 싱가폴 친구가 가족들이랑 다같이 사는데 손님방이 있어서 거기서 2개월동안 지내기로 했었거든요. 찡량이 남자애라는 단점이 있지만, 2년 전부터 남자친구랑 저랑 셋이 브라더 시스터 하던 사이고, 
이 싱가폴 친구가 한국에 놀러 왔을 때 한달 넘게 제 동생방에서 지내게 해줬어서 저는 당연히 괜찮다고생각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얘가 여자친구가 생겨서....
찡량 여자친구가 제가 걔네 집에서 하숙을 하는 것을 엄청 싫어했던 것입니다...
제가 일부러 저를 경계할까봐 공항에 입국하면서 부터 세수도 안하고 옷에 뭐흘리고 안경끼고 거지같이 입국했음에도 불구..

그래서3일만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찡량 밖에 없는 나라에서 집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후아 너무 길어지네요. 
저는3달 동안 집을 세번 옮겼습니다.
3일만에 찡량네 집에서 쫓겨날 때, 서러워서좀 울었는데요. 그때 말고는 운적 없어요. 외국 무서운거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옮길 때는, 교회에서 만난 친구네 집으로 옮겼어요.
저 여기서 하도 사람만날 때가 없다보니까 교회에 나갔거든요... (밥도 주고..)
현지 교회에서 만난 말레이시아 친구네서 한달동안 얹혀 삽니다..
돈은 준다고 했는데도 한사코 안받았어요..
그리고 그 친구가 건강상의 문제로 말레이시아로 돌아가고(저도 양심은 있어서 전기세랑 정도의 소소하게 돈을 친구한테 맡겼습니다.)

'에휴..또 집을 찾아야지..이번에는 돈주고 빌리자..비록 집값이 미친듯이 비싸지만..'
이라고 생각하고 룰루랄라 집을 찾고 있는데, 

여기서 사귀게 된 싱가폴 친구 조이가, 

"우리 언니네 집에 있을래? 도심에서 멀고 에어컨은 없지만 너가 담배냄새를 견딜 수만 있으면 그냥 편하게 있어도 돼!"

사실 싱가폴은 서울만하기 때문에 도심에서 멀어도 그래봐야 서울입니다.
저는 그래! 하고 왔는데,
이 집에 들어온게 저에게는 엄청 행운이었어요.(이유는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이제 드디어 팁이 나갈것 같네요.

제가 여기와서 가장 열심히 했던 것은
현지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능력자면, 턱턱 취업이 될지도 몰라요.
근데 사실 경력이 없다고 봐도 좋을만큼 졸업하고 거의 바로 온 셈이고, 
게다가 영어는 손짓발짓 의사소통 정도입니다.

취업을 할려면 어쨌든 네트워크가 필요했고, 영어를 늘리려고 해도 말할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사람 사귀는 것 부터 시작했습니다.

1. 여기서 저는 교회를 4번 옮겼어요. (너 신앙을 도구로 쓰니? 라고 하지말아주세요..저는 여기서 본격 빌리버가 되었습니다.)
 옮기고자 옮긴건 아니지만, 다들 자기네 와보라고 하면 가고, 거기서 마음맞으면 친구되고 그렇게 하나 둘 씩 친구들을 늘려갔어요. 

(3년 후의 생각: 교회만 4번 옮긴게 아니라, 사실 영적인 '구루'가 있는 아슈람에도 갔었다. 한국에서는 아직 유명한 컨셉은 아니지만, 외국에서는 'spirituality'라는게 유행하고 있다. 스티브잡스가 가르침을 얻고자 인도로 갔다는 얘기는 이미 창업가들에게 유명한 얘기고, 그래서 해외의 창업가들은 다들 한번씩은 그런 영적인 가르침을 찾아 인도의 영적스승의 밑으로 모여들고 있다.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된 나는, 이게 사이비가 아닌가 엄청 고민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세계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2. 어쩌다가 친구가 "너 비즈니스 모임에 관심있니?" 하면 "그럼!",  "디자인 모임에 관심있니?" 하면 "그럼!"
말 그대로 부르는 모임은 단 하나도 거절하지 않고 다 따라나갔어요. ( 참고로 저 한국에서는 진짜 부르면 안나가는 애로 유명합니다...)
그런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이 나중에 저에게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이럴 때는 뭔가 있어보이는 자기 소개가 중요합니다.

"안녕? 꿈찾아온 코리안이야. 나, 한국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도 나왔엉. 그리고 에너지 회사에서 비즈니스 디벨로퍼였지. 근데 나는 한국이 전혀 글로벌화 되지 않은 나라라는것을 실감했기에, 나중에 브릿지가 되기 위해 왔어. 나는 여기서 살아남을거야."

외국애들은, 특이한 것을 좋아합니다. (저도 특이한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소개를 하는데, "안녕 난 어디어디에서 일하는 뿅뿅이야."이걸로 끝나면 아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지만,
뭔가 자기가 지금까지 알던 사람과 다른 배경과 생각을 가진 사람을 보면 누구나관심을 갖게되고 더 알고싶어지죠.

그렇게 자기 PR을 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친구들을 하나둘씩 만들어 나갔죠. 모든 모임에 다 따라가면서

3. 현지 헤드헌팅회사에 일단 등록은 해놨었어요.친구 소개로. 

4. 아, 저 싱가폴에 오기전에연락했던 곳이 있습니다. 바로 대학교 동문회!
동문수첩을 보시면, 세계 어느나라든 자랑스러운 학교 동문회가 있습니다.
저는 동문회장님께 연락을 드리고 "사랑스러운 후배가 갑니당." 예고를 드렸죠.
한달에 한번 하는 동문회에서 까마득한 선배님부터 다 계시는데 다들 대단하십니다..
저는 선배님들 집 가보고 기절할 뻔. (리...조트 인가요?)


그리고,여기서 저의 초절정 멘토 선배님도 만났습니다. 
훌륭한 마케터의 커리어를 가지고 계시고, 저를 맨날 집으로 불러서 이것저것 먹여주시고,
선배님께서 소속되어 계신 비즈니스 거물들이 모여있는 모임도 데려가시고 (저 이 모임을 통해 인터뷰 기회도 한번 얻었었어요.)
근데 무엇보다 선배님께서 이것저것 챙겨주시고 신경 써주셨던 것이 제 마음을많이 다독여주었던것 같아요.

아,그리고 다른 선배님 한 분도 뱅킹 인턴자리(자그마치 소시엣 제너럴)를 소개시켜주셨는데,
이거는 제가 뱅킹에 대한 지식이 진짜 쥐뿔도 없는 바람에...낚아채는데 실패했습니다. (3년 후의 생각: 배님께서 뱅킹 인턴은 점심에 도시락만 제대로 빠르게 배달하면 된다고 해서 무엇을 잘할 수 있냐 했을 때 도시락 배달이라고 했던것 같다. 정말 그랬나? 잘 기억은 안난다..) 
무엇보다 한창 초기여서 영어도 정말 못했었구요..


(3년 후의 생각: 그 뱅킹 면접을 본 건물이 Marina Bay Financial Center였는데, 이 건물을 보면서 정말정말 간지가 난다고 세상에, 내가 이런 건물에 면접도 보러온다고 어머니께 자랑스럽게 이 사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이 건물로 매일 출근하고 있지만) 

사실 네트워크라 말하긴 했는데,
저는 그냥 정말 즐겁게 지냈습니다.
평소에는 직업 공고난 것을 찾고, 어플라이를 하면서 
계속 친구들 사귀고 만나고를 했어요. 적응이 제 1차 목표였습니다.
아,그리고 동문 선배님들 말고는 절대 네버, 한국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어요.
절대 한국 커뮤니티는 근처도 안갔습니다. 적응을 위해서. 

사람은 절대절대절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것 같아요. (저의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제가 인터뷰를 본 곳이 총 6곳 정도 되는 것 같고요,
갈 기회가 있었는데 못 갔던 혹은 안 갔던 곳이 2곳이었어요.
지원은 셀 수 없이 많이 했고요..

인터뷰 본 곳이... (2탄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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