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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in wonderland Feb 26. 2016

내가 글을 쓰는 이유

글을 쓰는 것은 오래 전부터 좋아했었어요.


하지만, 싱가폴에 오기로 결심을 하고 그리고 싱가폴로 오고 나서 부터 내가 글을 쓸때는 그 전과는 글을 쓰는 마음이 달라졌었습니다. 단순히 내 기분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있는 누군가를 향한 메시지였어요.  "이것봐, 세상은 이렇게 넓다고!" 마치 지구가 평평하고 지평선 너머에는 낭떨어지인데, 가면 죽는다고 했던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와 결국 지구가 둥글다는걸 발견했을 때, 그걸 꼭 알려주어야 한다는 마음같은 것이었습니다. '나는 잘 살아있다'는 시그널을 계속 보내주어야 할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탐험길에 오를 수 있도록.




저는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두분 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셨어요. 꽤 시골에서 자랐어요. 어느정도냐면, 제가 어릴 때 천기저귀를 썼는데 아버지가 개울가에 가서 똥 기저귀를 빨면 동네 아줌마들이 저집의 여편네는 집안일도 안한다며 수근거리며 놀리곤 했대요. 비록 5살 무렵 서울로 이사를 왔지만, 어린시절을 생각해보면 고모네 집가면 고모네 집 뒤에 마굿간에 소가 세마리 있었던거, 논에서 매뚜기를 두 봉지를 꽉 채워 잡아오면 할머니께서 튀겨서 주셨던것 등을 기억해요. 서울에 와서도 넉넉하지는 않았어요. 초등학교 저학년을 엄마네 공립 초등학교에서 3년, 나머지 3년을 아빠네 사립 초등학교에서 보냈어요. 


사립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어렴풋이 빈부의 차이를 느끼긴 했지만 크게 신경쓰일 정도는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삼공주였거든요! 초등학교때보면 유난히 키도 크고(그때 키가 지금 키지만..) 빨리 성숙한 애들이 있죠. 그렇다고 삥뜯고 다니고 그런건 아니었어요. 같이 길드를 만들어서 퀴즈퀴즈(온라인게임)를 했던 정도였죠. 삼공주는 어디든 함께 다녔지만 같이 못간 곳이 있어요. 5학년때 방학 제일 친한애 두명이 영국으로 방학동안 어학연수를 간다는거에요. 그때 느꼈어요. '외국은 돈이 있어야 갈 수 있는 곳이구나.' 그리고 그때부터 항상 언젠가는 꼭 외국을 가고싶다고 생각했었지요. 그 사이 친구들은 유학도 가고 이민도 갔어요. 저는 한국에 남아서 저에게 남겨진 유일한 성공의 길처럼 보였던 공부를 했지요. 공부를 열심히하면 언젠가는 나도 외국을 가겠지.. 장래희망은 뚜렷하지 않았지만, 외국을 가겠다는 마음만은 언제든 제 삶에서 뚜렷했어요. 




아무리 열심히 한들 외국으로 가서 사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다고 느낀건 입사를 하고 나서에요. 생각보다 영어가 너무 형편 없었던거죠. 미국에서 손님들이 와서 미팅을 들어갔는데, 한마디도 못알아 듣겠더라구요. 갑자기 눈 앞이 깜깜해졌어요. '장래희망은 늘 바뀌어 왔지만 단 하나 내 삶에서 바뀌지 않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외국에서 사는 것이었는데, 이런 형편 없는 영어로는 택도 없겠다.' 


제가 어떤 마음으로 싱가폴행을 결정했는지,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정말 할말이 많아요. 엊그제 입사 동기가 제가 퇴사때 입사동기들에게 썼던 이메일을 저에게 보내줬는데, 이걸 읽으면서 제가 왜 글을 써왔는지에 대한 이유가 명확해졌습니다.   



        


안녕하세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우리 팀 여러분.

제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일단 우리끼리의 비밀로 해주세요.

꼭 비밀을 지켜주셨으면 해요.


제가 **오빠에 이어 우리 팀에서 두번째로 해외를 나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짝짝짝~)

그리고 아쉽지만, 그리고 미안하게도 아마 우리 팀중에 퇴사를 하는 첫번째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꿈돌이 앨리스는 살고싶었던 삶을 살기 위해 싱가폴에 갑니다.


사실 말은 거창하게 하지만, 저는 아직 제가 어떤 삶을 그토록 살고 싶어하는지에 대해 뚜렷한 비전과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저는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고, 그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면서 조금이라도 세상을 좋게 만들 수 있으면 저는 엄청 신날 것 같아요! 다양한 나라에서 살고 싶고, 사람에게 영감을 받으며 영감을 주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추상적이지만..

아마 제가 꿈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면 살면서 제 꿈은 좀 더 뚜렷해질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런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혹은, 저렇게 했을 때 제가 정말 기쁘고 신나는지 알려면

일단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_____^


만약 그 길이 아니라면, 그 길을 두번다시 가지 않으면 되구요.

뭔가를 하는 한 뒤로 가더라도 그게 후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 아직 거기서 직업을 구한 것은 아니니 혹시 싱가폴에 아시는 분이 있으면 알려주시구요 ㅋㅋ

2. 여러분들이 휴가를 오게 되면 이쪽으로 오시는 것을 고려해봐주세요. 그리고 저 밥좀 사주세요 ㅋㅋㅋㅋㅋㅋ

    모아둔 돈이 두달 치 월급밖에 없는데 이걸로 빠듯할거 같아요 ㅋㅋㅋㅋ(집은 싱가폴 친구네집에 얹혀살기로..)


나름의 계획은 있지만, 제 계획은 나중에 우리 금요일 만남에서 풀도록 하죠!


그리고 무엇보다 말하고 싶었던 것은, 제가 우리 팀을 엄~청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저의 초반의 싸가지 없었던 첫인상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롤링페이퍼에도 첫인상에 도도하다가 가장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고백할 것이 있는데...


사실 저는 들어오기 전부터 외국으로 무작정 뜨는 것을 매우 고려하고 있었어요.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방법이 없으면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라고(길을 닦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저에게 동의해주지 않았었죠......

어머니, 아버지랑 엄청 싸우고 타협점으로 연수를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공채를 그럼 왜 썼던거냐?!라고 하시면 저도...인간인지라 초조하고...그래서..)


그리고 연수를 갈 때의 제 마음가짐은 '흥, 나는 절대 적응 안할거야.'였어요.

확실히 하루는 적응을 못했구요. 이틀째부터 조금씩 익숙해졌습니다....... 그리고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팀 사람들을 알게되고 좋아지고 이 생활이 재밌고 신나고 그런 일들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하루는 빵터져서 엉엉 운적이 있었습니다.

(**오빠랑 홍짜이는 제가 갑자기 눈이 뻘개져서 저희 강의실에 들어온 날을 기억할까나)

그때 저는 10년만에 엉엉 울어봤어요. 왜그런지 그때는 이해를 할 수 없었는데.

혹시 적응이 안되서 우냐고 물어봤던 친구에게 적응이 되서 울었다고 했던 것 같아요.

내가 그렇게 이 악물고, 내 꿈에 대해 계속 노래를 불러도 살다보면 잊혀지고 그러는구나

(실제로 연수 동안에는 외국 살고싶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도 않았으니까..)


요는, 그만큼 저는 연수생활이 즐거웠고, 우리 팀 사람들이 좋았었어요. 

그렇지만 한다스 팀 사람들에게도, 계열사 팀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제가 가깝게 다가갈 수 없었던 이유.

제가 솔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솔직히 말할 수 없고, 내 가장 큰 고민도, 내 생각도 나눌 수 없었던 것이 저에게는 좋아하면서도 더 다가갈 수 없는 장벽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래서~ 지금 저는 솔직하게 말하고 제가 회사를 떠날지언정 계속 우리가 한다스 팀이란 이름으로 함께 했던 시절의 의리를 간직하고 훗날을 도모하고 싶은 겁니다. 비록 저는 STX인으로서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는 없겠지만 나중에 언제라도 어느 곳에서라도 다시 만나 서로 도울 수 있을거라 믿어요. (연락은 당연히 하는거고, 뭔가 삶에서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많잖아요?)


저를 빼고 여러분들은 끈끈한 사이를 유지하시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ㅠㅠ 우리가 서로를 이렇게 안다는게 분명 나중에 서로에게 큰 힘이 될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를 놓치 말자구요. 오늘 저의 퇴사결정은 팀장님께만 말씀을 드렸고 아직 팀사람들은 모르니까 꼭 비밀로해주세요~ 그리고 금요일에 꼭 뵈었으면 합니다. 저는 3월 31일 교환, 환불이 안되는 편도 비행기로 싱가폴에 갈 예정이고 저의 개인 메일주소는 

***@gmail.com 입니다.


절대 연락 끊으면 안돼요!!

모두들 정말 고마워요. 저에게 좋은 추억을 주어서..

한다스 포에버!!!!!!!

고럼 이만

안뇽!!




저는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제 글을 통해 아무리 하찮고 어처구니 없는 원함이라도, 그 원하는 것을 하도록 용기를 내라고 말하고 싶어요. 장기 목표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아요. 저도 장기 목표 없거든요. 명확한 커리어 골이나 직업적인 꿈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아요. 열정을 불태우지 않아도, 열심히 하지않아도 괜찮으니 마음에 있는 그 하찮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 어처구니 없는 그 살고 싶은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저는 제가 4년전에도 저런 망상에 부푼 헛소리를 했을지 몰랐거든요.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고, 그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면서 조금이라도 세상을 좋게 만들 수 있으면, 저는 엄청 신날 것 같아요! 다양한 나라에서 살고 싶고, 사람에게 영감을 받으며 영감을 주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라고 4년전에 말했었다니..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지금 저는 그 망상에 부푼 삶을 살고 있네요. 그것도 잘 살고 있어요. '글로벌하게 XXX에서 일하는 성공한 여성, 어떻게 그 자리에 갔는가?!' 이런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살고 싶은 삶을 사는 그 과정과 여행에 대해 얘기하고 싶고 제가 어떤 목적지에 도착했느냐는 그 이야기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길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지 않았고, 생각보다 더 신나는 길이었거든요. 굳이 해외일 필요 없어요. 마음 속에 있는 바로 그 일을 하세요. 그 작은 힌트를 놓치지 마세요. 



친구 손에 FATE를 쓰고 말해줬지요. "운명은 니 손안에 있어."


그리고 곧, POTATO EATER(감자 먹는 사람)로 바꿔줬지만요. 감자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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