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기회의 땅이라는 말만 듣고, 그리고 자료와 수치만 보고는 알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지요. 결국 직접 가서 느껴봐야합니다. 이 땅이 과연 나와 맞는 땅인지 케미도 맞춰봐야하구요. 그래서 일단 가보기로 하고 10일간의 일정으로 비행기표를 예약했습니다. (항상 제일 지르기 쉬운게 비행기표네요...) 그리고 전반적인 리서치를 시작했습니다.
이란에 물건을 수입하려고 하면 제일 먼저 부딪치는 문제가 관세에요. 화장품과 같은 수입 사치품에는 관세가 200%까지 붙거든요. 그대로 관세를 내며 장사를 하면 현지에서 경쟁력이 없어지는데, 커넥션과 세금구조를 잘 이용해서 이런 관세를 반 이상 낮춰 들여오는 distributor들이 있습니다. 좋은 distribuotr를 찾는게 중요한데, 관세문제를 해결해주며 너무 많은 이익을 가져가니까 문제였죠. 이란의 다이아몬드 수저인 제 전남친이 그 언젠가 제가 이란의 수입세때문에 고민하고 있을때 저에게 구준표같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전남친: "그 관세 문제를 푼 사람이 있어? 없어?"
나: "응 있어."
전남친: "그러면 할 수 있네. 그 문제가 아무도 해결해본적도 없는 문제고 신이 내려와도 안된다면 해결이 안되는 문제인데, 이란에 누군가 그걸 한 사람이 있다? 그럼 우리 아빠도 할 수 있어."
(꽃보다 남자 아니에요? 이란에서 뭐라도 팔아보려는 금잔디와 그의 전남친 구준표)
그렇지만 전남친의 도움은 마지막 히든카드 같은거죠. 제가 이란에서 감옥에 잡혀들어가거나, 납치가 당했을 때 같은 미친 상황에서 한두번 쓸 수 있는거지 제가 먹고 사는 문제를 매번 거기에 의존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이란 방문은 최대한 전남친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제 역량만을 사용하기로 결정합니다.
가설은 이랬어요. 무역이 자유롭지 않았으니, 이란 내에 좋은 물건이 많이 유통이 안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큐레이터 역할을 하자. 그래서 제 동업자 에이미는 한국에서 바이어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다양한 물건을 소싱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현장에서 배우려고 동대문 새벽시장에 가서 히잡 샘플을 사구요, 제가 예전에 근무했던 미용실에 가서 헤어 제품 샘플들을 받아오고, 인터넷에서 탈모제품관련 히트상품들 회사에 문의하고 방문하고, 한경희 스팀청소기에도 문의하고, 우리가 생각했을 때 독특하고 외국에 가져갈만한 물건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에이미는 전통적인 채널인 코트라를 많이 이용했어요. 코트라에서 제공하는 이란 내의 바이어들에 대한 정보를 모아서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반면 저는 이란내의 커넥션을 만들고 미팅을 잡는데 주력했습니다. 이번 글의 부주제가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가 여기에서 나와요. 제가 평생 만난 이란인이 전남친 하나인데, 갑자기 이란에서 바이어 미팅을 잡으려고 하니 막막하잖아요? 이란에 대한 정보는 워낙 부족하니까요. 그리고 그나마도 이란 언어인 Farsi로 되어 있어서 제가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아니구요. 예전이라면 정말 어려웠을거에요. 그런데 우리는 전 세계가 점점 이어지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Social Network는 그걸 사용하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정말 무한한 가치를 가져다 줄 수 있지요. 저는 링크드인을 이용했습니다.
제가 링크드인을 사용해서 '사람을 리서치'하는 것을 '자료를 리서치'하는 것보다 우선한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자료 리서치를 싫어해요. 단순한 숫자가 주는 정보는 그 업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주는 인사이트에 비할바가 못되니까요. 자료를 통해 산업을 이해하는 것은 한정적일 뿐만 아니라, 시간도 많이 들어가는 작업입니다. 먼저 업계의 전문가를 만나서 한번 큰 그림을 보고난 후에 디테일을 짜는 과정에서 자료가 필요하지 아무것도 없을 때의 자료 리서치는 거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화장품, 의류같은 물건을 들여갈 경우 이란에서 distribution되는 채널을 크게 온라인/오프라인으로 잡고, Ecommerce platform의 founder/최고경영자가 누가있는지, 그리고 distirbution 채널의 대표가 누가 있는지를 먼저 검색했습니다. 제 목표는 그 사람들을 만나서 그 사람들의 인사이트를 듣고, 같이 사업을 도모할 수 있는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거였어요. 한 명의 Ecommerce platform의 founder를 커넥트하니까, 그 사람과 커넥트 되어 있는 다른 Ecommerce platform의 프로필들도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리고 저와의 mutual connection이 늘어갈 수록 제 connection request를 받아주는 사람들도 늘어갔습니다.
제가 항상 강조하는거지만, 플랫폼은 그걸 사용하는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파워가 결정되지요. 저는 그 사용자의 역량 중 가장 중요한것이 '사람을 움직이는 메시지를 만드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링크드인으로 쪽지를 보냈는데 답변이 안왔어요.'라고 저한테 불만을 하는 고객/사람들이 많아요. 사람들이 링크드인을 잘 접속을 안해서, 링크드인을 싫어해서 답변을 안하는게 아니죠. 그건 단순하게 그 쪽지에 담긴 메시지에 파워가 없었기 때문에,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답변을 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면 좋은 메시지의 첫번째 조건은 뭘까요?
제 생각에는 역지사지, 즉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역량은 커뮤니케이션에서 제일 중요한 역량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얼마나 상대방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상상해낼 수 있느냐? 부자와 얘기할 때, 그 사람이 겪고 있는 daily life를 통상적인 관념과는 다르게 얼마나 현실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가, 사장님의 입장을 얼마나 상상할 수 있느냐, 겪지 못한 사람의 삶을 상상해낼 수 있는 능력은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키(Key)이기도 합니다.
제가 소비재쪽에는 전혀 경험이 없었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꽤 좋은 성과였지요. 이쯤되면 제가 어떻게 메시지를 썼는지 궁금하실 수 있을것 같아서 아래에 예시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아래 메시지는 이란에서 가장 큰 Fashion distributor의 대표에게 보낸 쪽지입니다.
잠깐만요.. 눈물좀 훔치구요...
제가 여러차례 말했지만, 제 대학교때 토익점수가 870이었어요. 낮은 점수는 아닐지라도 이란에서 가장 큰 패션 디스트리뷰터의 대표에게 보낼 이메일을 영작할 정도는 절대 아니었지요.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세요. 눈물 닦고 본론으로 돌아갈게요.
제 메시지가 나름 괜찮기는 하지만 마틴루터킹의 I have a dream 수준의 명문은 아니죠. 제가 성공적으로 미팅을 끌어낼 수 있었던데는 제가 보기에 크게 3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1) 역지사지의 메시지
메시지를 쓰기전에 제가 가지고 갈 수 있는 밸류가 뭘까, 제가 뭘 제안하고, 저 사람이 저를 만남으로 인해 뭘 얻을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지난 4년간 엄청 많은 커리어상담 요청 이메일을 받아왔어요. 어떤 사람은 정~말 긴 이메일로 자기의 기분과 인생역정을 말해주며 저에게 도움을 달라고합니다. 처음 2년간은 성심성의껏 도와줬지만 매번 도와주고 나서 연락이 더이상 없는 경험들이 늘어가면서 무작정 도와달라는 사람들에게는 '난 내 경험을 들려주고 당신의 경험을 듣고 조언을 주는데, 당신은 나에게 뭘 제안을 하죠?'라는 생각이 들어 응답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아니고서야는 무작정적인 도움을 베푸는 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서 요청을 할때는 꼭 내가 뭘 가지고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것도 쓰는게 중요합니다. 그 메시지의 받는 사람의 입장을 잘 헤아리세요. 깊게 그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세요.
2) 블루오션 마켓
저 분이 한국의 젊은 여자에게 저런 메시지를 받아봤을까요? 심지어 저는 특정회사를 대표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메시지를 보낸 맥락이 얼마나 독특했을지를 생각해보면, 그냥 한번 만나라도 보자라고 생각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겁니다.
3) 링크드인이라는 수단
요새 스팸 메일이 너무 많죠. 이런 랜덤한 컨택트를 만들때는 저는 일반적인 이메일보다는 링크드인으로 보낸는 것을 선호합니다. 왜냐면 링크드인에는 제 정보가 있거든요.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지만 일단 이 사람이 어디에 근무하고 어떻게 생긴 사람이고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서 짧은 시간에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아주 현실적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예쁜 프로필 사진은 미팅을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되지요.
그리하여 이란을 가기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란 대사관이 싱가폴에 없어서 비자를 얻지 못한 저를 위한 전남친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전남친: "이란 공항에 도착하면, 비행기 나가는 통로에서 어떤 사람이 너 이름이 적힌 판을 들고 널 마중나가 있을거야. 그 사람을 따라가서 VIP lounge에서 쉬고 있으면 사람들이 너 비자를 처리해줄거야."
CIP로 입국합니다. 이른바 Commercially Important Person(상업적으로 중요한 귀빈). 어이쿠야. 제 생에 두번째 VIP입국을 합니다.
* 제가 이란에 처음 방문했을 때가 2015년 9월이었으니 어느새 반년이 훌쩍 지났네요. 이번 달인 4월 말, 두번째 방문을 위한 비행기표를 예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