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벼리 May 17. 2023

강아지 접종하러 갔다가 울고 왔다.


가족이 되기 전, 브리더님이 보내주신 영상 캡쳐본


생후 3개월, 비숑프리제 강아지를 가족으로 맞이했다. 맞벌이를 할 때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일이다. 어린 강아지를 집에 8시간 넘게 혼자 두는 건, 5살짜리 아이를 8시간 넘게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한다. 작고 여린 생명체에게 그런 고문을 할 수는 없어,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 있을 때 가족으로 맞이해야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사실 한참 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여행이 두 건 있었다. 평소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라 내심 들떠 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입양을 하게 되어 여행을 모두 취소해 버렸다. 아직 접종도 끝나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갈 수도, 집에 혼자 둘 수도, 다른 이에게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아마도 이 아이가 우리와 빨리 만날 운명이었나 보다. 하루라도 빨리 가족이 되어, 함께 여행을 함께 다니라는 운명.


나는 반려견을 애완견이라고 부르던 시절에 강아지를 키워왔던 터라, 요즘 반려견 문화에 새롭게 적응 중이다. 그때에는 반려견을 가족처럼 대하던 문화도 아니었을뿐더러, 6차 예방 접종과 동물 등록 같은 제도도 없었다. 예방 접종 주사 같은 것을 굳이 맞추지 않고도,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면 라떼 타령일까?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강아지를 위한 것인지 사람을 위한 것인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시대가 변한 것을. 어찌 됐든 변한 시대에 적응하며 살아야지.




반려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국가의 수준이 보인다고 한다.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을 보면, 대부분 반려동물에 대한 법이 강력하다. 게다가 반려동물을 정말 가족같이 대하며, 어딜 가나 반려동물과 함께 동반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아마 우리나라도 그런 나라들의 대열에 합류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요즘 나는 행복이의 예방 접종을 진행 중이라 2주마다 동물병원을 다니는데, 병원에 갈 때마다 주사를 2번씩이나 맞고 아프단 말도 못 하는 행복이를 마주한다. 접종 당일에는 잠이 많아지긴 하지만, 평소처럼 밝고 씩씩한 모습을 보면 3개월 밖에 안 된 아기가 그렇게 의젓해 보일 수가 없다.



3차 접종하고 막 나온 행복이


아이와 처음으로 병원에서 3차 접종을 하던 날, 30분 동안 알레르기 반응이 없는지 지켜본 후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신호 대기 중에 행복이의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이동 가방의 문을 살짝 열었는데 호흡이 평소보다 3배 정도는 빨라 보였다. 나는 급히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평소보다 호흡이 3배 정도를 빠른데, 이것도 알레르기 반응인가요?"


"아마도 알레르기 반응일 수도 있어서, 혹시 멀리 안 가셨으면 지금 바로 병원에 오실 수 있으세요?"


"네네. 바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차를 돌려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하필 점심시간이라 응급실에서 진료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동물병원에도 응급실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강아지의 신음 소리와 짖는 소리가 난무했다.


사람인 나도 이런 환경에서는 스트레스받을 지경인데, 병원이 처음인 행복이는 오죽했을까. 어쨌든 도착하자마자 엑스레이를 찍고 혈압과 체온 측정을 했다. 다행히 엑스레이 확인 결과, 폐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나머지도 다 정상이었는데, 혹시 병원에서 못 잡아낸 알레르기 증상이 있을 수도 있으니 항히스타민을 투여하고 지켜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담당 선생님이 두 가지 선택지를 제안했다. 하나는 주간 입원을 시켜서, 5~6시간 정도 알레르기 반응을 지켜볼 것인지, 아니면 보호자가 병원에서 아이를 지켜볼 것인지. 안 그래도 나랑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불안해하는 아이인데, 주간 입원을 시키면 아이 상태가 전혀 호전될 것 같지 않았다.


항히스타민 투여 후 지켜보는 중


그래서 병원에서 한 시간 동안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한 시간 동안 기운이 없는 녀석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씩씩하고 발랄했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흘렀다. 주변에 사람들도 많은데 창피해서, 눈물은 닦지 않고 마스크 속에서 말려 버렸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고, 시간이 지나도 호흡수가 줄어들지 않자 담당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이번에도 두 가지 선택지를 주셨다. 입원을 시켜볼지, 아니면 집에 가서 경과를 지켜볼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의 심리적인 요인이 크다는 판단이 되어, 집에 가서 경과를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마지막으로 집에 가기 전, 혈압과 체온을 다시 한번 체크하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진짜 최종.JPG


집에 가는 차 안에서도 호흡수가 줄어들지 않은 채,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집에 도착하자마자 호흡수가 정상치로 돌아왔다. 아마도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행복이어서, 많이 긴장되고 두려웠나 보다.


처음으로 가족이 되던 날 이후로 차를 처음 탔었고, 병원에서 처음으로 주사 2번을 연속으로 맞고, 귀청소까지 당했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게다가 처음 보는 큰 개들이 짖으며 돌아다니는 걸 봤으니 긴장했을 만도 하다. 아직 접종이 끝나지 않은 아이라 최대한 다른 개들과 마주하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행복이에겐 그것마저도 버거웠나 보다.


웃으며 자는 행복이


오후에는 접종 당일임에도 불구하고, 식욕도 좋았고 건강한 응가도 생산했다. 정말 적응력 하나는 끝내주는 강아지다. 그러고 보니, 가족이 되던 첫날부터 우리를 신나게 쫓아다니며 애교를 부리던 녀석이었던 것을 깜빡하고 있었다.



3차 때와 달리, 4차 접종 후 여유있는 표정의 행복이

얼마 전 4차 접종을 하고 왔다. 한 번 해봤다고 이제는 이동 가방에도 스스로 들어가고, 차 안에서도 얌전하다. 주사를 맞은 직후에 살짝 떨고 여전히 호흡은 가빴지만, 이제 나도 경험이 쌓여 놀라지 않았다. (물론 아이가 떨 때에는 선생님께 왜 떠는지 물어는 보았다. 아마 주사를 2번 연속 맞고, 무서워서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하셨다.)


이젠 이동가방에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행복이


그렇게 이번에도 병원에서 30분 동안 알레르기 반응은 없는지 지켜보다가 집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집에 도착하자마자, 마치 산책이라도 다녀온냥 아무렇지 않게 가방 속에서 스스로 나와 밥부터 찾았다. 정말 씩씩한 개남자 아이다.


이렇게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아직은 서툰 개엄마지만, 나를 믿고 씩씩하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행복이에게, 하루하루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


내 인생에서 행복이는 일부이지만, 행복이 견생에서는 내가 전부이니까. 이름만큼 행복한 세상이 되어주기로 결심했다.











작가의 이전글 마법의 주문, '그럴 수도 있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