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1월에 예약해 둔 여행 일정이 다가온다.
막상 예약을 했을 당시보다 회사에 신규 광고주가 들어오면서 챙겨야 할 일이 많아졌고, 그럼에도 여행이라는 것은 이상하게도 그런 모든 가능성을 합쳐도 쉽게 번복되지 않는다. 환불이 안 되는 티켓이라든지, 취소 수수료 같은 현실적인 장치들이 여행을 붙잡아 두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전 글을 보면 나의 1월 여행은 하루 정도 경유하며 베이징을 짧게 둘러보고, 이후 싱가포르로 이동해 머무는 일정이었다. 날짜는 같지만 여행지는 사실 이미 한 번 바뀌었다.
우선 경유하며 여유롭게 지내려던 베이징행 비행기가 하루 만에 사라졌다. 찰나의 선택을 잠시 미뤘을 뿐인데 말이다. 물론 베이징을 경유해 다음 날 싱가포르로 가는 비행기는 여전히 있었지만, 경유 시간이 너무 짧은 일정들만 남아 있어 왠지 김이 빠졌다.
다시 비용과 일정을 따져 결정한 곳은 필리핀 마닐라였다.
비행기를 끊고 나서야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마닐라는 여러모로 여행지로 비추천이 많았다. 나는 도심 여행을 좋아하는 편인데, 필리핀은 이리저리 활보하며 다니기엔 치안이 그리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게다가 동남아라고 해서 물가가 꼭 싼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분명했다.
새벽 2시 비행기로 도착하면 아침부터 바로 하루를 쓸 수 있고, 금요일 밤 출발이라 꽉꽉 채워 4일간 여행이 가능했다. 요즘은 주말에도 일을 하는 날이 많다 보니, 가족들과 이렇게 풀타임으로 시간을 보내는 건 명절이 아니면 거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유튜브로 본 마닐라는 특정 안전 지역을 제외하면 빈부 격차가 크고, 강도가 많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래서 대부분 대중교통보다는 그랩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물론 이런 염려는 해서 나쁠 건 없지만, 예전에 러시아 여행을 갔을 때도 동양인을 싫어한다는 소문에 어둠이 찾아오자 서둘러 숙소로 도망치듯 돌아왔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조금 과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당시엔 그게 최선이었다.
이번 일정은 필리핀에 새벽 도착 후 바로 도심을 벗어나, 보트를 타고 스노클링이나 물놀이를 할 수 있는 바탕가스로 이동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시 마닐라 시내로 들어온다. 이후 하루 정도는 워터파크에서 한겨울의 여름을 즐기고, 나머지는 마닐라 도심을 슬슬 걸어 다니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바쁜 시기에 자리를 비우는 것이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여행을 계획한다는 건 어쩌면 이런 모든 가능성을 넘어서는 기회비용을 미리 만들어 두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여행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