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가 남긴 것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 관람 후에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2021년의 첫 극장 관람 영화는 픽사의 <소울>이었다. <소울>은 한 해를 시작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이었다. 코로나19로 일상의 소중함이 전에 없이 귀히 느껴지는 시기였기 때문에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더욱 크게 다가왔다. <소울> 새겨놓은 "keep Jazzing"이라는 말이 조금씩 잊힐 때쯤, 픽사는 또 한 편의 영화를 내놓았다. 여름의 시작에 선 지금 가장 잘 어울릴 영화 <루카>다.
영역을 넓혀가는 바다소년의 성장기
<루카>는 바다에서 육지로, 작은 마을에서 대도시로, 공간을 이동하며 성장하는 소년의 아름다운 우정과 성장기를 그린 영화다. 육지 괴물을 만나면 무조건 숨어야 한다는 당부 아래 자란 루카는 바다 바깥세상을 궁금해하는 동시에 두려워한다. 바다에 떨어진 육지 괴물의 물건들을 줍는 것으로 호기심을 해소하고 있던 루카 앞에 알베르토가 나타난다. 알베르토는 포르토 루쏘 근처 작은 섬에 살고 있는 인어로 '자칭' 육지 생활 전문가다. 그는 루카에게 걷는 법을 가르치고, 중력의 재미남과 베스파의 멋짐을 알려준다. 적어도 알베르토의 섬 안에서 별은 하늘을 나는 엔초비고 달은 우리를 지켜주는 거대한 물고기다.
하지만 루카가 바닷속 집에서 벗어나고, 알베르토는 작은 섬의 성에서 벗어나 포르토 로쏘라는 해안마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진짜 육지 괴물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바다 괴물을 사냥하는 구조물들로 꾸며진, 진짜 인간 세계를 말이다. 노골적인 위협 앞에서 루카와 알베르토는 인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인간들 사이로 스며드는 것을 선택한다. 루카와 알베르토의 유일한 목표는 포르토 로쏘 컵에서 우승해 그들만의 베스파를 사는 것이다. 베스파만 있으면 어디든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는 부푼 꿈을 껴안은 채 말이다.
줄리아와 팀 언더독을 결성한 루카와 알베르토는 인간 세상에 적응하기와 우승을 위한 훈련을 병행하며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다. 루카보다 형인 알베르토가 줄리아의 아빠 마시모의 일을 돕는 동안, 줄리아와 좀 더 가까워진 루카는 줄리아에게서 별의 진실을 듣는다. 알베르토가 알려준 것과 달리 하늘의 별이 엔초비가 아니라는 사실을 망원경을 통해 확인한 루카는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깨닫는다. 그리고 평범한 인간처럼 학교에 다니는 꿈을 꾸게 된다. 그러나 인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없는 루카의 그 꿈은 쉽사리 악몽으로 변해버린다.
여름마다 비는 쏟아질 거야.
<루카>의 성장기에 특별함이 거기에 있다. 포르토 로쏘의 사람들은 인간 소년에게는 다정하고 좋은 사람들이지만, 바다 괴물에게는 무시무시한 사냥꾼이다. 게다가 사람들의 바다괴물에 대한 공포는 허상이나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거의 유일한) 흔적은 마시모의 팔인데, 바다 괴물의 소행이라는 소문과 달리 그의 팔은 태어날 때의 모습 그대로이다. 루카를 비롯한 인어들은 육지에서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 심지어 루카의 부모는 인간으로 변한 루카와 보통 인간 아이들을 전혀 구분해내지 못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 루카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인어임을 숨긴 채 완벽히 평범한 인간 소년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또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밝히고 그 모습이 받아들여지기를 희망하기. 어쩌면 전자가 더 쉬운 길인지도 모른다. 나 하나만 조심하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저 이 모습이 내 모습임을 설득하는, 어이없고도 어려운 일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하지만 루카는 후자를 선택한다. 그 길이 자신의 친구 알베르토를 구하는 일이자, 자신의 꿈이 악몽이 되지 않는 길이기 때문이다. 알베르토를 끌어안고 빗속을 달리는 자전거는 더 이상 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다 괴물이라는 거짓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은 본래의 모습으로 선 루카와 알베르토와 직면한다. 바다 괴물이라는 허상을 거두면 꿈을 이루기 위해 자전거로 어설프게 언덕을 오르던 작고 평범한 소년이 보인다. 루카.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루카>라는 이름이 가진 힘이 여기서 작동한다. 이름을 아는 이상 수많은 존재들과 그를 구분할 수 있어진다. 루카와 알베르토는 그들의 친구였고, 친구는 겉모습이 변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낯선 존재로부터 숨거나, 낯선 존재를 배척하기 전에 그들의 이름을 묻고, 나의 이름을 알려주어야 하는 이유다. 서로 나누는 이름 사이로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분명히 다르지만 누구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알베르토와 베스파를 타고 자유롭게 떠날 꿈을 꾸었던 루카는 그 꿈의 동반자였던 알베르토의 선물을 타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간다. 점점 더 크게 영역을 넓혀가는 루카를 통해 성장하는 것은 분명 루카뿐만이 아니다. 루카가 도착한 그 학교, 그 도시, 그 안에 사는 모든 사람들도 함께 성장한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 그로써 더 큰 세상을 깨닫는 것은 모두의 성장법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이 영화가 개봉한 시기가 더욱 절묘해진다. 6월은 'Pride Month'다.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외쳐주자. "Silencio, Bruno!"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의 픽사 단편 <라 루나>를 유튜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루카가 꿈꾼 하늘의 달과 별이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 감상해 보시기를 추천드려요.
인스타그램: @hangangnams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