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라이프>가 남긴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어느 때보다 과거의 기억을 되돌아보는 일이 많은 요즘이다. 어제는 지난 다이어리를 오랜만에 꺼내 읽다가 2018년 1월 1일에 찍은 포토 그레이를 발견했다. 4컷 안에 부랴부랴 담긴 얼굴들이 반갑기도 하고 낯설기도 해서 오랫동안 들여다봤다. 새해 버프로 어딘가 상기된 모습이 조금 웃겼는데, 되돌아보지 않았다면 기억할 수 없는 순간이기도 해서 사진이 귀했다. 2018년은 여러모로 나에게 굉장히 힘든 한 해였는데, 그걸 알리 없는 그때의 나와 그걸 알아버린 지금의 나에게 그 순간의 의미란 참 다르다.
<원더풀 라이프>를 보다 보면 당장 사흘 안에 답해야 하는 질문을 받은 사람처럼 지난 시간을 되짚어 보게 된다.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야마모토의 한 마디가 계속 맴돌아 쉬이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선택한 기억 이외의 모든 기억은 다 잊게 된다는 말. 이 대사 이후에 가장 행복한 기억을 찾는 행복한 고민은 내가 무엇을 잊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되었다. 나의 천금 같은 모든 것이 한 컷에 담긴 순간이란 아무래도 찾기 힘들 것 같다. 머릿속에는 내 지난 기억의 콜라주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세야가 영화처럼 시나리오를 만들어 순간을 정할 수는 없는 것이냐고 물은 마음을 십분 이해하는 순간이다. 어쩌면 한순간보다는 기억들이 버무려져 만들어진 가상의 한 컷이 내가 원하는 영원한 순간에 더 가까울 것 같다.
모치즈키가 선택한 마지막 순간은 머릿속은 더 복잡하게 마음은 더 따뜻하게 만든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장면이 바로 그의 동료라는 것. 모치즈키는 누군가의 최고의 순간에 본인이 있다는 것의 벅차오르는 감동을 경험한 사람이다. 이 세계관에서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은 모치즈키가 유일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 자신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선택하지 못한 그의 동료들에게 자신이 한 그 경험을 고스란히 돌려준다. 정말 복합적인 감정이 밀려왔다. 갑자기 내가 마지막을 결정하는 사람이 아닌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사람이 된 기분이다. 그의 기억 속에는 내가 있을까?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쉽다. 요즘처럼 나의 거의 모든 것이 데이터화 되는 시대에는 더 그렇다. 오늘도 작년 이맘때 사진을 보라는 알람이 띵동 왔다. 그렇지만 내 영원이 될 한순간을 선택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도저히 모르겠다.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이 영화 이후 가장 원하게 된 건 누군가의 마지막 기억이 될지도 모르는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다소 얼렁뚱땅인 결심이다. 그리고 그 결심은 아마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순간을 마지막으로 선택하게 될 나의 운명과도 다르지 않다.
죽은 뒤, 그러니까 모든 것이 끝난 뒤에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란
살아서, 그러니까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때에 현재에 충실하는 일과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원더풀 라이프. 벅차오르는 단어다. 내 영원의 기억이 될지 모르는 이 순간의 경이를 맘껏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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